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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겸재의 맥 초청기획전 I
필+묵 사유하는 실천 展
권기철 · 김선형 · 박방영 · 박종갑 · 신영호 · 유미선 · 윤대라 · 윤종득 · 이철량 · 조환
2024. 1. 5(금) ▶ 2024. 3. 3(일) 초대일시 2024. 1. 18(목) 16시 서울특별시 강서구 양천로47길 36 | T.02-2659-2206 어른 : 1000원 (20인 이상 단체 700원) | 청소년 및 군경 : 500원 (20인 이상 단체 300원) 무료관람 : 7세 이하 및 65세 이상, 국가유공자, 독립유공자 및 그 유족 또는 가족, 장애인 및 그와 동행하는 보호자 1인, 다둥이행복카드 소지자 (등재된 가족 포함) 1~2월 : 평일·주말·공휴일 10:00 - 17:00 | 3월 : 평일 10:00 - 18:00, 주말·공휴일 10:00 - 17:00 휴관일 : 매주 월요일
주최.주관 | 서울강서문화원, 겸재정선미술관 후원 | 강서구청, 강서구의회
현대의 한국화는 동양의 전통적 사유체계를 기반으로 다양한 철학적 변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 생태 환경의 파괴 등을 바라보며 인간의 통제 속에 가두려 했던 기존의 사고방식을 재고하여 자연과 공생하는 인간으로서 세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의 논재를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이러한 현 상황에서 동양철학과 전통적인 화법을 계승하며 새로운 매재媒材의 확장을 통해 한국화의 현대적 변용을 보여주고 있는 현대 작가 10인을 초청하여 2024년 《겸재 맥脈 잇기 초청 기획전》 그 첫 번째 서막을 열고자 합니다.
필묵筆墨은 단순한 예술적 도구로서의 가치를 넘어 그 자체로 예술정신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필과 묵의 정서에 기반해 일관된 창작열을 보여주는 작가들의 창작 정신이 세상과 조우하길 바라는 의미로 <필+묵 사유하는 실천> 전시를 마련하였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화의 현주소를 확인하고, 다른 영역과의 통섭을 통하여 현대 한국화의 잠재적 가능성 및 방향성을 모색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나아가 이번 전시가 현대 한국화의 발전에 활력을 불어넣는 기폭제가 되어 K컬처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수 있는 좌표가 되길 바랍니다.
철학과 물질, 은유의 하이브리드
이준희 | 건국대 현대미술학과 겸임교수
현재는 과거와 미래에 맞닿아있다. 흘러간 세월의 흔적, 다가올 사건의 징후가 스며있는 시공간이 오늘이다. ‘지금, 여기’는 오늘의 또 다른 이름. 찰나의 순간이 무한 반복되는 지금이다. 끝없이 확장되는 공간이 여기다. 반면 인간은 유한하다. 누구도 예외 없이 시한부 인생을 살아간다.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 인간은 전지전능하지 않다. 어떤 정답도 제시할 수 없다. 멀고 가까움, 길고 짧음, 높고 낮음, 무거움과 가벼움…. 인간이 가늠하는 감각은 늘 불완전하다. 그것에 대한 가치평가 역시 불명확하다. 모든 게 상대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진-선-미, 즉 참과 거짓, 선과 악, 미와 추 같은 감성적 판단도 마찬가지. 칸트는 인간이 지닌 이성의 한계를 각각 인식론, 윤리학, 미학으로 구분해 비판했다. 예리한 통찰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새삼 다시 생각해본다. ‘전통의 현대적 계승’이란 문제를. 