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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원 展
모든 숨 All That Breathes
고요의 바다 Sea of Tranquility, 2024_oil and acrylic on canvas_181.8x227.3cm
디스위켄드룸
2024. 12. 6(금) ▶ 2025. 1. 10(금)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대로42길 30 | T.070-8868-9120
http://thisweekendroom.com
겨울 밤의 얼굴 The Countenance of Winter Night, 2024_oil and acrylic on canvas_112.1x145.5cm
운무가 낀 호수, 빛의 장막 밑으로 잠긴 바닷속, 별 조각이 반짝이는 하늘 아래 펼쳐진 눈밭. 그곳에 새하얗게 백화되고 풍화된 것들이 있다. 꿈에서도 만나기 힘들 것 같은 신비하고도 처연한 풍광은 이채원이 세계를 응시하는 감각을 대변한다. 그는 유년 시절부터 자연의 섭리와 변화에 관심을 가졌고 이로부터 얻는 호기심과 위안, 경외감을 그림에 담아왔다. 전시 제목인 《모든 숨》은 그가 몸과 마음으로 껴안는 수많은 유기체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그의 작품 제목에는 ‘숨’, ‘마음’, ‘얼굴’, ‘호흡’ 등의 단어가 자주 사용되는데, 이는 작가가 그려내는 존재를 저마다의 맥박과 체온, 감정을 가진 오롯한 주체로서 대하고 있음을 뜻한다. 최근 그의 시각은 사적인 감상의 측면에서 공적인 대화의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이번 전시는 그가 빚어낸 화폭을 경유하여 우주 생태계를 향한 인간의 시각을 고찰해 보려는 시도이다.
인간의 시야에서 벗어난 곳에 비밀스러운 개체들이 조용히 찾아든다. <별 헤는 나무> 속 날개를 고이 접고 엎드린 사자 위에는 앙상한 나무에 걸터앉은 하얀 몸이 영원히 만날 수 없을 것처럼 선명한 벽을 두고 각자의 시간을 마주한다. <고요의 바다>에 그려진 이들은 칠흑 같은 물속의 어둠을 헤치고 서로의 연약한 현존을 확인하며 머리를 맞대고, <겨울 밤의 얼굴>의 눈밭을 밝히는 옅은 노란 달은 남은 온기를 지키려는 듯 땅에 웅크린 이와 어깨를 나누며 앉아 있다. 별 무리를 향해 날개를 펼치거나 땅으로 고개를 숙인 형상은 끝없이 깊고 넓은 대자연의 바람과 햇살을 소리 없이 온몸으로 대할 뿐이다. 그 생김새나 움직임이 생소하여 이름을 부르기 어려운 이 낯선 유기체들은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작가는 여러 필터를 통과한 이미지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이로부터 회화의 근간을 마련한다. 직접 눈으로 관찰하기, 무의식에 침잠해 있던 기억의 조각을 문장으로 옮기거나 그리기, 온라인에서 편집된 가상의 풍경을 수집하기, 구글 어스에 포착된 지구 반대편의 모습을 눈으로 여행하기, 천체 관측 기구로 별자리를 찾아보기는 모두 그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다. 말하자면 자연은 그의 신체와 상념이 유영하는 공간이면서 미래로 이어질 열린 서사의 중추이다. 여기서 작가가 세상을 단순히 아름다움과 무한한 가능성으로만 읽어내지는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도리어 그는 인류가 폭력적으로 남용하고 파괴했던 크고 작은 실체들을 걱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작가의 목소리는 미래를 속단하거나 예언하기보다 현실에 만연한 기성의 인식을 신중하게 비틀고 와해시켜, 그 틈으로 가능성의 빛을 비추어본다.
따라서 동화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화면 너머에 감추어진 위태로운 세계의 상태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실로 인류 역사 전체는 자연과 그것의 일부인 동식물의 상징적이고 실질적인 소외와 희생을 거쳐 만들어졌다. 그 자리에 머무르려 했던 것들은 오롯이 그곳에 남을 수 없었다. 고도화된 현대 문명과 신자유주의의 가속화는 인간과 비인간의 지대 사이의 연결고리를 더욱 유약하게 했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해 보면 타자로 분류되는 무수한 그들은 사람을 ‘위해’ 실재한 적이 없다. 우주는 애초에 누구도 고려하지 않은 채 구조화되어 왔고, 그 어느 것도 상대적으로 우월하거나 특별한 종으로 규정했을 리 만무하다. 우리는 팽창하는 시공의 총체에서 여전히 너무나 미미한 객체 중 하나일 뿐이며, 인간종이 사라진 이후에도 자연계는 자신들의 시간을 이어갈 것이 자명하다. 이러한 인식 위에서 작가의 회화는 인간중심주의적 사고와 욕망에 의해 버려지고 상처 입은 존재들을 응시하고 위로하는 메시지로 다가선다.
그려진 것들이 사람의 모습을 어렴풋이 닮아서일까. 지구 곳곳에 난 생채기를 보듬는 작가의 마음이 어쩐지 내 마음을 보살피는 것 같기도 하다. 이 감상은 인간, 동물, 식물, 미생물, 심지어 무기물도 결국 동일한 지평 위에 있는 영혼의 조각이라는 자명한 사실과 공명한다. 그렇다면 외부를 향한 무감각한 판단과 관행적인 배제를 극복하고, 어딘가 남겨진 내면과 외면의 상처에 공감할 수 있는 태도 역시 더 넓은 범주에서 작동할 수 있지 않을까? 주변에 소거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 사라질 것들을 소중히 할 것, 이미 눈으로 볼 수 없게 된 이들을 기억할 것, 경험한 적 없는 저 너머의 것들을 존중할 것. 이제 이것이 이채원의 회화가 모두를 향해 요청하는 일관되고도 보편적인 메시지임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박지형 (디스위켄드룸 큐레이터)
The Dreamers, 2024_oil and acrylic on canvas_112.1x162.2cm
모래가 흐르는 동안 As the Sand Flows, 2024_oil and acrylic on canvas_150x100cm
별 헤는 나무 The Star-Gazing Tree, 2024_oil and acrylic on canvas_150x10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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