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린 展

 

무언의 영역

 

 

 

갤러리현대

 

2024. 6. 5(수) ▶ 2024. 7. 14(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14 | T.02-2287-3500

 

www.galleryhyundai.com/main

 

 

 

 

“나의 최종 목적은 언제나 시(詩)였다. 발레리(Valéry), 랭보(Rimbaud), 말라르메(Mallarmé), 그리고 그 세대의 시인들 거의 모두를 좋아했다……나는 계속해서 시 작업을 했으나, 글이 아닌 그림을 통해서였다. 항상 시적인 이미지를 추구한다. 내 정신은 한국적이고, 내 작품은 항상 나의 정신을 반영한다. 시인은 가장 정확한 단어들만을 사용해 본질을 구현해야 한다라는 의식을 그림의 매체에도 동일하게 적용해오고 있다.” - 김기린 (2018)

갤러리현대는 김기린의 개인전 《무언의 영역 (Undeclared Fields)》을 6월 5일부터 7월 14일까지 개최한다. 《무언의 영역》은 갤러리현대가 개최하는 김 화백의 세 번째 개인전이자, 작고 이후 첫 개인전이다. 단색화의 선구자로 알려진 김기린 화백의 회화를 화면 위에 그려진 시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며 단색조 화면 너머의 김 화백 작품 세계만의 독창성에 주목한다. 단색적인 회화 언어가 구축된 시기인 1970년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연작부터, 1980년대부터 2021년 작고할 때까지 지속한 〈안과 밖〉 연작 중 대표적인 캔버스에 유화 작업과 더불어 생전에 공개된 적 없는 종이에 유화 작업까지 40여 점의 작품과 그가 직접 창작한 시, 아카이빙 자료를 한자리에서 소개한다.

평론가 사이먼 몰리(Simon Morley)는 김기린의 회화를 텍스트 없이 색으로 써진 시라는 새로운 맥락으로 해석하길 제안한다. 그도 그럴 것이, 김기린의 첫 프랑스행은 1961년에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éry)에 관한 연구를 위해서였고, 프랑스에서 보낸 이십 대 시절에는 랭보(Arthur Rimbaud)나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의 시를 읽고 시 집필에 몰두했다. 작가는 삼십 대 초반, 미술사를 공부하며 자연스레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말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1960년대에 원고지에 펜으로 꾹꾹 눌러쓴 시는 보일 듯 말 듯 그려진 격자 모양 단색의 캔버스 화면에 점점이 쌓아 올린 물감 덩이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또한, 김기린은 단색화 작가들과 같은 세대이지만, 한국에서 철학과 불문학을 전공한 뒤 프랑스에서 미술사 공부에 이어 미술을 시작한 화가로서 한국 화단의 화가들과는 결을 달리하며 단색화 작가 중에 유일하게 전통적인 회화 재료인 “캔버스에 유채”를 사용하여 몰입의 순간을 연출하는 색과 빛의 관계를 평생 탐구했다. 전시 제목 《무언의 영역 (Undeclared Fields)》은 사이먼 몰리의 에세이 「무언의 메시지 (Undeclared Messages)」에서 영감을 받아 지어졌다. 이번 전시를 통해 김기린이 회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추구했던 그려진 시를 감상하며, 명료하면서도 풍부한 단색조 화면으로 명상과 울림을 선사하는 감각적인 그의 작품들과 공명할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하고자 한다.

김기린의 작품 세계를 집약하는 핵심은 시각적이고, 청각적이며 촉각적인 지각(知覺) 현상을 아우르는 작가의 내면세계(안)를 외부 세계(바깥)에서부터 인식할 수 있도록 캔버스 화면 위에 물감을 매체로써 다뤘다는 점이다. 이는 마치 일반적인 언어로는 설명 불가능한 내면과 세계의 이면을 엄격하게 선별된 함축적인 언어로 풀어내는 시인의 시 창작과 유사한 방법론이다. 김기린은 회화야말로 인간의 감성을 가장 잘 전달하는 예술 장르라고 생각했다. 1950년에 고향인 함경남도 고원을 떠난 그는, 다시 가보지 못한 고향에 대한 향수를 품은 채 살았다. 생전 그는 문창호지로 스며드는 아침 햇살, 달빛 밝은 밤, 어슴푸레 투명한 어둠이 눈에 선하다고 했다. 작가는 한국의 덧문 위에 붙은 창호지에는 ‘색’이 없으며, 그 대신 어둠과 밝음이라는 빛의 근원이 존재할 뿐”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작가에게 문창호지를 통한 경험은 밝음과 어둠을 지각하게 하는, 안과 밖을 연결해 주는 빛으로 체험하는 규정되지 않은 장(場), 즉 영역이었다. 시인이 되고 싶었던 청년 김기린은 말로 설명되지 않는 내면의 세계와 파리에서 경험한 다양한 장르의 문화적 자극을 캔버스 위에 텍스트가 아닌 물감의 양감으로 표현했다. 그가 캔버스에 붓으로 올린 것이 기름기를 제거한 유화 물감 덩어리로 누군가에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은 캔버스를 마주하게 될 관객의 지각과 의식의 흐름을 인도하는 장치로서의 열린 장(space)이었다. 그의 회화는 빛에 따라 화면 안에 구성된 색면과 점의 관계에 따라 달라지거나 혹은 물감 덩어리의 양감에 따라 다르게 반사되어 보이는 캔버스라는 화면을 통해 인간의 몸이 지각 가능한 2차원, 3차원을 넘어서는 지각의 세계에 대한 탐구의 흔적이 가득한 장이다. 그는 그림을 ‘하는 것’이지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색을 놓지, 바르지 않으며 점과 줄을 팠지, 찍거나 긋지 않는다고 말한다. 모든 그림의 과정이 ‘제조’의 개념이기보다 ‘인식 작용’을 수반한 ‘실천’의 의미로 있는 것이다. 즉, 작가의 에너지가 담긴 그림은 관객을 만나 살아있는 작품이 된다.

