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UTE ONE 展

루트 1

 

수경재배 · 정아사란

Water-Culture · Asaran Jeong

 

 

 

서호미술관 본 전시장 및 서호서숙 한옥별관

 

2024. 7. 10(수) ▶ 2024. 8. 4(일)

Opening 2024. 7. 17(수) 오후 3시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북한강로 1344 | T.031-592-1865

 

www.seohoart.com

 

 

전시전경

 

 

살랑한 경로 만들기: 물, 빛, 관계

 

글. 김소원

 

 

《루트 1》은 2024년 서호미술관 기획전 [프로젝트 루트 0, 1, 2] 중 하나로, 수경재배와 정아사란의 2인 전 타이틀이다. ‘루트(Route)’라는 단어를 연속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만큼, 이 제목이 뜻하는 바는 중요하다. 루트는 ‘물품이나 정보 따위가 전달되는 경로’, 혹은 ‘연계를 맺거나 연락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연결통로’나 ‘연결책’ 등을 말한다. 프로젝트가 총 3개의 시리즈로 연결되어 있으며 제목도 연결의 의미를 지닌 셈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 안에서 무엇이,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고 있는지, 궁극적으로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집중해 보는 것이 주요해 보인다. 한편, 루트(Route)와 철자는 다르지만 발음이 유사한 수학 용어 루트(Root, 제곱근)의 개념도 보태질 수 있는데, ‘√1(루트 1)’이 1을 뜻하므로 ‘둘이 모여 하나를 이룬다’, 혹은 ‘하나같은 둘이다’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실상 수경-재배, 정아사란 이 두 작가를 하나로 묶어 볼 수 있는 큰 틀은 ‘기술(Technology)’이다. 기술의 범주는 넓고 기술사용의 목적은 다양하다. 따라서 기술이라는 광범위한 교집합 안에서 두 작가가 오히려 어떻게 변주하는지를 포착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관람자에게 보다 흥미로울 수 있는 지점이자 기술사용에 대한 의미 찾기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현재 기술은 우리에게 어떠한 대상인가? 특이점(Singularity)이 가까웠다는 전문가들의 진단과 함께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우세한 현재다. 지금까지 인류가 이루어 놓은 모든 문명과 성과를 뒤흔들어 놓고 심지어 앗아갈 것이라는 불안은 기술에 관한 여러 연구와 대담, 심포지엄 등의 분석을 통해 임시방편적으로 해소되고 있거나 대안을 찾는 과정 중에 있다.

 

 

정아사란 作_연상된 해석_스티로폼, 거울에 레진, 수조, 물, 혼합매체_33x64x67cm_2024

 

 

이택광 교수는 2023 국제심포지엄(순환성 circularity)에서 ‘약한 기술’이라는 표제 아래, 과학 의존적인 오늘날의 기술과 달리 “고대의 ‘원시적인’ 기술들은 그저 존재가 살아가는 한 방식”이었다고 설명하며 “이러한 ‘약한 기술’ 모델을 오늘날 사회에 적용한다면 디지털 자동화가 낳는 인간 간의 혹은 인간과 기계 간의 위계 구조를 벗어나 동등한 기술적 관계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수경-재배와 정아사란의 작업을 굳이 따지자면 바로 이택광이 말한 ‘약한 기술’에 가깝다. 고도의 기술 없이 매우 단순한 제작, 조립 등의 기술을 사용하는 수경재배는 명백한 로테크(Low tech) 범주로 볼 수 있으며, 정아사란 역시 궁극적으로 아날로그와 물질을 향해 있기에 로테크 철학을 견지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작업 유형이 확연히 다른 두 작가의 공통점이라 한다면, 바로 과시적이거나 지배적인 기술사용 프레임을 지양한다는 점이다.

