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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미 展
폭풍(The Tempest), 2023_캔버스에 아크릴릭_200x240cm
페레스프로젝트 서울
2024. 1. 25(목) ▶ 2024. 3. 3(일)
서울특별시 율곡로1길 37 | T.02-2233-2335
https://peresprojects.com
기적(The Miracle), 2023_캔버스에 아크릴릭_200x120cm
페레스프로젝트가 제레미(1996년, 스위스)의 아시아 최초 개인전, ≪폭풍의 눈(The Eye of the Storm)≫을 2024년 1월 25일(목)부터 3월 3일(일)까지 개최한다. 2023년 4월, 페레스프로젝트 삼청동 지점의 개관전 ≪The New, New≫ 및 국내 아트페어를 통해서 자신의 작품을 소개해 왔던 신예 제레미는 이번에 더욱 폭넓어진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다채로우면서도 유기적인 최신작들로 대규모 개인전을 선보이기 위해 다시금 한국을 찾았다. 이번 전시는 이분법적 분류를 넘어선 정체성, 신화, 그리고 퀴어 이미지에 중점을 둔 제레미의 독창적인 화풍과 특유의 서사 구축 방식을 본격적으로 국내에 소개하며 한 층 기대를 모은다. 폭풍의 “눈”은 바람이 강렬하게 휘몰아치는 곳일 것만 같지만, 실제로는 폭풍 안에서도 주위의 혼돈에서 벗어난 가장 잔잔한 곳을 의미한다. 하지만 바람은 움직이는 힘이기에 그 “눈”은 계속해서 따라 이동하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혼란 속 도피처라는 폭풍의 눈이 갖는 본래의 의미는 이내 머릿속에서 날려져 버리곤 한다. 이러한 지점에서 떠오른 영감을 바탕으로 제레미는 16점의 신작을 전시장에 휘몰고 온다. 고대 신화와 판타지 문학, 비디오 게임에서도 영감을 받은 작가는 자신의 예술을 세계관 형성의 한 형태로 본다. 미인 대회에서 우승한 <미스 키클롭스 23(Miss Cyclope 23)>(2023)에서 보이듯, 그는 각 작품에서 사소한 아이디어가 관습에서 벗어난 신체와 정체성에 대한 성찰을 불러일으키는 비규범적인 우화로 가득 찬 우주를 구축한다. 이번 전시는 관객을 작품에 몰입시킴과 동시에 회화를 공간적, 개념적으로 연결하는 서술을 포괄적으로 펼쳐 내기를 시도한다. 초기에 설치 작업을 했던 제레미였기에, 이번 전시에서는 프로듀서 골체(Golce)가 제작한 약 20분 가량의 사운드트랙을 더하는 것으로 전시장을 더욱 풍성하게 채운다. 장내 울리는 사운드는 관객을 감싸며 이들에게 더욱 증강된 경험을 선사한다. 부드러운 산들바람에서 시작해 뇌우로 커지며 여러 겹의 음파로 중첩된 사운드는 전시와 작품 간의 서사의 흐름에 맞춰 따라 흐른다.
