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재 展

 

chapter7. 어둠의 깊이 마음의 깊이

Depth of abyss

 

Tiny wood_80.3x130.3cm_Oil on Canvas_2023

 

 

갤러리 진선

 

2024. 4. 25(목) ▶ 2024. 5. 30(목)

Opening 2024. 4. 25(목) pm 5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59, 2층 | T.02-723-3340

 

www.instagram.com/galleryjinsun

 

 

Tiny wood_193.9x391cm_Oil on Canvas_2023

 

 

삶의 빈자리

 

1.

김춘재의 풍경은 어둡다.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도록 한다’는 클레의 말처럼, 김춘재는 풍경보다는 풍경 속에 감추어져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한다. 어둠을 통해 풍경을 강조하는 것도 있지만 풍경을 삼킬듯한 아득한 어둠은 모든 이야기를 중단시킨다. 그러한 침묵은 감각이나 사색적 명상, 성찰로서는 파악할 수 없다. 어둠이 만들어 낸 풍경은 실존적 자의식으로만 파악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이러한 풍경은 현실을 초월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본질적으로 직관함으로써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Tiny wood_90.9x60.6cm_Oil on Canvas_2023

 

 

2.

동양화과 출신인 김춘재는 현재 페인팅 작업을 하면서도 여전히 동양화의 작업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화면은 전통적인 동양화의 구도를 보여주는데 다른 점은 여백을 어둠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업 초창기 김춘재는 도시 풍경을 주로 표현하면서 삶의 정체성과 혼란을 겪고 있는 시대의 자화상을 담으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 동시와 예술의 역할과 예술가란 직업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따라서 초창기의 일그러진 자취를 남기는 도시 풍경들은 바로 그러한 고뇌의 소산이었다.

몇 년 전부터 현재의 풍경 작업에 몰두하면서 김춘재는 예술과 예술가란 직업에 대한 긍정을 느끼기 시작했으며, 치열한 작업을 통해 현재의 작업에 이르렀다. 회의와 고통의 시간을 극복하면서 만들어진 풍경 작업은 그래서인지 짙은 정감과 깊은 호소력으로 다가온다.

 

 

Tiny wood_112.1x162.2cm_Oil on Canvas_2024

 

 

3.

김춘재가 전통적인 동양화를 서양화의 방식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나타난 공통점은 배경인데, 특히 검은색의 여백이다. 이러한 검은 색의 배경은 동양화의 여백이 가진 공(空)의 발현태를 넘어서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검은 여백은 모든 사유의 과정이 정밀하게 집약되어 있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견고하다.

어두운 배경은 단순히 풍경을 강조하거나 풍경을 삼키려고 하지 않는다. ‘내 속에 담긴 허공’처럼 풍경과 어둠은 하나의 몸 같은 것이다. 고통과 절망의 원인은 존재의 불확실성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삶의 과정에서 자기 존재를 찾기 위해서는 ‘역발상’이 필요하다. 기존의 시각과 다른 전도된 시각을 통해 김춘재는 참된 풍경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통적인 동양화가 원경을 중심으로 시점의 변화가 나타난다면 서양화의 화법은 근경의 시점에서 변화를 지속한다. 김춘재의 작업은 이러한 동서양화의 변이 과정을 다인칭 시점으로 변화시킨다. 어둠의 여백, 외형적 원경과 내면적 근경을 조화시키는 이러한 작업은 단순히 조형적 어법을 확장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사실상 인식의 연쇄 고리를 통해 예술적 깊이와 소통의 폭을 확장시킨다.

이러한 작업 방식의 특징은 자신의 존재 부정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극한으로 자신의 자아와 작업을 몰아가는 것으로, 그 작업의 끝에 새로운 세계가 등장하고 그 세계를 구성하는 새로운 지평이 드러난다. 허무와 고통을 딛고 극한의 경지에서 비로소 ‘공’(空)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김춘재의 작업은 무겁고 닫힌 공간이 아니라 생동감 있는 열린 공간이다.