 

‘약한 기술’, ‘로테크’적 관점은, 이들의 작업이 수직적 위계구조가 아닌 수평적 연결 구조를 지니고 있음을 시사하는 차원에서 중요하다. “쉽게 제작, 적응 및 수리가 가능하며 거시적으로는 환경친화적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와 자원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대부분의 자원이 현지 공급원에서 제공 및 충족될 수 있도록 사회적 기반을 재구성할 수 있다는 점 등의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로테크의 중요성이 다시 주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Alexis Bernigaud. “Low-Tech is the new High-Tech”. 《climateforesight.eu》) 이 전시의 참여 작가이자 기획자인 수경-재배가 강조하는 연결은, 다른 한편 환경친화적 메시지이기도 하다. 융복합 미디어 전시라는 장르적 전제하에 기술을 사용하는 두 작가가 모였으나, 이들은 실제 미술관이 위치한 지리적 위치와 생태학적 특성을 민감하게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루트 1》은 환경에 대한 기획자/작가의 민감성이 ‘연결’이라는 주제의식으로 이어진 환경친화적 전시라 할 수 있다.

 

 

정아사란 作_물길_pvc, 스테인리스, 레진, 유리_300x200x1500cm_2024

 

 

이 전시에서 연결에 대한 주제의식과 구조는 ‘물, 통 창, 두 작가의 관계’ 총 세 가지로 구분해서 볼 수 있다. 우선 ‘물’이다. 북한강이 흐르는 남양주에 위치한 미술관을 하나의 장소로 인식한 두 작가는 ‘물길(Waterway)’을 작품의 제목이자 구현 대상으로 삼았다. 본 전시장 전체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며 가득 채우는 정아사란 작가의 <물길>(2024)은 높이 3미터, 길이 15미터에 달하는 작업으로, PVC, 유리, 레진 등의 재료로 대형 물길을 구현한다. 이 작업은 재현과 구현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점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투명한 미디엄과 조명/자연광이 만들어내는 물 그림자의 파동은 일종의 신비 판타지를, 관람자가 작품 아래를 관통하는 경험은 소소한 유희를 제공함으로써 다른 위치를 점하게 된다. 이는 물질적 장치를 통한 축약, 응축된 자연이 주는 감성과 정서적 자극과 충족을 시도하기에 어떠한 의미로건 예술로 작동하게 된다.

 

수경-재배의 <잡을 수 있는 물길>(2024) 역시 PC 소재를 사용하고 있는데, 파이프 형태를 주목해 보게 된다. 전체 길이를 따지면 26미터에 달하는 투명 PC 파이프가 사용되었다. 이 길이의 재료는 응당 물길을 표현하기 위한 선택으로, 파이프 내부에는 물을 채우고 식물을 일정 간격으로 심어 놓았다. 결코 손으로 잡을 수 없는 대상인 물길을 꽤나 안정화된 파이프 형태로 구현하여 움켜쥘 수 있도록 한 작업이다. <잡을 수 있는 물길>은 다양한 구조적 필요성과 손잡이의 상징성 두 가지 면에서 유형화된 작업으로, 사실상 지나치게 심오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적합해 보이지 않는다. 로테크를 이용해 전시장 내부에 자연 일부를 들여놓은 소박한 작업으로 보는 것이 적당하지 싶다. 고도의 테크닉, 현란함, 의미 부여 등으로부터 벗어난 가벼움과 자연스러움, 어쩌면 그것이 겸허하게 주변을 살피고 대상과의 ‘연결’을 시도하는 태도에 더 부합한 특성이리라. 한편 북한강에서 나온 테마는 1차적으로 물이지만 두 작가가 물이 아닌 물길을 도출한 것은 연결 개념에 대한 번안이라 할 수 있겠다.

 

 

수경재배 作_잡을 수 있는 물길 (Graspable Waterway)_PC 파이프, 철제 브라켓, 수경재배 식물_가변설치_2024

 

 

정아사란 作_껍질_전구, 아크릴_가변크기_2024

 

 

두 번째 ‘통 창’의 경우, 작가들이 ‘물길’ 작업에 사용한 재료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술관 큰 벽 하나를 꿰차고 있는 통 창은 방문자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경쾌한 햇살의 통로가 될 것이지만, 작업을 위해 여러 가지 조건을 통제해야 하는 전시 작가들에게는 해결할 과제에 다름 아니다. 인스톨레이션 작업은 제약이 더 따르기 마련일 텐데, 빛을 가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오히려 이들은 빛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그리고 빛을 통해 재료적 특성이 더욱 부각되는 투명 재료를 사용했다. 그리하여 정아사란 작가는 수없이 일렁이고 부서지는 빛의 물결로 공간을 가득 채우는 현장을 꿈꾸었고, 수경-재배는 신의 은총처럼 퍼붓는 통 창의 빛에 의해 ‘물길’ 속 식물들이 잘 자라는 환경을 꿈꾸었다.      