미스 키클롭스 23(Miss Cyclope 23), 2023_캔버스에 아크릴릭_80x60cm
오랫동안 제레미 작업에서 중심을 이루어 왔던 신체 도상들은, 이번 신작을 통해 한층 새로운 차원을 보여준다. 지난 페레스프로젝트 베를린에서의 개인전 ≪Mourning Opulence≫에서는 무정형의 얼굴 없는 인물을 등장시켜 일련의 흉상 초상화와 상황에 맞는 전신 초상화를 통해 초상화법 탐구를 보여줬다. 이처럼 다양한 관점으로 특정 장르에 접근하는 제레미는 미술사와 그래픽 아트에서 가져온 다양한 자료 바탕으로 작업을 탄생시킨다. 고대의 이상적인 신체와 주름이 진 옷을 묘사한 <금빛 피부(Golden Skin)>(2023)을 시작으로, <붉은 옷을 입은 진주 귀걸이를 한 여인(Lady with Pearl in Red)>(2023)에서 엿볼 수 있는 독일 표현주의, <고백(Confession)>(2023) 속 일본 만화, <장미(Rose)>(2023)의 여권 속 얼굴 사진까지, 다양한 미학을 아우르고 있음을 뒷받침해 주고 있음을 확인해볼 수 있다. 작품 속 물결치는 머리카락, 소용돌이치는 나뭇잎, 돛처럼 휘날리는 의복을 통해 작품 전반에 걸쳐 바람이 불고 있음을 보여준다. 바람은 예로부터 미술사 전반에 걸쳐 많은 예술가들을 사로잡은 표현의 대상이었다. 바람은 형체도 없고, 보이지도 않아서 오직 바람으로 인해 일어나는 주변 현상과 바람이 남긴 흔적을 통해서만 알아차릴 수 있다. 제레미는 <플루트 연주자(Flute Player)>(2023)와 <흡연 시간(Cigarette Break)>(2023), 그리고 <기도(Prayer)>(2023)를 통해서 바람이 무형무체의 존재가 아니라 제 모습을 각기 달리하는 존재로 묘사하여 악기, 담배 연기, 내리는 비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봄바람처럼 즐겁고 희망적인 바람은 파괴적일 수도, 나쁜 소식을 전할 수도, 질병을 옮길 수도, 전설에 따르면 광기를 유발할 수도 있다. <폭풍의 징후(Signs of the Storm)>(2023)의 순수함에서 <폭풍(The Tempest)>(2023)의 혼돈으로 전환되는 다양한 분위기를 통해, 제레미는 풍부한 내러티브 요소의 함축적 의미를 탐구한다. 제레미는 반복, 특히 스스로를 답습하는 것에 저항하는 대신 변주의 예술을 발전시킨다. 이처럼 끊임없는 쇄신을 통해 자신만의 미적 감각을 개발하는, 흥미진진하면서도 어려운 도전을 받아들이고 이를 탁월하게 수행한다. 바람과 같은 주제든 인물화와 같은 형식이든, 동일한 회화 대상에 대한 그의 입체적인 접근 방식은 독특한 미감과 세계관을 모두 표현할 수 있게 한다. 강렬하고 비정형적인 색상, 관능적인 곡선, 장식과 감정의 풍부함, 기이하고 환상적인 것에 대한 탐닉을 병치하여 매우 일관성 있으면서도 눈에 띄는 작품을 끊임없이 창작해 낸다. 제레미는 퀴어 시각으로 미술사와 미술사의 규범을 다루며 이분법적 분류를 넘어 인간의 신체와 존재를 재구성한다. 제레미는 격동의 시대를 염두에 두고 폭풍의 한가운데서 예술가의 역할에 대해 질문하고 새로운 가능성과 내러티브를 상상하는 것을 자신의 역할로 받아들인다. 이번 전시에서 폭풍의 눈은 처음에 언급했던 바와 같이 완전한 도피처를 상징하지 않는다. 우리 시대가 당면한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유토피아적 대안을 꿈꾸고 상상하는 것 또한 중요하지만, 사막 속 오아시스와 같이 혼돈 속에서도 희망이 살아남을 수 있는 안식처도 필요하다. ≪폭풍의 눈≫은 중력에 사로잡힌 와중에도 희망적인 낭만주의를 떠올리게 만든다. 제레미가 특유의 재치로 엮어낸 이번 작품들은 하나의 순환 체계를 이루며 더 나은 시기를 상상하게 한다. 전시명과 동일한 제목의 작품인 <폭풍의 눈(The Eye of the Storm)>(2023) 속에는 불확실하지만, 희망의 메시지를 뜻하는 문구가 부분적으로 가려진 채 관객이 해독할 수 있는 암호화된 열쇠로 숨겨져 있다.
황홀한 바람(Magical winds), 2023_캔버스에 아크릴릭_200x12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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