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성주 展

 

Polisher

 

 

 

라흰갤러리

LAHEEN GALLERY

 

2025. 2. 13(목) ▶ 2025. 4. 5(토)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대로50길 38-7 (용산동3가) | T.02-534-2033

 

https://laheengallery.com

 

 

GIANNI VERSACE FALLL 03 2025_Oil on Canvas_145x112cm

 

 

함성주 작가의 여섯 번째 개인전인 《Polisher》가 2월 13일 (목)부터 라흰에서 개최된다. 본 전시는 (박연준 시인의 구절에서 언급되는) “사랑해서 까맣게 탄 마음”으로부터 영감을 얻은 것으로, 이번 개인전에서 함성주는 심신을 불살라 (그림을) 사랑한 긴 시간과 사랑으로 몰두한 나머지 타버린 마음, 연소된 마음처럼 검게 그을린 그림들을 선보인다.

​함성주는 2022년을 기점으로 붓질을 그림의 전면에 드러내면서 내러티브를 차츰 덜어냈으며, 이러한 형식적인 실험은 (의미를 수반하는) 색을 제거함으로써 모노톤의 검은 화면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이 과정에서 그가 구사한 것은 푸른색과 갈색을 조색한 어두운 톤을 화폭에 거듭 바르고 문지르는 ‘마찰 (polishing)’의 방법론이었다. 캔버스를 여일하게 닦아내는 이 대목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스스로를 연마하며 마찰의 움직임을 내내 견인하는 ‘주체로서의 Polisher’이다. 닦고 문지르며 닳아 종내 타버리고 마는 이 ‘Polisher’는 마찰로 인해 타면서 깎이는 붓과 그림을 은유하지만, 이는 동시에 함성주의 팔과 어깨와 그 자신에 대한 메타포로도 볼 수 있다.

함성주가 마찰의 행위를 항상적으로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온전히 내어줄 줄 아는 ‘사랑’이 그의 작업의 근저에 자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 전시에서 우리는 하나의 대상을 수십 번 거듭해서 그리는 창작자의 고된 시간성으로부터 대상을 향한 작가의 사랑을 가늠해보게 된다. 같은 장면을 여러 번 그려내는 함성주의 이러한 작업 방식은 회화 자체를 조감해보려는 시도이다. 이렇듯 함성주는 마찰과 연마로 구현되는 사랑을 하나의 대상을 여러 번 그려내는 반복과 시간성으로 시각화하는데, 이 단계를 진행하다 보면 대략 서른 번째에 완성된 작업을 기점으로 그림의 상태와 그리기의 태도가 변한다. 예컨대 같은 것을 몇 번이고 그리다 보면 처음의 서른 점까지는 재현에 초점을 두고 이미지를 보다가, 이후로는 붓질이나 대상이 주는 인상을 확보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사랑해서 타버리는 마음’으로 그림을 대할 때에는 마침내 대상의 정수 (essence)와 심연을 부여잡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작가는 고착되지 않은, 그림이 자체로서 지닌 본래의 파동을 감지한다.

 

 

On Night Flight 2024_Oil on Canvas_64x38cm

 

 

​더불어 이번 《Polisher》에서 함성주는 특별히 자신과 연관된 대상들을 성찰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화면 안으로 들여놓음으로써, 이전까지는 그의 작업이 다소 거리를 두었던 서정성과 내부적인 깊이를 모색한다. 작가의 눈이 대상과의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기를 시도했음에도 그것을 더 이상 객관화하거나 이상화하기 어려운 지점에 이르게 되면, 그때부터 그의 시선은 이미지를 따라가기보다는 그림 자체에 집중함으로써 공기 중에 부유하는 이미지의 ‘인상’에 열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상을 반복해서 그리는 작업 절차에 따라, 작가의 관점도 무수한 곡면이 숨 쉬고 있는 내면으로 점차 향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함성주는 게임과 스크린, 그림의 장면성, 그림과 그것의 뼈대 등을 탐구했던 이전의 전시들을 계기로 이미지를 보는 시야를 차차 확장하다가, 이번 개인전을 통해 서정성과 (그림 및 자신의) 내부적인 깊이로 돌아와 그림 자체를 탐색한다고 하겠다. 그러한 깊이감이 그림을 통하여 보는 이의 세계까지 편입되는 데에는 시간과 함께 누적된 사랑 그리고 사랑을 시공 속에 물질화하는 반복과 마찰의 형식이 다른 무엇보다도 작업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미지와 조형적 취향, 내면과 서정, 자체로서의 그림이 여러 방향에서 촘촘히 읽히는 함성주의 그림은 이처럼 사랑해서 타버린 마음에서 비롯하여 돌고 돌아 다시 그곳에 도달하면서, 그림이 지닐 수 있는 넓이와 깊이를 체감케 한다.

 

 

Lizzie 2025_Oil on Canvas_145x112cm

 

 

The ways of hearing 2025_Oil on Canvas_46x3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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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50213-함성주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