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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법을 이어 새로 그린 붓다
法古創新 倣作佛畵 展
현승조 · 유현정
무우수갤러리
2024. 5. 8(수) ▶ 2024. 5. 27(월)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길 19-2 와담빌딩 3,4F | T. 02-732-3690
유현정 作_나한도(羅漢圖)_110x80cm_한지바탕에수묵_2011
고려 르네상스의 새로운 부활 <옛 법을 이어 새로 그린 불화>에 부쳐
주 수 완(우석대 예술경영전공 교수, 미술사)
고려시대는 지극히 정교한 것에서부터 지극히 추상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미술양식이 공존한 시대였다. 아마도 세계의 중심이었던 북송이 흔들리고, 새로이 거란과 여진이 차례로 중원을 거머쥐면서 천하가 혼란스러웠던만큼 미술도 시대를 따라 다양성을 띠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한 가운데 고려 말기가 되면서, 그간 시도되었던 다양한 양식들이 어느 정도 복고적인 성격을 띄면서도 고려만의 특징을 지닌 미술로 종합되었는데, 고려불화는 그런 양상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복고적’이란 화려했던 통일신라시대 전성기의 미술에 대한 복고를 뜻한다. 마치 피렌체의 르네상스 미술이 고전기 그리스 미술의 부활이었던 것처럼, 고려불화는 석굴암 같은 걸작이 만들어졌던 통일신라시대 미술의 부활이었던 셈이다. 물론 르네상스 미술이 그리스 미술의 단순한 모방이 아니었던 것처럼, 고려말의 불교회화들도 단순한 ‘따라하기’가 아니었다. 정교함과 리얼리티라는 점에서는 오히려 모델이었던 통일신라시대 미술을 뛰어넘고 있었다. 고려불화의 정교함은 지금의 스위스 시계의 위상만큼이나 럭셔리함을 자랑하는 것이었다. 이런 고려불화들은, 청자와 마찬가지로 그 제작기법이 전해지지 않아 십수년 전까지만 해도 많은 화가와 화공들이 비법을 연구하기 위해 매진했었다. 이후 고려불화에 대한 과학적이고 정밀한 조사가 이루어지면서 독특한 채색기법 등 그 베일이 하나둘 벗겨지기 시작했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이제는 고려불화를 뛰어나게 재현하는 화가들도 많아졌다. 그러나 아무리 똑같이 재현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고려시대의 불자들이 염원하던 바와 현대인들의 열망하는 바가 달라진 이상, 과거의 그림이 지금 사람들의 열망을 충족시켜주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고려불화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다시한번 르네상스와 같은 변화가 필요한 시기다. 그 변화의 목표는 물론 이 시대 사람의 염원을 반영하는 것이다.
유현정 作_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_100x200cm_비단바탕에석채,금_2018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에 참여한 현승조, 유현정 두 작가는 이 시대에 다시 한번 고전기 미술의 르네상스를 이끌고 있다. 고려가 고전기 미술에 북방의 다양한 양식을 반영했다면, 이번 두 작가는 조선시대 불화의 유구한 실험적 전통들을 다시금 고전기 미술과 접목시켰다. 현대는 성리학적 미감을 강조하던 조선시대보다는 럭셔리함을 강조했던 고려시대의 미감이 더 와닿는 시대일지도 모른다. 두 작가는 단순한 고려불화의 재현을 넘어 그 화려함의 당위성을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전시 제목의 ‘옛 법을 잇는다’는, 즉 ‘법고’는 고전기미술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인데, 기본적으로는 고려불화의 도상과 양식을 이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은은히 빛나던 것 같은 고려불화의 화풍보다는 보다 선명하고 밝은 이미지로 변화되었다. 고려불화가 촛불과 같은 은은한 불빛에 최적화된 양식이라면, 이제는 더 이상 촛불 속에서 예불을 드리는 사람은 없다. 이 시대의 일반적인 빛을 고려한 변화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더욱 세부의 정교함이 뚜렷하게 떠오른다. 마치 과거에는 기계식 손목시계의 뒷부분이 막혀있었다면, 이제는 투명하게 만들어 그 정교한 무브먼트를 보여주는 것과 같다. 뿐만 아니라 현실감은 더욱 강조되었다. 마치 바로 눈 앞에 불·보살이 현현한 것처럼 잡힐 듯이 보인다. 고려불화에서 유리구슬 같았던 광배는 이제는 빛이 퍼져나가는 분위기를 선명하게 드러내어 그 빛을 따라 저 멀리서 다가온 존재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또한 혜허의 <양류관음도>에서 다소 무뚝뚝한 표정이었던 보살은 현승조의 <수월관음도>에서는 더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재해석되었다. 현대인에게는 이렇게 더 친절한 보살이 필요할 것 같다.