 

마지막 세 번째로 ‘두 작가의 관계’는 이번 전시의 기획자이자 작가, 두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는 수경-재배와 밀접한 관련이 있겠다. 수경-재배는 공간 운영자, 기획자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 온 연륜 있는 전문가이지만 오로지 개인 활동 기반 작가로만 따지면 2년 미만의 신진이다. 작가명 ‘수경-재배’는 본명 황수경에서 응용한 재치 있는 활동명으로, 물을 매개로 작업하는 지향이 이름에 고스란히 내포되어 있다. 그에게는, 기획자의 입장에서 공간을 매개하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작품으로 개입하고자 하는 실천 사이에서,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주제의식은 최대한 부각하면서 공간에서의 물리적 개입은 최소화하려는 수경-재배의 ‘연결 노력’은 벽에 바짝 붙이는 손잡이 형태의 <잡을 수 있는 물길>이나 한옥전시장의 형체 없는 <강변도로>(2024) 사운드 작업으로 발현되었다.

 

 

정아사란 作_인식의구성 01_라이트패널에 레진, 백릿프린트_89x120 cm_2022

 

 

정아사란 作_Sketch for Layer-by-Layer 01_아크릴판에 레진, 다이크로익필름_60x43cm_2022

 

 

정아사란 작가의 경우는 자기 작업 안에서의 논리를 구축하는 것에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했을 법하고, 그것이 각자의 역할이었으리라 본다. 작가의 설치조각은 물론 <인식의 구성 01>(2022)나 <Sketch for Layer-by-Layer>(2022)와 같은 라이트패널, 필름 작업들은 상당히 미학적이며 수려한 마감으로 관람자를 사로잡는다. 그러나 한편, 작업에서 드러나는 그의 태도만큼은 다소 ‘경계적’이라 할 수 있다. 양극단의 입장을 모두 아우르거나 때로는 둘 모두에 냉소적인 태도를 일컬음이다. 작가는 대체적으로는 아날로그에 대한 아련한 노스탤지어에 발을 딛고 있는 듯하지만, 동시에 기술 지배적 사회에서의 불안을 다양한 기술적 시도를 통해 작업에 투영해 가며 해소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반복되는 진자운동 속에서 자신의 궤적을 찾아가는 과정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평생 동일한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 또한 분명한 선택일 수 있다.

 

《루트 1》은 환경의 정의와 범주를 자연과 인간 전체로 확장, 소박함과 따스함, 때로는 판타지와 유희를 맛보게 한 환경친화적 로테크 전시다. 아름다운 자연 속 전시인 만큼이나 심각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 않다.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물, 빛, 작업 간의 아름답고 평온한 연결을 경험하는 전시가 될 것이다. 한편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면, 연결의 필요성이 반복 강조되거나 새로 등장하는 디지털 기술사용에 집착하게 되는 현상은 그만큼 이 사회가 연결이 단절된 곳이자, 기술 발전에 따른 인간소외가 고조된 사회라는 반증임을 떠올리게 한다. 잔잔한 북한강의 물살과 통 창으로 들어오는 자연광, 그 안에서 빛으로 충만한 두 작가의 작업 사이를 거닐며 왜 우리 사회에서 이런 작업들이 필요하게 되었는지 그 근원적인 그림자도 한번 떠올려 보기 바란다. 그래도 돌아가는 끝 맛은 산뜻하게, 살랑하게.

 

 

수경재배 作_강변도로(Riverside Road)_스피커×4, 우퍼×2, AI 사운드_가변 설치_2024

 

 

 

 

 
 

수경재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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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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