이미 낡아빠진 화두로 여겨진다. 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명제임엔 틀림없다. 모범답안은 없다. 각자 다른 입장만 있을 뿐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해석의 출발은 ‘오늘의 시대정신’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된다. 나(주체)와 타자의 다름을 이해하는 건 그 다음이다. 지향하는 바가 달라도 서로 존중하고, 공감하는 태도가 요구된다. 이때 필요한 덕목이 철학이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세계’와 ‘마음’에 대해 사유하는 학문이다. ‘철학을 공부한다’와 ‘철학을 한다’는 다르다. 앞에 동사(動詞)는 수동적이다. 마치 책으로 공부하는 미술사(史) 같다. 철학을 단순히 학습 대상으로 여긴다는 면에서 그렇다. 반면 ‘철학을 한다’는 것은 능동이다. 관념이 아닌 실천을 의미한다. 세상과 인간(마음)에 대한 사유에만 머물면 반쪽인 셈이다. 실천이 동반되어야 온전히 철학을 하는 삶이다. 철학적 사유와 창의적 실천을 통한 유의미한 물리적 실체의 구현. 이것이 미술이다. 철학자의 기본자세는 의심과 비판이다. 이런 점에선 화가도 다르지 않다. 전복과 반전으로 초월을 시도하는 사람이 화가다. 화가는 창조적 실천으로 패러다임을 극복한다. 독창적 조형 어법으로 주체성을 표현한다. <필+묵, 사유의 실천展> 참여 작가 열 명. 저마다 짊어진 철학적 사유를 실천하는 화가들이다. 전통에서 비롯된 문제의식에 능동적으로 반응한다. 현대적 화법을 창발하고 실험한다. 겸재정선미술관 전시장에서 그들의 수행(修行) 성과를 목격할 수 있다.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 진경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의 그림은 조선 회화사의 고전적 전범으로 칭송받는 진경산수의 정수로 알려져 있다. 진경시대는 조선 제19대 왕 숙종(1674~1720)에서 23대 순조(1880~1883)에 이르는 약 150년간을 일컫는다. 조선성리학을 근간으로 한 조선중화사상을 토대로 대두된 조선 중심적인 주체적 의식이 발아된 시기다. 겸재는 65세부터 70세까지(1740~1745년)양천현 현령을 지냈다. 겸재정선미술관이 위치한 강서구가 그곳이다. 《경교명승첩》을 비롯해 《양천팔경》, 《연강임술첩》 같은 걸작이 탄생한 무대기도 하다. 300여 년이 흐른 뒤, 같은 자리에 후예들이 모였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옛것을 살펴 새로움의 지혜를 얻고자 함이다. 겸재의 맥을 잇고자 함이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자 함이다. 참여작가 10명을 선정하고 섭외한 장본인은 박종갑이다. 뜻을 같이하는 동료 선후배를 모았다. 이들을 한데 묶는 공통분모는 필(筆)과 묵(墨), 즉 붓과 검은색 물감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가장 기본적인 동양화 도구다. 물론 예외도 있다. 먹 아닌 유색 물감(김선형, 유미선, 윤대라, 박방영), 심지어 금속판(조환)을 사용하는 작가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정서는 일맥상통한다. 사용하는 화구(畫具)를 자신의 신체 일부처럼 능숙하게 다룬다는 점이다. 감히, 물아일체(物我一體) 경지라 하겠다. 필묵과 화구는 정신에 버금가는 중요한 무기(武器)다. 몸과 그림을 이어주는 매개체다. 붓과 물감은 비물질 사고(思考)를 가시적인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영매(靈媒) 노릇을 한다. 새삼 붓과 먹으로 상징되는 사물의 물질성을 주목한다. 