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리 展

 

Entre les deux: A travers le vide et le plein

 

Entre le vide et le plein_캔버스 위에 아크릴, 연필_59.8x59.8cm_2023

 

 

갤러리 도스

 

2024. 2. 28(수) ▶ 2024. 3. 5(화)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7길 37, 제1전시관(B1) | T.02-737-4678

 

https://gallerydos.com

 

 

Entre-Temps_캔버스 위에 아크릴, 연필_59.8x59.8cm_2023

 

 

Entre les deux: A travers le vide et le plein

여기, 풍선 하나가 있다.
당신은 그 풍선에 숨을 불어 넣는다.

곧이어 부풀기 시작하는 풍선.

차오르는 달처럼, 혹은
생명을 잉태한 여인의 배처럼,
당신이 내쉰 숨을 양껏 빨아들이며 풍선은

제 안을,

채운다.

그 채움은 필시 면죄 받은 것. 그 면죄 받음은

밀려드는 타인의 숨에 앞과 뒤가 거의 붙어있던 자기 안의 공간을 늘려 종국에는
그 안을 타자로 채운다.

.

.

.

여기 환풍기 하나가 있다.
낡은 건물은 벽을 사이에 두고 안과 밖으로 나뉘고,
나뉜 공간은 환풍기로 뚫린 네모진 ‘빈’공간 안에서 회전한다.
이때, 당신은 묻는다.
'환풍기를 통과하는 공기는 환풍기를 통과하기 전과 후가 다른 것인가?'

풍선은 부풀고, 부풀려지다가…

‘펑’하는 굉음과 함께 터지고

당신은 또다시 묻는다.
부풀기 이전의 풍선과 부풀어 오른 풍선, 터져서 이전과는 다른 모양을 갖게 된 풍선. 그것은 하나인가, 둘인가, 셋인가?

여기, 풍선 하나가 있다.
잘 부풀려진.

그 풍선의 안과 밖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시시각각 부풀어 오르는 풍선.
그 풍선 안을 채우는

허공.

나.

그리고 너.

지구상에는 식물과 동물, 박테리아와 균 등을 포함해 약 870만 종의 생물이 살고 있다.
그들은 매일 호흡하며 생명 유지에 필요한 조건에 따라 다양한 활동을 이어간다.
그러면서 상호 간 유기적 관계를 맺는다.
인간도 그렇다.

 

 

Entre le vide et le plein, 캔버스 위에 아크릴, 연필, 45.5x45.5cm, 2022~2023

 

 

다시 환풍기의 안과 밖으로, 풍선의 안과 밖으로 돌아가 보자.

환풍기를 통과하기 이전과 이후의 공기는 다른 것인가.
풍선을 풍선이게 하는 것은 풍선 안을 채우는
숨인가, 풍선을 떠받치는 대기인가, 아니면 풍선을 풍선이라 이름 짓게 한 탄성을 지닌 물질인가.

인간은 1분에 약 18번의 호흡을 한다. 그것을 하루 24시간으로 환산하면 1,440번인 셈이다.

이 호흡 속 들숨에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870만 여종의 생물이 내뿜은 '숨'이 포함되어 있고, 호흡기를 통해 신체 내부로 들어간 그 숨은 나라는 개체를 데리고 들숨과 함께 몸 밖으로 나와 대기와 섞인다.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아찔해지는 명제이다. 그러나 놀라기엔 아직 이르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므로, 이 단 한 번의 숨 속에는 수백억 년 동안 이 모습에서 저 모습으로 이동해 변화하며 탄생과 소멸을 거친 존재의 '존재함'과 '존재하지 않음'이 들어있다.

이때 던질 수 있는 질문 하나.

나는 누구인가.

거기 나올 수 있는 답은 하나다.

나는 너.
무수한 그 너.
시간을 뛰어넘는 영원.
그 영원 속 끝없는 움직임.

이쪽과 저쪽이 존재하지 않는

꽉 찬 허공.

<Entre-Temps(~하는 사이)>에 이어 시작된 나의 <Entre les deux: A travers le vide et le plein(두 사이: 텅 빔과 가득함에 대하여>는 이렇게 시작된다.

 

 

Entre-Temps, 캔버스 위에 아크릴, 연필, 45.5x45.5cm, 2019

 

 

Entre-Temps, 캔버스 위에 아크릴, 연필, 91x91cm,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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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40228-지연리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