 

 

 

 

김기린은 회화의 표면을 일종의 살아 숨 쉬는 온도와 습도와 빛의 파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피부라 설명한다. 비슷한 그리드 패턴에 같은 붓으로 똑같은 점을 찍는다고 하지만, 매 순간마다 붓 터치는 같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 낸 도톨도톨한 질감은 빛의 파장이 닿는 속도와 강도에 영향을 미쳐 감상자로 하여금 섬세한 지각의 세계로 인도한다. 얼핏 봐서는 그저 단순한 색면인가 싶지만, 가볍고도 잔잔한 음의 진동이 촉각적으로 전해진다. 김기린의 회화는 음악이 추상 언어를 통해 본질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음악적인 맥락을 지향하는 지점이 있다. 200호 이상의 대작을 할 때, 작가는 똑같은 점을 찍어 내려가면서 다음 겹의 점을 찍을 때까지 유화가 마르기를 기다려 두 번째, 세 번째…서른 번째 점을 찍 노라면, 1~2년의 세월이 흐르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조금씩 다른 두께와 깊이의 색점은 빛이 닿아서 튀어 나가는 파장의 속도가 각각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가까이에서 화면을 마주하면, 운율감 있게 이어진 광채가 다른 다채로운 도톨도톨한 점들의 변주를 감상하게 된다. 김기린은 국립현대미술관과의 인터뷰에서 멘델스존(Jakob Ludwig Felix Mendelssohn-Bartholdy)에서는 노란색을, 차이코프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는 회색,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을 들을 때면 녹색이 떠오른다고 술회한 바 있다. 김기린은 음에서 빛깔을 본다고, 모국어가 아닌 불어로는 충만하게 표현할 수 없었던 지각의 세계를 색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김기린은 가로와 세로의 선으로 그리드를 형성한다. 이로 인해 생겨난 수많은 작은 단위의 네모꼴 속에 비슷한 크기의 색점들을 일률적으로 찍고, 그 위에 색을 수십 번씩 반복해 칠하고 쌓아 올린 후 작품을 완성한다. 감상자는 작가가 그림을 그릴 때 발생한 움직임과 에너지를 포착하고, 한 점 한 점 쌓여 생성된 수십 겹의 붓 자국의 흐름을 따라 작가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작업해 간 흔적을 읽어 가게 된다. 김기린의 작품을 보는 행위를 그림과의 단순한 조우를 넘어서는 일종의 명상의 세계로 안내이다.

전시장 1층에는 검정색 안료를 반복적으로 쌓아 올림으로써 급기야 빛이 수 많은 색점이 서로 달리 굴절되는 김기린의 1970년대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흑단색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시작으로 2000년대까지 지속된 〈안과 밖〉 연작이 서로 다른 거리감을 가지고 설치되어 만들어진 생경한 빛의 진동으로 전시 공간을 채운다. 2층은 작가 생전 전시에서 공개된 적 없을뿐더러 한국 전통 문창호지를 연상시키는 한지에 유화 작업을 중심으로, 유학 초기 시절 작가가 직접 창작한 원고지에 쓰인 시가 최초로 공개된다. 또한 전성기 시절의 유화 소품은 물론, 시인에서 전업 미술품복원가로 생계를 꾸리는 동시에 자신만의 회화 세계를 구축해 온 작가의 파리 시기 아카이브 자료 또한 함께 전시된다. 김기린은 점이 이어지고 쌓이면 무한의 시공간 속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작가는 점을 찍는 순간만큼은 자신의 몸은 시공간에 제약을 받는 서양의 학문을 공부했고 동양의 정신을 간직한 파리에 사는 동양인에 불과하지만, 초월의 경지에 닿은 듯 그의 영혼만큼은 가장 충만한 순간이라고 했다. 또한 작가는 순수한 색의 유화 물감을 겹겹이 쌓아가는 회화를 지속하는 이유는 스스로가 반듯이 서기 위해 그림을 하는 거지,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덧붙였다.

한 사람에게 허락된 환경 혹은 공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김기린은 일제 강점기 중에 함경남도 고원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발발 직전, 서울로 내려와 다시는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 1961년 파리로 떠나, 사무치는 그리움을 오랫동안 마음에 간직한 채 외국인으로서 살다가 갔다.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사람의 몸이 지각 가능한 공간을 넘어 지각의 차원을 찾는 것처럼 잃어버린 시간,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리움의 시간 동안 김기린은 점을 찍는 순간이 스스로를 뛰어넘는 제일 충만 된 시간이라고 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한 구절, 한 구절 완성되는 시인의 시처럼, 김기린이 겹겹이 쌓아 놓은 색들의 화면은 표면적인 세계를 초월해 울림과 전율이 흐르는 '무언의 영역’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그의 회화는 보는 이에게 시처럼, 음악처럼 다가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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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40605-김기린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