필은 행위요, 묵은 물질이다. 행위와 물질의 만남은 무한한 가능성. 정신과 육체가 결합해 의외의 결과물로 승화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작가 모두 30~40년 이상 올곧게 작업해 온 중견이다. 각 분야에서 일가를 이뤘다. 이들의 작품은 ‘한국(인)의 정체성이 깃든 동양화’로 환원된다. 십인십색(十人十色), 형식과 내용이 다채롭다. 그림 이면에 숨겨진 상징을 찾아 해석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예컨대, 조환은 소통에 사용되는 문자를 투조(透彫)한 철판 오브제로 오히려 단절과 좌절의 벽을 암시한다. 박종갑의 거대한 돌탑은 인간이 쌓아가는 불안정한 문명에 대한 은유다. 인류의 나아갈 길에 대한 성찰이 담겨있다. 한일자(一) 선으로 시작된 권기철의 붓질은 하나의 상징이 수만 갈래 다양한 획으로 변주된다. 서예와 전각으로 수련한 윤종득의 철필(鐵筆)의 획은 내공이 깃든 산(山)으로 거듭난다. 담묵점(淡墨點)으로 화면을 가득 채운 이철량은 ‘또 다른 자연’의 명제로 자연과 우주의 관계를 표현하고, 푸른색 물감으로 ‘꽃 아닌 꽃’을 그려낸 김선형은 천진난만의 극치를 보여준다. 윤대라는 도시에서 시골로 이주한 시간 속에서 마주한 삶과 죽음을 동식물이 어우러진 ‘피에타’ 도상으로 해석했고, 유미선은 할머니 댁 앞마당 기억을 친근한 소재인 꽃과 새로 기록했다. 대나무와 개미가 등장하는 신영호의 현대적 초충도는 낙관과 서명이 조화를 이루며 ‘리큐드 드로잉’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박방영은 읽는 글씨와 보는 그림의 경계를 허문다. 그의 시서화(詩書畵)는 현대적 문인화(文人畵)다. 전시를 기획한 박종갑은 “현대 한국화는 동양의 전통적 사유체계를 기반으로 다양한 철학적 변주를 보여주고 있다”며, “기후변화, 생태환경 파괴 등 인간의 통제 속에 가두려 했던 기존 사고방식을 벗어나 자연과 공생하는 인간으로서 세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고민하는 현 상황에서 전통 화법을 계승, 새로운 매체를 실험적으로 탐구함으로써 한국화의 현대적 변용을 보여주는 작가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그의 뜻처럼 필묵은 단순한 예술적 도구로서의 가치를 넘어 그 자체로 새로운 예술정신을 상징한다. 겸재의 맥을 잇는 이 전시는 필과 묵의 정서에 기반한다. 한국화의 발전적 방향성을 모색하는 사유의 실천을 보여준다.
권기철 作_untitled_212x155cm_한지 위에 먹_2022
권기철 작가노트 나의 수묵 작업은 몸으로 그리는 몸 그림이고, 작품은 선이 변주되는 추상이다. 그것은 대상을 이미지로 읽고 몸의 제스처로 변환시킨 것이고, 직관과 몸짓만 남도록 한 배설의 또 다른 형상이기도 하다. 서체에서 출발한 타이포가 드리핑 된 <어이쿠>, <무제>란 표제는 시간이 공간의 개념으로 스며드는 작업 즉 순간과 행위의 하나를 의미한다.
한일자 (一) 선으로 시작된 하나의 상징이 때로는 수만 갈래 다양한 획으로 변주된다. 일테면 하나가 전체이고 전체가 하나라는 ‘一卽多 多卽一’(일즉다 다즉일)의 함의다.
작위와 무작위가 엄밀히 구획되는 작업에서, 붓과 물감이라는 도구는 마치 능동체인 듯 내 몸과 다르지 않다. 한지는 발묵과 번짐, 흘러내리기, 튀기기 등의 작용으로 팽팽한 긴장의 순간을 최대치로 구현할 수 있다. 그 위에 발현된 불균형한 형상들의 포치는 밀고 당기는 내밀한 에너지로 분배되어 균형미를 획득한다.
몸과 마음이 온전히 무아지경으로 몰입되는 지점, 거기에는 몸의 관성이 작동하는 행위가 생각이 분화하는 소실점을 만나 작업은 존재하되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탄생 된다. 작품은 정신의 날이 무아의 획으로 체득되고, 육화된 몸의 행위만을 남긴다. 나의 행위와 나의 그림은 온전한 합일체이다.
