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신 사진展

 

어머니의 땅

 

길위에서 만난 어머니 - 2005 진안군

 

 

서학동사진미술관

 

2024. 4. 2(화) ▶ 2024. 4. 14(일)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서학로 16-17

 

 

장에 가는 어머니 - 1988 구례

 

 

고향은 인간 삶의 근원적 뿌리임에도 불구하고 고향을 잊은 채 살아간다. 잊는 것이 아니라 아예 고향을 잃어버린다. 경제발전이라는 목표를 향해서 앞만 보고 치달리는 동안 우리민족과 함께 호흡하며 오랫동안 내려오던 옛 풍물들이 훼손되고 사라지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빠른 속도로 훼손되고 사라져가는 고향에서 마주쳤던 풍경을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소환해 본다.

어머니라는 이름 뒤에는 늘 자식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희생이 따른다. 그리고 민족의 뿌리를 내리는 땅과 강을 대지에 비유하는 모성은 존재의 근원이자 삶이다. 어머니의 상징성은 고향이다. 고향은 태어난 곳, 돌아가고 싶은 곳, 모든 것이 용서되는 곳이자 항상 기대고 싶은 대상이다. 고향은 집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고, 나를 키워준 나무가 있고, 나를 먹여 준 밭과 논이 있고, 그 안에는 항상 어머니가 존재한다.

80년대 후반의 고향의 모습과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을 오래된 흑백사진으로 소환한다. 가뭄 끝에 비가 내려 모내기철이 되면 사방이 초록으로 물든 논에서 어머니가 써레질을 하고, 모심을 논을 고른다. 고무다라 가득 모내기할 모를 이고 곡예사처럼 걸어가는 어머니들의 모습은 숭고하다. 검정고무신을 신고 정강이까지 올라간 몸빼바지, 무거운 모를 이고 함박웃음을 짓는 모습 등은 고향이 주는 따뜻함이자 어머니들의 공동체가 빚어낸 아름다운 풍경이다.

한국인의 집단무의식은 어머니들의 한(恨)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옛 조상들이 경험했던 신화나 전설, 혹은 민담이 어머니들의 호미질에 녹아들어 그녀들만의 지혜를 만들고 한(恨)을 만들어낸다. 우리사회는 다른 나라에 의해 강제로 나라의 주권을 빼앗겼던 일제 강점기, 외세의 영향과 간섭에 의해 발발했던 6.25전쟁, 전쟁 이후 분단이 가져온 현재까지 지속되는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상처는 집단무의식의 원형으로 남아 한(恨)이 되었다.

 

 

대지에서 일하는 어머니 - 1987 영암군

 

 


고향을 그리워하다보면 가족이, 어머니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우리는 가족을 성과 혈연의 관계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사회집단으로 본다. 특히 유교적 전통이 강한 우리사회에서는 부모가 본능적으로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을 당연시 한다. 나아가 가족은 공동체적 사회의 원형으로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1970년대 이후 진행된 도시산업화로 인한 사람들 사이의 단절과 소외의 문제, 80년대 민주화운동 가운데 드러난 세대, 계층 간의 갈등이나, 1990년대 이후 더욱 심화되어 가는 개인의 고립화와 가정의 파탄은, 역사의 격변 속에서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가정 안에서 언제나 희생과 인내로 살아온 어머니들이 이 급속한 사회변화 속에서 가정을 올곧게 지켜온 것이다.

20세기중반의 한국사회는 철저한 가부장제 사회로 그 시대를 살았던 어머니들은 남성에게 종속적이고 열등한 존재로 인식되어 일생동안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당대의 비합리적인 가치관과 윤리적 덕목이 우리어머니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다. 어머니들은 자기 본성대로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힘 있는 자에게 무시당하거나 피해당할 때 그 억울함이나 응어리로 맺힌 한(恨)을 오로지 가정과 자식을 위해 희생한 것이다.

고향은 도시라는 공간과는 다른 원초적인 생명력과 어머니의 사랑과 한이 고여 있으며, 끈질기고도 훈훈한 정감과 애환이 숨 쉬고 있다. 고향은 생활 속에서 위로 받으며 의식의 끈을 유지하고 있다. 그곳에, 어머니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대지이고 삶이다. 고향의 포근함을 느끼게 하는 어머니의 사랑이자 우리의 고향이다.

 

 

대지에서 일하는 어머니 - 1987 영암군2

 

 

장터에서 만난 어머니 - 2012 곡성옥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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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40402-정영신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