 

 

Tiny wood_60.6x90.9cm_Oil on Canvas_2023

 

 

4.

김춘재의 작업은 ‘실재’와 ‘상징’이라는 대척점을 능숙하게 조화시키고 있다. 사회체계에서 부정적인 상징과 긍정이라는 현실의 실재를 같은 지평에 융합함으로써, 작가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조형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융합은 관념이나 개념이 아닌 자연의 영역에서 나타난다.

작가는 자신의 감각을 자연으로 향함으로써 인간과 자연을 대립이 아닌 ‘함께-있음’(mit-sein)으로 이해하고, 세계라는 실존적인 상황에서 인간과 자연을 세계에 ‘함께-거주하는’(mit-leben) 존재로 만들었다. 강과 숲으로 구성된 화면은 각각의 가치를 가진 존재자들이 아니라, 현실과 내면을 함께 표현하는 그럼으로써 일상의 삶의 부조화를 채워줄 수 있는 함께하는 존재자들인 것이다. 그저 바라보는 감상의 대상이나, 정복의 대상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 거주하는 강과 산, 나무들은 우리들의 비워진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요소들로 작용한다.

궁극적으로 김춘재는 삶에 관해 이야기한다. 어두운 배경은 화면에 대한 몰입이나 자아의 내적 질서와 균형을 위한 것은 아니다. 단순히 자아의 성찰로서 어둠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 삶에 대한 진정한 현실 인식을 수반함으로써 어둠이 나타나는 것이다.

존재의 본질이 스스로 드러나기 위해서는 은폐된 상태에서 벗어나 스스로 발현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은폐는 장애가 아니라 인간 실존의 조건이다. 일상에서 익숙한 삶의 방식이 바로 은폐이다. 그러나 진정한 존재의 의미, 자연과의 조화를 통한 새로운 삶에 대한 의지는 은폐를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김춘재의 풍경은 어둠을 통해 익숙한 삶의 방식을 벗어난 상태이고, 어둠 자체를 통해 우리 삶의 참모습이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김춘재의 풍경은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아니다.

 

 

Tiny wood_27.3x34.8cm_Oil on Canvas_2023

 

 

5.

작가는 풍경이 어떤 특정한 장소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관념이나 상상 속의 풍경도 아니다. 현실의 풍경이지만 우리가 그 풍경을 볼 수 있는 순간은 길고 긴 여정을 거쳐야 한다. 즉 우리가 세상을 새롭게 조망하고 현실을 다시 바라보아야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여기에는 직선의 시간이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함께하는 시간이 흐른다. 그래서 자세히 김춘재의 화면을 보면 낯설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그 풍경은 우리와 함께하는 풍경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김춘재의 풍경은 현실이 자연을 통해 내면화된 삶의 풍경이다. 이러한 내면화는 자연 대상과 삶의 현실에 대한 정서적 인식이 주체의 관점에서 수용하여 재구성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여기서 나타나는 자연풍경은 쓸쓸한 상념에 휩싸인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는 감성을 통해 축적되고 내면화된 풍경이다. 관조와 욕망의 정화를 통해 예술적 정서와 자연 본연의 모습을 조화시키는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며 우리의 사유의 근본을 철저하게 깨닫고, 나와 자연의 연결점을 시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김춘재의 작업이다. 개인적 정서를 머무르게 하지 않고 자연 속으로 채색시킴으로써 우리의 삶을 정화하고 정감어린 자연의 세계로 다가서게 하는 것, 이러한 김춘재의 작업이 바로 우리 삶의 빈자리를 조용히 채워주는 예술인 것이다.

 

김진엽(미술비평)

 

 

Tiny wood_116.8x91cm_Oil on Canvas_2024

 

 

Tiny wood_53x45.5cm_Oil on Canvas_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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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40425-김춘재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