김선형 作_gardenblue_300x150cm_on cotton_2023
김선형 작가노트 푸른 빛을 품은 아름다운 정원은 그의 작업의 주제인 동시에 그가 보는 세상의 축소판이다. 푸른 세상이 작가의 심연으로 스며들고, 작가의 가슴에서 요동치다가, 작가의 손끝으로 집약되고, 그 손끝이 푸른 물을 머금은 붓끝을 매개로 한지 화폭에 다시 그만의 푸른 세상을 만들어 낸다. 그가 표현하는 푸른 세상은 자연과 대상에 대한 관찰의 결과이지만, 동시에 그의 시선을 넘어선 마음속 정원으로 그가 바라는 이상향이다. 푸른 정원에는 현실과 비현실이 교차하고,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형상성과 추상성이 모두 보인다.
박방영 作_馬夢_127x147cm_장지 위에 혼합재료_2023
박방영 작가노트 내가 만나는 사람들 사물들 모든 것들은 내 안에 있는 것들이 밖으로 펼쳐진 것이다. 옛글 중에 관물지외물(觀物之外物)이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내가 본다는 것은 내 안에 있는 것이 밖으로 펼쳐져 있는 것을 본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 안에 있는 DNA, 활동성, 방향성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각자는 자기가 보는 것과 조응하면서 자신을 기억 <REMEMBERING. Re(다시)-Member(조직하다)>해 내는 것이다. 다시 조직해가며 자기 찾기를 통해 진화해 가는 것이다. 내 인생길에서 인연 만남 체험했던 모든 것이 현재의 나이다.
나는 획으로 지지체를 삼고 작업을 한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서예, 서법으로 전국대회 최고상을 탔던만큼 획에 대한 느낌을 잘 알고 있다.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서예의 필법이 가장 중요한 방법이었다. 동양의 획은 단순한 선이 아니라 밧줄 같은 둥근 입체성을 가진 것이다. 획은 단순하지만 모든 것을 통합하고 있는 것이다. 그 획을 통해서 삶에서 느끼고 깨닫는 것들, 자연과 인간 어릴 적 즐거웠던 기억들. 우리가 궁극에 도달해서 살고 싶은 본래의 고향(본향). 우리가 예로부터 가져왔던 우리 것. 역사와 전통, 해학, 고졸미, 원시성, 영적 진화와 민화가 그랬던 것처럼 집안에 운세를 만들거나 발복, 건강 등의 바램도 그리곤 한다. 그림을 그리다 라는 것은 바램이나 선언을 실체화시켜 당겨 끌어온다는 말이다. 꿈을 그리다, 사랑을 그리다, 그림을 그리다 라는 말은 같은 의미이다. 그리워한다는 말이다. 그리워한다는 의미는 바램(에너지)을 끌어온다는 말이다. 꿈을 끌어온다. 사랑을 끌어온다는 말이다. 그림은 바라는 일, 즉 보다 나은 삶을 끌어오는 행위이며 꿈, 사랑, 바램을 실체화시키는 일이며, 영적 진화를 이뤄가는 길이다.
나의 그림은 일필휘지로 기운생동 하게 분출하듯 한지 위에 먹과 펄 아크릴을 혼합해서 작품을 한다. 한지는 스며들고 번지는 효과가 있어 위로만 쌓이는 캔버스와 구별된다. 보다 동양의 정서에 어울린다. 나의 그림을 통해 건강하고 즐겁고 깊은 삶으로 이끌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박종갑 作_문명-쌓다(積)_244x318cm_한지에 수묵, 자작 필, 토분_2022
신영호 作_Boo001_139x101cm_Ink on Paper_2023
신영호 작가노트 먹(墨)은 나무를 태우거나 식물성 기름을 연소시킬 때 발생하는 그을음을 모아 아교에 개어 굳혀서 만든 안료이다. 먹은 세상에 존재하는 입자로 된 물질 중 가장 미세하다. 주목할 것은 원래의 먹은 액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먹 자체는 미세한 입자로 구성되어있는 고체 알갱이다. 그래서 서양화의 소묘, 곧 드로잉이 고체로 된 목탄이나 흑연(黑鉛)으로 된 연필로 종이 위에 마찰을 일으켜 긋는 행위가 기본적인 작용이라면, 수묵은 먹의 미세한 입자가 물에 용해되어 종이의 섬유질 사이로 스며드는 작용이다. 드로잉과 수묵은 재료와 활용한 표현 방식이 서로 다르지만 물질적 측면에서 분석해 보면 매우 밀접함을 알 수 있다.
