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현 展

 

잃어버린 한 쪽 다리와 태어날 천 개의 발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2025. 3. 5(수) ▶ 2025. 3. 30(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 48-1, 2층 | T.02-797-7893

 

https://www.willingndealing.org

 

 

 

 

잃어버린 한 쪽 다리와 태어날 천 개의 발

어린 시절 나는 늘 내가 남성도 여성도 아닌 반쪽짜리 존재라고 생각했다. 동성을 좋아하는 마음과 타고난 신체가 주는 위화감, 그리고 그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내 무의식에 작은 수치심을 심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반쪽짜리라는 것을 들킨 순간 변하는 사람들의 눈빛이 무서웠고, 내가 갖지 못한 반쪽만큼 더 노력해야 보통 사람 한 명의 몫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반쪽 대신 자라난 부끄러움을 성실함으로 씻으려 모든 일에 지나치게 노력하고, 스스로를 검열했다. 하지만 없는 반쪽을 남들과 같은 모양으로 채우려 노력할수록 내가 그들과 어딘가 다르다는 사실만 더 뚜렷이 알 게 될 뿐이었다.

이렇게 수치심에 사로잡혀 살던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많은 경험을 하며 ‘완전한 존재’라는 것은 단지 내 두려움이 만든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세상의 모든 이들은 다 크고 작은 구멍을 가진 것 같았다. 사람들은 날 때부터 반쪽인 채로 태어나기도, 어떤 사건을 겪으며 반쪽이 되기도 했고, 아주 작은 조각을 조금씩 잃어버리기도 했다. 한 순간에 반 이상을 잃어버리거나, 때때로 모든 걸 잃고 사라져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반쪼가리 자작’에서 주인공 메다르도는 전쟁에 나갔다 적의 포격에 맞고 몸의 반쪽을 잃은 채 살아가게 된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나무에 매달린 탐스러운 과실도, 숲의 나비도, 집과 버섯도, 연못의 개구리도 모두 반쪽만 남는다. 마을 사람들은 완전하고 행복하던 자작이 순식간에 몸의 반쪽을 잃고 불행해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마을 사람들을 비웃듯 메다르도는 자신의 조카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연히 네가 반쪽이 된다면 난 너를 축하하겠다. 얘야, 넌 온전한 두뇌들이 아는 일반적인 지식 외의 사실들을 알게 될 거야. 너는 너 자신과 세계의 반쪽을 잃어버리겠지만 나머지 반쪽은 더욱 깊고 값어치 있는 수천 가지 모습이 될 수 있지.”

 

 

 

 

사람들은 저마다 크고 작은 결핍이나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이 정말 절대적인 결함인지 혹은 사회적인 시선이나 자기 자신의 생각 안에서의 결함일지는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사회의 관점에서 불행이라 불리거나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이 그 사람만의 고유한 세계를 이루는 가능성이자 강점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중학생 때 매튜 바니의 영상작업 ‘크리매스터’에서, 유리로 보이는 다리와 치타의 다리를 번갈아 달고 등장하는 한 여성을 보았다. 나는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인간의 다리가 아닌 이종(異種)의 다리를 지닌 그녀가 너무나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가 선천적으로 하반신 장애가 있는 모델이자 운동선수라는 사실은 그녀가 보여준 색다른 아름다움만큼이나 나를 놀라게 했다. 컴퓨터 그래픽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의 다리가 CG일 것이라 지레짐작했다. 그때의 내게는 컴퓨터 그래픽의 기술력보다 하반신이 없는 인간의 존재를 상상하는 것이 더 어려웠던 것이다. 나는 인간 존재의 다양성과 한계를 내 좁은 시선 안에서 규정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그녀는 강연에서 자신의 다리를 대신하는 12개의 의족을 소개한다. ‘크리매스터’의 촬영에 쓰였던 폴리우레탄 소재의 의족부터 육상 경기용 의족, 패션쇼를 위해 제작된 에쉬 원목의 수공예 의족, 치타의 다리, 기존의 것보다 6인치 이상 높은 의족 등 사회적으로 결함이라 여겨지던 그녀의 장애는 이제 12개의 의족을 통해 때로는 극적인 스피드로, 때로는 아름다움이나 기발한 상상력과 같은 새로운 가치들로 환원된다. 그녀는 말한다. “의수족은 이제 부족한 부분만을 채워주는 것이 아닙니다. 착용하는 사람이 그 공간에 자신이 무엇이든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상징합니다. 결국 사회에서 장애인으로 여겨졌던 사람들이 이제는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건축가가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지닌 각기 다른 구멍 안에는 그 모양과 크기만큼이나 다양한 세계가 있었다. 같은 세계를 가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고, 모든 사람이 그들만의 가치로 구멍 안의 우주를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내게 없는 반쪽을 남들과 같은 모습으로 메꾸려 애쓰지 않는다. 대신 구멍 안에 있는 나의 세계를 아름답게 가꿀 뿐이다. 나는 우리가 우리에게 생긴 구멍을 모두 같은 모양으로 채우려하기보다는 그 안에 자리한 가능성의 세계를 좀 더 들여다보고 스스로의 세계를 존중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와 다른 모양을 했을지라도 다른 이의 세계 또한 이해하고 존중하며 다양성의 장(場) 안에서 함께 연대하고 사랑하며 살아나갔으면 좋겠다.

메다르도가 전쟁으로 잃어버린 반쪽, 내가 태어날 때부터 갖지 못했던 반쪽, 나의 언니가 오랜 시간을 아프며 잃어버린 반쪽, 친구의 어머니가 딸의 죽음과 함께 잃어버린 반쪽,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처음부터 가져 볼 수조차 없었던 반쪽, 또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가졌다가도 잃어버린 반쪽. 그 반의 세계가 정확히 어떤 가능성으로 이어질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또 그 모든 것들을 단지 긍정하며 살아가기에는 우리 모두가 지닌 아픔이 너무 클지도 모른다. 그래도 슬픔과 좌절만으로 잃어버린 반쪽을 채우기에 그 세상은 너무 광활하다. 걸어가야 할 길이 멀고, 살아가야 할 날이 많다. 잃어버린 반쪽의 세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에 나는 오늘도 그곳에서 다시 시작될 열 개, 백 개, 천 개의 이야기들을 기대하며 살고 싶다. 가족, 친구들과 함께 서로가 가진 구멍 안의 세계를 보듬으며 열렬히 살아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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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50305-강서현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