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명본 초대展

 

솔을 품은 달항아리_91.0x72.7cm_Mixed media on canvas_2023

 

 

 

2023. 11. 1(수) ▶ 2023. 11. 14(화)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36길 20 | T.02-391-3888

 

 

솔을 품은 달항아리_91x91cm_Acrylic, oil on korean paper on canvas_2023

 

 

구명본의 ‘소나무와 달 항아리의 중첩’에 대하여

 

화가 정 광 화

 

화가 구명본은 소나무를 통하여 한국인의 고유한 정신과 기상, 민중의 애환과 염원 그리고 한반도의 풍토적 자연미의 뿌리를 그려내는 소나무 작가이다.

그의 초기와 90년대의 작품을 살펴보면 한국의 토속미가 있는 골동품이나 막사발과 같은 대상을 사실적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지만, 대상이 존재하는 화면의 공간과 여백을 처리하는 방식은 다른 사실주의 작가들이 흔히 쓰는 물리적 중력이 적용되고, 대상의 사실성을 보조하는, 존재를 담는 그릇과 같은 원근법의 배경공간은 아니다.

그는 배경이나 여백을 대상의 정신성과 상징성을 담는 그릇과 전후좌우의 시공을 넘나드는 사유적 공간으로 전환시켜, 그가 선택한 대상에 대한 성찰과 비가시적인 추상성을 강조하고 여러 가지 담론을 제공하여 감상자의 잠재된 상상력을 발휘하게 한다.

그는 배경을 사유적 공간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오브제를 사용하기도 하고, 오랜 세월의 흔적이 드러난 얼룩이나 마모되거나 빛바랜 현상을 자주 등장시켜 감상자 각자의 상상력을 유추해 내게 한다. 이런 점에서 그의 초기 작품세계를 ‘흔적의 미학을 이용한 조형세계’라고 할 수 있다.

‘흔적’은 과거에 대한 회상이며 현재의 증명이고 미래에 대한 예견이다.

흔적은 어떤 현상이나 실체가 생성 소멸되는 과정에서 남은 자국이나 자취이다. 우주의 시간과 공간속의 존재한 모든 현상과 물질들은 어떠한 모습으로든 그 흔적이 남아있다. 우리는 공룡의 화석을 통하여 수억만 년 전 중생대에 거대한 파충류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화산활동이나 지각변동에 의해 형성된 거대한 단층이나 협곡, 석회동굴의 종유석과 석순을 보고 유구한 세월의 궤적을 느낄 수 있고, 그 속에 음양과 오행(火水木金土)이 순환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솔을 품은 달항아리_91x182cm_Mixed media on canvas_2023

 

 

그러므로 흔적은 인류의 장구한 역사 속에서 생명의 존재를 찾아내는 물질적 증거이고, 시간과 공간 속에서 지속되는 순환과 윤회의 증거이며, 끝없는 미래세계에 대한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삶의 연결고리이다.

‘흔적’은 지나간 과거의 숨겨진 역사이며 정신이고, 지금 현재에 대한 물질적 현상의 증명이고 실존이며, 미래를 지향하는 예측이며 비젼이라 할 수 있다.

소나무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과 실생활에 배여 있는 정서를 살펴보면, 소나무는 한반도의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여 우리나라 전역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고, 백년이나 천년 정도 수명이 길다. 그래서 장수를 상징하고 선비의 절개에 비유되기도 한다. 때론 왕의 위엄과 권위의 상징물로, 출산이나 장 담글 때에 치는 금줄에 묶어 잡귀와 부정을 막는 액막이 역할도 한다.

한국인에게 소나무는 뿌리에서부터 솔잎까지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는 나무이다. 불과 백 년 전만 해도 칡과 소나무 껍질(草根木皮)로 보리고개를 넘겼고, 송홧가루로 다식을, 솔잎으로는 솔차와 송옆주를 만들어 먹고, 목재는 기둥·창틀·문짝 등의 건축재로, 옷장·뒤주·찬장 등의 가구재로, 지게·쟁기·멍에 등의 농기구재로, 그 용도가 다방면에 이르렀다. 급기야는 소나무가 그려진 병풍을 치고 저 세상으로 간다. 그러면서도 소나무는 죽어서도 송이와 복령을 남기고 사라진다. 이것이 소나무에 대한 한국인의 기억이고 체험이다.

 

 

솔을 품은 달항아리_116.7x91.0cm_Acrylic, oil on korean paper on canvas_2023

 

 

구명본의 초기 작품이 생명이 멈춘 오래된 도자기나 골동품을 마멸되고 사라지는 과거의 흔적 위에 배치시켜 역사의 시간성과 한국적 정서의 상징성을 표현하고자 했다면, 소나무 작품은 지금 생장활동 중인 생명이 살아있는 소나무의 궤적을 화면의 전면에 드러내고, 현재의 생태학적 역동성을 기반으로 진행되는 ‘궤적의 현장성’을 강조하여 표현하고 있다.