유미선 作_오늘_162x130cm_장지에 석채, 은박_2020
유미선 작가노트 어릴 적 할머니 댁 마당에 가득했던 이름 모르는 꽃들과 수돗가를 맴돌던 햇살의 기억은 시간의 퇴적 속에 점점 박락되어가지만 특별할 것도 없는 그 기억의 잔상은 아직도 내 안에 남아 길가에서 문득 들꽃을 만나면 그때를 들여다볼 때가 있다. 초록 대문을 밀고 들어가면 제일 먼저 만났던 맨드라미와 채송화... 그리고 나비들....
윤대라 作_피에타-외다리 꼬꼬_194x122cm_전주한지에 수간채색_2021/2022
윤대라 작가노트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경외', '연민', '공경'을 뜻하며 기독교 예술의 주제 중 하나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의 모습으로 도상圖像화 되어 왔다. 그 경외와 연민의 대상을 작가는 자신이 시골의 삶에서 경험한 낱낱의 이야기들, 그 이야기 속에 있는 생명-개, 고양이, 염소, 두꺼비, 닭 그리고 식물들, 즉 자신이 자리하고 살아가는 자연으로 삼아 많은 내러티브와 메타포가 담긴 도상을 창작해 낸다. 작가는 스스로 품은 상처와 자애慈愛/自愛를 성스럽게 도식화된 몽환적 도상에 화려한 색조의 진채眞彩로 담아내며 여러 종교의 이미지가 다층적으로 보이게 연출하고 있는데, 이는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내재하는 역사와 신화를 끌어내며, 끊임없이 흔들리는 미약한 존재인 인간이 스스로를 지켜내고 살아가며 존엄하고 숭고하게 서는 지극히 인간적인 성화聖畫에 다름 아니다.
윤종득 作_전각준법1_122x72cm_황토와 먹_2023
윤종득 작가노트 새로운 조형이란 내가 여태 보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고, 생각했더라도 실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먹다 버린 음식도 배고픈 걸인에게는 한 끼의 식사가 되듯이 생각의 궁극에 이르면 누워서 손 뻗어 만질 수 있는 것도 하나의 새로운 조형과 창작물이 될 수 있다.
이철량 作_another nature0432_130.3x193.9cm_mix media on canvas_2023
이철량 작가노트 문뜩 무심히 지내던 주변의 여러 생물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각기 다른 여러 삶들의 결과는 실상 매우 오랜 시간들이 축적된 것이며 왜 그렇게 되어지는지 알 수 없는 이 사건들은 엄청나게 놀라운 것이며 또한 감동이다. 이러한 사건들은 내 안에 들어와 새로운 또 다른 세계로 자리잡는다. 아득하며 깊은 고독이 있고 한편으론 기대와 설렘이 넘치는 시간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참으로 숨 막히는 엄정한 순간을 나는 이때 느낀다.
조환 作_untitled_244x88x3cm_steel, polyurethane_2019
조환 작가노트 소통을 위한 이련의 장치인 문자라는 오브제가 여기서는 좌절과 단절, 미궁, 허탈의 역할로서 벽을 만들고 있다. 지금 이 벽은 무엇인가를 은폐하고 있지만 오히려 당황스런 이 지점이 다른 의미로 확장되는 통로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또 다른 의미의 벽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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