유현정 作_아미타경도해(阿彌陀經圖解)4폭병풍_400x145cm_비단바탕에석채,금_2017
나아가 전통적인 표현들이 모여서 새로운 이야기를 담아내기도 한다. 현승조의 <아미타삼존도>는 고려불화에서는 독립적으로 존재했던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관음보살도를 그와 대칭되는 지장보살과 중앙의 아미타불을 결합하여 현대적인 삼존도를 탄생시켰다. 특히 여기서 구름을 탄 모습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적인 요소로 여겨졌고, 우리의 전통에서는 구름이 표현되지 않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새로이 고려불화 <관음보살 내영도>가 발견되어 구름 모티프가 우리 전통에도 있었음이 밝혀졌고, 몇 년 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조선시대의 <아미타삼존내영도>가 공개되었는데, <승운강림회(乘雲降臨會)>라고 아예 그림에 쓰여있어 구름의 표현만으로는 일본불화라고 단정지을 수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승조 작가는 마치 새로 확인된 고려시대의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관음보살도가 원래는 이처럼 삼존도의 한 폭이었을 것이라며 상상을 자극하는 듯하다. 특히 관음보살을 11면관음보살로 변화시켜 특별함을 더했다. 이에 반해 유현정 작가의 <아미타경 도해> 병풍에 등장한 아미타 강림장면은 언뜻 고려불화에서 봤음직 하지만, 전통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완전 새로운 창작이다. 창작임에도 익숙한 듯 보이는 것이 종교미술에서는 특히 중요한데, 종교는 늘 전통이나 익숙함을 강조하지만 사실은 끊임없이 시대상에 따라 변화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쩌면 중국이나 일본에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불화들이 많이 유행했는데, 유현정 작가는 우리나라에도 이런 도상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으로 완전히 우리의 화풍으로 도상을 재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강림 장면 아래로는 청록산수가 펼져쳐 있는데, 전통적으로는 하나의 배경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산수표현을 이렇듯 그림의 중요 장면으로 부각시킨 것은 현대적인 감각을 느끼게 한다. 왜냐하면 실제 현실 속 우리들이 사는 세상은 불화 속의 배경에 불과한 세상이 아니라,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를 통해 ‘우리’라는 현실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
유현정 作_정토연못_50x60cm_비단바탕에석채,금_2022
이번 전시에는 고려불화 뿐 아니라 <해인사 영산회상도>와 같은 조선 후기의 불화도 재현되었는데, 묘하게도 조선불화가 고려불화처럼 보인다. 반면 <지장시왕도>는 고려불화를 재현했음에도 묘하게 조선불화처럼 보인다. 우리가 지나치게 고려불화와 조선불화라는 이분법적 시각으로 나눠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두 양식을 다소간의 현대적 감각으로 정제하고 나니 그 이분법적 차이보다는 불화라는 더 큰 공통성이 먼저 보인다. 조선의 화가들도 현승조, 유현정 작가처럼 옛 법을 이어 새로운 불화를 그리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고려불화는 그 성공적인 복원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전시장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실제 예불공간인 법당 등에 걸리기에는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승조, 유현정 작가의 불화들을 보면 더 이상 고려불화 스타일이 전시장에만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실제 법당에 걸려도 예불화로서 충분히 기능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곧 그런 법당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오늘날의 고려불화 재현은 단순한 레트로가 아니다. 르네상스다. 현승조, 유현정 작가가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현승조 作_아미타불도阿彌陀佛圖_53x100cm_비단바탕에석채,금_2021
현승조 作_여래삼존도如來三尊圖 (관음)_60x105cm_비단바탕에석채,금,동_2023
현승조 作_여래삼존도如來三尊圖 (지장)_60x105cm_비단바탕에석채,금,동_2023
현승조 作_지장보살도_60x115cm_비단바탕에석채,금_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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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승조 | Hyun Seung Jo E-mail | aerugo@naver.com
■ 유현정 | Ryu Hyun Jung E-mail | gubung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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