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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민규 展
Out of the Blue
《Out of the Blue》 전시전경,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2023 촬영: CJY ART STUDIO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2023. 7. 5(수) ▶ 2023. 8. 4(금)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16길 4, B1 | T.02-733-0440
www.sarubia.org
《Out of the Blue》 전시전경,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2023촬영: CJY ART STUDIO
넓은 백사장과 그곳을 둘러싼 매끈한 고층 건물들이 자아내는 기하학적이고 미래적인 도시 풍경, 그리고 그 이면에 드리워진 난개발과 환경오염의 그림자. 이 이야기는 작가의 고향인 부산 해운대로부터 시작된다. 황민규는 어머니가 정월대보름마다 참여하시는 달집태우기 행사를 영상에 담기 위해 부산에 들렀다가 ‘코로나19 바이러스’라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의해 그곳에 고립되고 만다.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한 엄격한 통제 속에 생활하던 작가는, 해운대 일대에 들어선 고층 아파트들의 이름이 대부분 ‘~시티’로 마무리되는 것을 보고 자치도시를 떠올린다. 엉뚱한 상상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작가가 제시하는 레퍼런스들을 거쳐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 지구온난화 등 환경오염 문제와 같은 현실의 문제에 맞닿게 된다. 다수의 개인이 뭉쳐져 이루어지는 것이 사회라면, 시대정신 또한 여러 삶의 집약을 통해 발생하는 것이다. 황민규는 삶에서 가장 가까운 곳부터 담아내는 것을 시대 기록의 시작점이라 여기고, 일상의 풍경을 통해 체감할 수 있는 거리에서 시대 담론을 펼쳐나간다. 황민규는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 형식을 빌려 일상을 통해 자연스럽게 수집된 장면들을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모호한 모큐멘터리로 제작해왔다. 영상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작가의 가족이거나 가까운 지인들로, 작업에 사용된 영상 역시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상황들을 즉흥적으로 기록한 것이다. 녹화 버튼을 누르는 것 외에는 의도 없이 포착된 일상의 장면들은, 작가가 유년기에 보았던 만화나 영화 속 대사 그리고 현시점에 대두되는 사회 문제들과 유연하게 얽혀나가며 하나의 서사로서 다시 쓰이게 된다. 작가는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가진 작품들로부터 차용하여 각색한 대사들을 통해 존재론적인 불안에 대해 사유하고, 그것에 내재된 암울한 시대정신을 일상의 장면에 스며들게 함으로써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무너트려 프레임 속에 안락과 위기가 공존하게 한다. 그리고 절묘하게 들어맞는 실제 사건 보도자료들이 서사에 살을 붙이고, 과거 시점의 레퍼런스들이 예언하던 어두운 미래가 도래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전개 방식은 오늘날 분별력 없이 이루어지는 정보 수용을 꼬집기도 한다. 가상과 현실을 혼재하게 하는 황민규의 작업 방식은 재난을 가까운 위치에서 읽히도록 하지만, 다가오는 위기의 실체는 노출하지 않아 관객으로 하여금 작품 속 사실과 허구 사이의 경계를 되묻게 한다. 이미지, 소식, 그리고 감각조차도 인스턴트식품처럼 제공되는 이 사회에서 정보는 결국 지표로서만 존재할 뿐이고, 진리를 걸러내는 것은 정보를 수용하는 우리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황민규의 작업은 얕은 논리로 위장한 정보를 경계하되 적극 활용하고, 수많은 지표를 거쳐 다가서게 될 ‘신세계’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한다.
《Out of the Blue》 전시전경,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2023촬영: CJY ART STUDIO
《Out Of The Blue》에서, 황민규는 기존 작업에서 부각되던 90년대 서브컬처의 색을 덜어내고 SF 문학과 인문학 등으로 레퍼런스의 영역을 확장한다. 차용하는 장르를 전환하는 듯 보이지만, 삶 속에 드리우는 재난을 통해 사회와 인간의 한계를 들여다보는 방식은 유지된다. 작업 전반에 깔려있는 90년대 서브컬처적인 색채는 작가가 유년기를 보낸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기의 시대 감성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다양한 문화가 절제 없이 수용되던 90년대 중반에 작가가 수많은 장르 중에서도 SF와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에 몰입하게 된 것은 (8-90년대 작품 특유의 세련된 구성과 작화 때문도 있겠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혼란스러웠던 분위기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90년대는 냉전의 끝에서 시작되었다. 자본주의가 권력을 얻으며 경제적 호황과 파산이 연달아 일어났고, 교체되는 세기를 향한 호기심과 막연함에서 비롯된 비관론이 공존하는 시대였다. 세기말의 무기력한 분위기 속에서 등장한 애니메이션 속 디스토피아 세계관은 현실과 중첩돼 보였을 것이고, 초인적인 힘으로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히어로들은 꽤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의 노스탤지어가 부각하는 것은 판타지에 의존할수록 더 버겁게 다가오는 현실이다. 앞서 말했듯, 황민규의 영상 작업의 서사는 미리 쓰인 것이 아니라 수집된 장면과 레퍼런스가 얽히고 편집되는 과정을 통해 유기적으로 발생한다. 작가는 서사가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 충분한 시간을 갖고 바라본다. 숙성된 이야기는 단편으로 정리되거나 일련의 에피소드로서 그 내용이 순환하기도 한다. 기존 작업과의 흐름을 연달아 살펴보자면, <나를 지켜줘>(2017)에서는 신혼여행의 기록에 애니메이션적 상상을 더해 ‘영웅’이라는 키워드를 적극적으로 펼치지만, 사건의 얽힘과 흐름에 따라 영웅은 부재한다는 허무주의적인 결론으로 치닫는다. 이후 <야생 속으로>(2020)에서 영웅의 부재를 선언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이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가 야기한 격리된 환경과 고독으로 인해 그 다짐이 무너지고 만다. 사루비아에서 선보이는 신작 <정월>(2023)에서는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하는 아내와 안도감을 주는 어머니의 서사를 교차시키며, 자립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회의와 함께 의지의 대상을 찾는 여정을 보여준다. 삶은 미지로부터 온다. 축적된 과거를 통해 미래를 예견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조우한 현재가 어느 방향으로 뻗어 나갈지는 정확히 예상할 수 없다. 우리는 안정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미지의 불안으로부터 지키려고 한다. 모든 조우는 희망이자 불안이다. 황민규는 작업을 통해 끊임없이 다가오는 위기 앞에서 나약해지는 인간의 모습을 탐구한다. 하지만 이 탐구를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은 공교롭게도 우리가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들이다. 불안은 맞닥뜨리는 것이 아니라 발 밑에 침잠해 있는 것이다. 모든 삶에는 끝이 있지만 그 길이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다. 우리는 삶이라는 엉성하고 불확실한 선 위에 함께 놓인 것들을 사고, 재난, 전쟁, 상실과 같은 균열로부터 지키고 싶어 한다. 과학, 종교, 미신, 혹은 영웅을 통해서, 내가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초월하여서라도 말이다. 《Out Of The Blue》는 초월적인 존재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의 불완전함을 포착하고, 질문한다. 우리는 어떤 신세계를 그리는가? 노력조차 모래성처럼 무너져 버리는 이 세상 속에서 서로를 지킬 수 있을까?
문소영 (사루비아 큐레이터)
《Out of the Blue》 전시전경,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2023촬영: CJY ART STUDIO
〈정월〉, 단채널 비디오, 42분, 2023촬영: CJY ART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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