그의 초기 작품이 과거의 박제된 흔적에서 유추된 기억을 표출시켰다면, 소나무 작품은 지금 살아있는 실존의 이 순간 생동하는 삶의 현장성을 표출시키고 있다.

초기 작품에는 화면에 여백을 넓게 배치하여 과거에 대한 기억을 되새길 수 있는 사유공간을 강조했다면, 소나무 작품은 현재 성장하고 확장하는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소나무를 화면 전면에 크게 배치하고 여백은 최소화시켜 소나무의 리얼리티를 강조하여 묘사하고 있다.

여백을 적게 배치했어도 배경을 사유의 공간으로 보는 시각이 바뀐 것은 아니다. 이 점은 소나무 작품의 하단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소나무가 대지에 힘차게 뻗은 뿌리부분은 생략되어 있다. 만약 뿌리를 묘사하려면 땅을 그려야 하고 대지를 묘사하면 작품의 배경공간이 여백이 아니라 원근법이 적용된 존재를 담아내는 그릇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다. 또 작품 상단에도 소나무의 가지가 항상 화면 밖으로 치솟아 나가게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도 그가 하늘이라는 배경보다는 소나무 존재 그 자체를 부각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소나무가 존재하는 지정학적 배경이나 생태적 환경에 관심이 있다면 여백을 좀 더 넓고 여유 있게 포치했을 것이다. 그러나 적은 여백이지만 이 여백은 하늘과 구름의 배경이 아니라, 번지거나 스며든 구름 모양의 흔적으로 처리해 소나무의 생동하는 존재감을 보다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유적 공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솔을 품은 다완_65.2x91cm_Acrylic, oil on korean paper on canvas_2023

 

 

삼국사기의 기록에 황룡사의 “노송도(老松圖)”는 노송을 실감나게 잘 그려 새들이 착각하고 날아들다 벽에 부딪혔다고 한다. 솔거도 생동감이 넘치는 소나무의 생동감을 강조하기 위하여 새들이 착각할 정도로 사실적인 노송도를 그렸을 것이다. 그리고 중국 당나라 말기의 산수화가 형호(荊浩)는 '붓의 움직임에는 힘줄(筋)·살(肉)·뼈대(骨)·기운(氣)의 네 가지 힘이 있어야 한다. 대상을 그릴 때 붓을 그리다 멈췄다 하지만 끊이지 않고 연결되게 하는 힘줄(筋)과, 드러났다 사라지는 기복으로 대상의 실체를 이루는 피부(肉)와, 생사를 강정하고 바르게 드러나게 하는 뼈대(骨)와, 묘사의 흔적을 사라지지 않게 하는 생기(氣)가 있어야한다.’고 말했다.(凡筆有四勢 謂筋肉骨氣 筆絶而不斷謂之筋 起伏成實謂之肉 生死剛正謂之骨 迹畵不敗謂之氣) 즉 필력에는 대상의 힘찬 골격과 부분과 전체를 연결하는 리듬의 힘줄과 외관을 아름답게 꾸미는 피부와 살아있는 생동감이 느껴져야 된다는 말이다.

구명본의 소나무에는 솔거의 생동감과 형호가 말하는 네 가지 필력이 모두 보인다. 그의 소나무에는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애국가의 가사처럼 모진 시련과 역경을 이겨낸 거칠고 갈라진 철갑 같은 역동감이 있고, 가득한 붉은 기운에는 굳은 절개와 강인한 의지로 승천하는 용트림처럼 시작도 끝도 없는 공간속에 수직으로 치솟아 오르는 상승감이 있다. 그리고 수려한 자태로 천년의 수명을 자랑하는 구구한 역사의 기상도 느껴진다.

 

 

솔을 품은 달항아리_53x45.5cm_Mixed media on canvas_2023

 

 

최근 그는 소나무와 달 항아리의 이미지를 접목시키는 작품을 하고 있다.

달 항아리는 하얀 바탕색과 둥근 형태가 보름달 같다. 그리고 한국인 정서와 미적 감수성이가 가장 잘 표현된 도자기 중의 하나이다. 영원과 무한을 상징하는 완벽한 원은 아니지만 모자란 듯 부족하지도 않고 넘치는 듯 과하지도 않고 풍요하고 여유가 있지만 절제의 아름다움도 있다. 한마디로 순백하고 간결하다. 그래서 우리 민족 고유의 ‘한과 삶'의 정서가 느껴진다.

