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욱경 展

 

낯설은 얼굴들처럼

 

실험 (實驗) c. 1960s_Chinese ink on paper_46x61cm

 

 

Kukje Gallery Busan

 

2023. 8. 25(금) ▶ 2023. 10. 22(일)

부산광역시 수영구 구락로123번길 20 (망미동, F1963) | T.051-758-2239

 

www.kukjegallery.com

 

 

experiment A c. 1960s_Chinese ink (or black paint) on paper_27x19.5cm

 

 

국제갤러리는 오는 8월 25일부터 10월 22일까지 최욱경(1940-1985)의 개인전 《낯설은 얼굴들처럼(A Stranger to Strangers)》을 개최한다. 국제갤러리와의 네 번째 전시이자, 부산에서 처음 선보이는 작가의 개인전이다. 대담한 필치와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며 한국 추상회화의 대표 작가로 알려진 최욱경은 초기 미국 유학시절 본격적으로 자신의 독자적인 추상문법을 구축해가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때 당시 다양한 매체를 실험하며 개인 및 작가로서의 고민을 고스란히 담은 흑백 드로잉 및 판화 29점과 크로키(인체 드로잉) 9점을 선보인다.

본 전시의 제목 “낯설은 얼굴들처럼”은 최욱경이 1972년 첫번째 미국 체류를 마치고 잠시 한국으로 돌아와 활동하던 시기에 출간한 국문 시집의 제목을 빌린다. 유학 시절에 쓴 45편의 시와 16점의 삽화로 구성된 이 시집은 작가가 ‘뿌리를 흔드는 경험’이라 표현했을 만큼 모든 것이 새로웠던 당시의 생경한 환경과 자극을 마주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능동적으로 다져가던 과정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텍스트 및 이미지의 기록인 셈이다. 시집에 삽화로 소개되는 16점의 작품 중 <습작 (習作)>, <실험 (實驗)>, <I loved you once>, <Study I>, <Study II>, <experiment A> 6점이 이번 전시에 포함된다. 작가만의 유머를 기반으로 때론 직설적인 제목이 붙여졌던 다수의 회화 작품이 일견 한 편의 완결된 이야기를 전달하는 식이었다면, 이번 전시의 드로잉들은 작가의 일상을 채우던 생각의 파편들, 일기장 속 미완의 이야기들을 엿보는 듯하다.

시집을 통한 소개를 필두로, 부단히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작업하던 작가의 당시 감정과 의식의 흐름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은 최욱경의 종이 드로잉 작품들이 선사하는 고유한 감각이다.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컴바인 페인팅을 연상시킨다고 평가받는 최욱경의 콜라주 작품들이 현실과 이슈들을 즉각적으로 반영했다면, 드로잉 작품에는 종종 의식의 흐름에서 즉흥적으로 나온 단어 또는 생각 등이 담긴 텍스트가 등장한다. <Untitled>(c. 1960s)에서는 최욱경 자신인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이질적인 인물 옆에 영문으로 “I DON’T KNOW WHAT YOUR DOING, BUT. I CAN’T HELP YOU BECAUSE I DON’T LIKE IT. (당신이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렇지만. 내 맘에 안들기에 난 도와줄 수 없겠다.)”라 쓰인 문구를 볼 수 있는데, 작가가 직접 들은 말이든 생각의 단상을 적은 글이든 이는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감정을 그대로 전달한다. 1969년 3월 22일이라는 날짜가 명시된 <Untitled> 작품 속 컴컴한 어둠에서 태아가 웅크리고 있는 형상과 함께 “When the time comes will the sun rise / … / will the time ever come to me? (때가 되면 해가 뜰까 / … / 과연 내게 때가 오긴 할까?)”라는 글귀는 암담한 당장의 현실 속에서 기대해보는 희망의 미래를 역시 꽤나 솔직한 언어로 서술하고 있다.

 

 

Untitled c. 1960s_Pencil on paper_21x15.5cm

 

 

1963년 서울대학교 회화과 졸업 이후 변화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최욱경은 작가로서의 역량을 확장하기 위해 유학을 결심한다. 유학 중 작가는 잉크, 연필, 차콜, 콩테, 판화 등 다양한 매체를 접하고 탐구했고, 낯선 환경 속에서 숱한 실험과 수행을 거쳐 자신만의 독자적인 언어를 구축할 수 있었다. 크랜브룩 아카데미 오브 아트 (Cranbrook Academy of Art) 대학원 과정에 진학한 후에는 그간 단순히 연습 과정이라 여겼던 드로잉 작업의 중요성을 인지해 다시 기본기에 충실하고자 방대한 양의 소묘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때 정말 많이 그렸다” 회고하던 작가는 “2년을 그렇게 그리고 나니까 졸업할 무렵엔 ‘아, 이것이 그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나는 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마음을 굳힐 수가 있었다”라 말한다. 끝없는 연습과 함께 회화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에의 열의를 놓지 않았던 작가의 의지는 어쩌면 자신이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매체로 찾아낸 시와 드로잉의 언어를 통해 가감 없이 발현된다.

<Untitled (AM I AMERICAN)>(c. 1960s)과 같이, 작가가 머나먼 땅에서 혼자 작업하고 생활하며 ‘나는 미국인인가?’와 같은 생각의 파편이 담긴 작품 속에서는 자기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집에 담긴 시 「그래도 내일은」(p.36)을 보면 작가는 “그래도 내일은, 다시 솟는 해로 밝을 것입니다. 꽃피울 햇살로 빛날 것입니다.”라며, 무수히 괴롭고 외로운 나날들 속에서도 내일은 희망찰 것이라 믿는다. 머뭇거림 없이 대범한 자신의 필치대로 꾸밈없이 솔직했던 최욱경의 시와 드로잉 작업을 통해, 제 자리에서 저마다의 혼란을 헤쳐 나가야만 하는 오늘의 우리도 각자의 위안을 얻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Untitled (When the Time Comes) 1969_Ink on shiny paper_42.5x56cm

 

 

Untitled c. 1960s_Charcoal and conté on paper_60x4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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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30825-최욱경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