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인 초대展

 

 

 

 

2024. 6. 1(토) ▶ 2024. 6. 10(월)

Opening 2024. 6. 1(토) pm 4

인천광역시 중구 신포로 23번길 90 | T.032-777-5446

 

www.instagram.com/dodeun_arthouse

 

 

2003-녹색잔영_181.8x227.3cm_아크릴릭

 

 

현상의 응축과 이상의 재현

 

김경인교수님은 1941년 인천에서 출생하여 예고 미술과를 졸업하고 대학과 대학원에서 회화를 공부한 일관성 있는 화력(畵歷)의 소유자입니다. 교수님은 젊은 시절 대구 효성여대와 서울 상명대를 거쳐 고향 인천의 인하대학교에서 후진양성과 작품활동을 병행해 왔습니다. 70년대 《창작미술협회전》, 《제3그룹전》, 《79신예작가 12인전》 등에 출품하며 당시 정권의 부조리에 항거하고 궁극적으로 1980년대 민중미술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습니다. 교수님이 1970년대 초부터 발표한 <문맹자>나 <어둠의 초상> 연작들은 현실비판의 기능을 상실한 그 시대 지식인들의 모습이거나 정신과 영혼은 추스르지 못하고 육신만 존재하는 허깨비 같은 인간상, 즉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교수님이 1973년 효성여대 재직 시 주도한 ‘제3그룹’은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에 비판의 날을 세우는 리얼리즘의 성격을 띠며 미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참신한 책임감을 보여주었습니다. 평론계에서는 초기 형식실험에서 후기 현실비판으로 이어지는 ‘제3그룹’을 1980년대의 민중미술, 즉 ‘현실과 발언’, ‘임술년’ 등으로 이어지는 민중미술 운동의 견인차, 혹은 시발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젊은 김경인은 서슬 퍼런 유신정권의 압제에 항거하기 위한 사회적 실천으로 ‘제3그룹’을 결성하고 시대를 통찰하는 작업을 통해 압제와 부조리에 항거했던 것입니다.

 

 

2003-송하보월도 이야기_259.1x193.9cm_아크릴릭

 

 

한편, 1990년대 한국 사회가 정치적 안정이 이루어지면서 현실비판에 대한 작업이 설득력을 잃고 타성화되자 교수님은 “서양 미술이론을 이대로 답습하는 것은 그들이 씹던 껌이나 받아 씹는 것 아닐까”라는 고민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당시 교수님이 그 답답증 때문에 떠난 강원도 정선에서 찾아낸 소재가 소낭구(소나무)였습니다. 그가 볼 때 소낭구는 단순한 소재라기보다는 그가 끊임없이 사유하고 천착해 온 역사이자 인간이고 우리 자신이었습니다.

풍상에 시달리면서도 용트림하면서 굴곡진 조형미를 보여주는 한국의 소낭구에서 그는 ‘시련과 극복’의 역사를 사유하고 우리 겨레의 얼을 표상코자 하였습니다. 사실 한국의 소낭구는 매력적인 조형성을 보이며 수줍지 않은 자태를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겸손한 듯 하면서도 당당한 기개를 서슴없이 드러내는 소낭구는 그래서 한국인의 모습과 닮아있습니다. 율동과 곧음, 연륜과 참신, 독야청청 존재를 드러내면서도 서로 의지하며 굳건한 삶을 보여주는 소낭구를 통하여 교수님은 또 다른 차원의 리얼리즘을 구사하셨던 겁니다.

 

 

2008-정선에서_53x45.5cm_유채

 

 

근래 실험하고 있는 <지그재그> 연작은 이러한 소낭구의 조형성을 응축하고 예술의 유희적 성격을 받아들이면서 잠재된 자신의 표현 역량을 노정(露呈)시키는 긴 여정의 총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곡선과 직선, 반복과 멈춤, 끊임없이 나아가고자 하는 다이나미즘과 이를 제어하고자 하는 지적·예술적 노력, 이 모든 것은 현대미술사에서 통상적으로 목도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수님은 모더니즘 추상에서 추구한 물질 개념이나 본질의 탐색보다는 형태의 변주를 통하여 자연의 질서와 이의 존재론적 위상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여기에 작가의 사유와 경험을 몰입시켜 회화적 완성도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과거의 현실적인 인식에서 출발하여 몽상적 상상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경험과 예술적 의지가 소낭구를 매개로 ‘지그재그’ 작업에 투영된 것이지요.

 

 

2008-소낭구 이야기_97x130cm_유채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교수님의 작업에서 새로운 소통의 가능성은 이미지의 재현 방식이나 기법이 아닌 그것을 통해 어떻게 세계를 바라보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됩니다. 교수님은 구도(求道)적 노동을 통해 가시적인 것을 비가시적으로 치환하여, 구체적 실체를 추상적 사유로 응축시키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에서 교수님의 ‘지그재그’ 연작은 뫼비우스 띠처럼 근거 짓기를 허용하지 않고 의미의 증식을 유발합니다. 즉 표현 행위를 통한 선은 존재의 가능성을 시사하나 현실에 의해 항상 향유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선은 독립된 형태로 설정되어 현실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 안에서 현실을 자각하고 ‘실존(참존재)’을 적시하고 있습니다. 이 작업에서 현실과 이상은 원심분열되는 것이 아니라 교합(交合)되거나 미끄러져 분리되었다가 다시 조우(遭遇)하는 영원회귀의 관계라는 것이지요. 서론이 길었습니다.

 

이경모 / 제자, 미술평단 주간

 

 

2019-the blue composition_65.1x80.3cm_유채

 

 

2023-zigzag023-03_72.7x90.9cm_캔버스에 아크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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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40601-김경인 초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