그의 최근작에 보이는 두드러진 특징은 달 항아리와 소나무 이미지 오버랩하여 화면의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오버랩기법은 영화나 음악에서 흔히 등장하는 기법이지만 현대회화에서 재료나 소재, 이미지의 다양성을 표현하고 가변적 확장의 가능성을 실험하기 위해 많은 작가들이 이 기법을 차용하고 있다.

회화의 오버랩은 이미지를 중첩이다. 두 개 이상의 이미지가 겹치는 ‘이미지의 교집합’이다.

중첩된 효과는 시각적으로 어떤 이미지를 억제하기도하고 확장하기도하여, 전혀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거나 암시하기도 한다. 그리고 중첩의 효과는 의도적으로 시공간에 대한 시지각적 사유와 이미지의 주종관계를 재구성 한다. 그리고 시간과 공간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중첩에는 비움이 채움이 되고 부분이 전체이고 전체가 부분인 색불이공 공즉시색의 이치를 엿볼 수 있다.

 

 

솔을 품은 달항아리_140x140cm_Acrylic, oil on korean paper on canvas_2023

 

 

회화의 기본구조는 전경과 후경이며 조형은 선과 면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는 소나무와 달 항아리의 이미지를 오버랩의 기법을 통하여 회화의 기본 구조인 전경과 후경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으며, 선과 면의 조형미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소나무는 전경이고 달 항아리는 후경이다.

소나무 형상은 주로 선이다. 여기에 보이는 다양한 선의 연속성은 개방된 동적인 이미지의 확장성을 보여준다.

달 항아리는 면이다. 사물의 체형을 암시하는 면에는 공간을 구분하고 분리시켜, 제한적이고 폐쇄된 정적인 이미지의 한정성이 담겨있다.

전경에 사실적으로 묘사된 굵은 나무둥치와 이리저리 뻗는 줄기는 다양한 선이 생명의 기운으로 성장하는 현재진행형의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후경에 포치된 달 항아리는 구체적인 실상이 없는 허상이다. 허상은 기억 속에 정지된 상태로 남아있어 회상과 유추에 의해 되살아나는 과거완료형의 정신적 공간이다.

다시 말하면 전경의 소나무는 생명이 넘치는 생태학적 환경의 신비감을 보여주는 영역이고, 후경의 달 항아리는 인간이 남긴 물질적 문화유산의 정신과 전통의 유구함을 제시하는 상자이다. 그는 실상(소나무)과 허상(항아리)을 눈에 보이는 현상계와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의 상반된 구조로 대비시켜 ‘중첩의 미학’의 시각적 효과를 이야기하고 있다.

 

 

솔을 품은 달항아리_140x140cm_Acrylic, oil on korean paper on canvas_2023

 

 

가장 최근의 작품에는 까치가 등장한다.

까치는 반가운 소식을 전하는 메신저이다. 수평선 넘어 우리 님을 실고 오는 배의 돗대 끝에 매달아 놓은 깃발이다.

까치는 점(點)이다. 점은 시각적인 견인력이 있다. 그래서 주변을 끌어 모으거나 집중시키는 역할을 한다. 화면속의 여러 개의 점은 크기와 위치에 따라 감상자의 시선을 유도하고 공간속에서 유희하게 만든다.

까치라는 점은 감상자가 작품의 전경과 후경, 실상과 허상 속을 넘나들면서 작품에 내포된 선과 면의 조형미를 탐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내자의 역할을 한다.

 

그가 그린 소나무와 달 항아리에서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꿈과 희망이 실현될 수 있다’는 메신저를 전하는 까치와 같은 아름다운 깃발을 찾아 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 구명본이 흔드는 이 깃발로 인하여 우리 민족, 우리 땅, 한국인의 정신을 한 번 더 뒤 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이다.

 

2022년 8월 2일

 

 

 

 

 
 

구명본 | Koo myeong bon

 

초대개인전 | 35회 | 서울, 부산, 대구, 제주, 경주, 울산, 광주

 

아트페어 | 한국화랑미술제 8회참가 | 2002-2023 예술의전당, 벡스코, 코엑스, 세텍 | KIAF-한국국제아트페어 5회참가 | 2009-2016 코엑스 | 아트부산6회참가 | 2013-2019 벡스코 | 싱가폴아트페어 외 60여회 각종아트페어 참가

 

수상 | 오늘의작가상 '본상'수상(2011부산미술협회) | 부산미술대전 '통합대상' 외 각 공모전 6회수상

 

아트제주 특별전 외 350여회 각 화랑초대 및 기획전 출품

 

작품소장 |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강진미술관, 부산지방법원 서부지청, 부산은행,삼성화재,주)유도본사,주)성진풍력, 부산진구청, 대구교육청, 부산동구청, 군위군청, 울진군청, 일신기독병원 외 다수

 

현재 | 신작전, 자관전, 미협회원

 

E-mail | work08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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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31101-구명본 초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