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희 사진展
The Sound of Silence

옹, 2014_Digital inkjet print_127x102cm
아트스페이스루모스
2025. 3. 1(토) ▶ 2025. 3. 29(토)
대구광역시 남구 이천동 409-5, 5층 | T.053-766-3570
www.artspacelumos.com

호, 2019_Dightal inkjet print_185x148cm
2003년 3월 어느 날, 옛사람의 숨결이 스민 발굴 유물과 처음 마주하게 된다. 땅속 깊은 곳에서 오랜 시간을 견뎌낸 뒤 개발에 의해 땅 위로 모습을 드러낸 이들은 토기의 아가리 부분인 구연부와 몸통인 동체부, 그리고 토기의 밑부분인 저부가 때론 여러 조각으로 때론 무수한 잔해로 형태의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겐 오랜 시간성과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그렇게 여러 발굴기관과 유물 촬영을 이어온 지도 어언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나는 오랜 시간 내 삶 속에 머물던 이들의 ‘침묵의 소리’에 주목하게 된다. 나는 누구이며 나는 어떤 이들의 손길과 함께였다며 당시의 이야기들을 말없이 들려주는 침묵의 소리 말이다. 물론 그 유물들이 내는 소리를 직접 들을 수는 없었지만 좀 더 자신들의 소리에 귀 기울여 주기를 바라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랜 고민 끝에 그 무언의 소리를 변화된 기운과 시간성으로 재해석해보기로 했다.
인간은 100여 년을 겨우 살아간다. 그러나 인간과는 다르게, 땅속에서 올라온 이들은 수 백년을 훌쩍 넘긴 이들이다. 대부분은 완전한 형태를 갖추지 않고 있어서, 먼저 이들의 그 옛날 원형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에서부터 나의 작업은 시작됐다. 나의 상상이 덧입혀져 그들이 완벽한 형태를 갖추기를 바랐기에 이들을 ‘오랜 시간성을 지닌 존재’로 표현하는데 포커스를 맞추었다. 내가 비추는 빛의 각도에 따라 생긴 유물의 그림자, 토기의 형태 그 자체가 주는 상징성, 그리고 조각들이 주는 착각적 이미지인 잔상까지 유물이 들려주는 침묵의 소리에 오롯이 집중했다.
어떤 토기의 그림자는 삶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상기시켰고, 깨진 조각들의 불완전성은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는 완전성으로 모순되기도 했다. 과거와 현재 사이의 존재성을 지닌 유물이 들려주는 소리, 그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불확실한 느낌을 존재성을 지닌 사물로 인식하고 표현하고자 하였다. 사진은 상황적 재현 속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를 누설하는 가장 좋은 매체라고 하지 않았던가. 각양각색의 유물들이 들려주는 침묵의 소리를 통해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을 인식하기를 바란다.

옹, 2016_Digital inkjet print_100x80cm

병, 2018_Digital inkjet print_127x102cm

병, 2017_Digital inkjet print_75x6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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