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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하은 展
비유클리드 공간 Non-Euclidean Space
스페이스결
2025. 3. 11(화) ▶ 2025. 3. 19(수)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7길 19-30 | T.02-720-2838
Octa-Squares_162.2x130.3cm_oil on canvas_2024
마주하는 공간들은 나를 짓누르고 괴롭히기도, 안정과 휴식을 주기도 한다. 이는 보편적인 공간의 힘이다. 그러나 아무리 부수고 칠해봐도 나는 그들의 어떠한 기능 하나조차 바꿔내기 버겁다. 그래서 상상한다. 그곳도 나로 인해 괴롭기도, 행복하기도 할 수 있다고. 뒤죽박죽 섞여 평면에 갇힌 공간들은 안개에 뒤덮인 양 희미하게 보이기도, 불현듯 착륙한 것처럼 선명하게 보이기도 하며, 쓰임새도 뒤섞여 있다. 진실이 어떠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왜곡된 실체가 나의 경험과 가장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 발칙한 기록들은 사각형의 캔버스에 매달려 본래의 기능을 잃은 채 새로운 서사로 관객을 맞이하고, 그들의 시선 속을 떠돌 것이다.
Multi-Cube_72.7x60.6cm_oil on canvas_2024
방에 관한 관심사는 작가가 타지 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을 경험적으로 옮긴 것만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화면 안에 침입하는 선을 보고 현대 도시 생활, 나아가 연결을 바라는 현대인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런데 작업의 출발은 사각이라는 틀을 배경 삼는 특정 (도시) 공간으로 귀결하지 않는다. 재차 강조하듯, 작가에게 사각이라는 공간은 한 공간—즉, 장소를 담는 대신 시간을 겹치는 점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Octa-squares〉(2024)를 보면, 식물의 줄기가 화면에 보인다. 회화 평면에 균열을 내듯 섬세한 선들이 그려질 때, 화면 안에 보이는 회색조의 또 하나의 화면과의 대비를 통해서 균열은 한층 더 강조된다. 창문 너머 보이는 암벽과도 같고, 혹은 액자에 넣어서 걸려 있는 그림과 같은 사각 주변에서 빛이 새어 나오듯 선이 그려진다. 앞서 언급한 예시보다 우리는 이 회화 작업에서 인간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사각이라는 틀 안에 만들어진 흐름을 알 수 있다. 전기선 대신 햇빛처럼 여린 줄기가 들어오는 화면에서 틀의 존재는 달라진다. 공간을 포개놓아 담는 틀과 달리, 〈Octa-squares〉에서 사각은 틀이 깨지는 외적 힘을 담는다. 여러 시간축이 머물고 담긴 틀은 자연 (햇빛-식물 줄기)라는 외적 조건을 직면하게 된다. 인간에 의한 제약과 인간에 의한 극복—둘 다를 벗어난 시간이, 〈Octa-squares〉 화면의, 보이지 않는 저편에 그려진다. 다른 공간과의 접촉을 암시하던 선은 더 밝고 절대적인 그 너머의 공간으로 이어진다. 문하은에게 사각은 시간을 담는 틀인 동시에, 시간을 받아들이기 위해 스스로 깨지는 곳이라 할 수 있다.
Under the Blue_130.3x97cm_oil on canvas_2024
Footprints_80.3x100cm_oil on canvas_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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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메일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은 작가와 필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 vol.20250311-문하은 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