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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인 展
해빙(解氷)
가시와 구멍 Thorns and holes_삼합 장지에 백토, 안료_100x100cm_2023
아트레온 갤러리
2023. 3. 17(금) ▶ 2023. 4. 6(목)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로 129, B2 | T.02-364-8900
http://artreon.co.kr
두 꼭지 Two stalks_삼합 장지에 백토, 안료_100x100cm_2023
해빙 解氷
“죽은 것과 산 것이 서로 돌아서서 그 근원에서 상견례(相見禮)를 이룬다” - 김광섭, <봄>
살아있는 모든 것은 변화한다. 연결되어 있다. 끝없이 이어진다. 살면서 절실하게 체감하는 문구다. 땅에서 수확된 생명의 먹거리도 음양오행에 따라 생장하고 우리는 그것을 섭생하며 유기적으로 연결된 자연과 몸의 순환을 느낀다.
나는 쌀, 콩, 감자 등 곡식을 포함하여 토마토, 양파, 브로콜리 등 음식을 소재로 생명성을 탐구한다. 나에게 이 식재료들은 가사 노동의 지겹고 익숙한 존재에서 빠져나오는 출구이자 작업의 낯선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가 된다.
한 개의 달걀에서 노른자의 양기와 흰자의 음기를, 통곡물인 한 톨의 현미에서 음양의 완전한 균형을 발견한다. 여름 잎 채소는 향이 진하며 성질이 찬 음기(陰氣)를, 겨울의 뿌리 채소는 단단한 성질로 양기(陽氣)를 머금고 있다. 더운 여름엔 몸을 식히기 위해 채소를 날 것으로, 추운 겨울엔 따뜻하게 푹 익혀 먹는다. 절기에 따른 식재료와 섭취 방법의 조화에 감탄한다.
피고 지다 Bloom & fall off_리넨 캔버스에 과슈, 목탄, 먹, 아크릴_92x114cm_2022
천체의 음양오행을 대지가 품은 먹거리에서 발견하고 진정한 양생(養生)과 인간 관계에 관해 생각해보았다. 부엌에서 발견한 곡식과 야채는 연약해 보이지만 강인한 생명 덩어리고, 식물인 동시에 동물처럼 보이는 이중성을 내포하는 존재다. 이들을 식물 초상화처럼 때로는 풍경화처럼 표현하였다.
긴 암흑과 음의 극점인 동지(冬至)가 지나면 양의 기운이 시작되어 생명이 다시 태동한다. 돌고 도는 시간의 흐름으로 봄이 온다. 침잠, 인내의 겨울에서 만물이 생동하며 본격적으로 제모습을 드러낸다. 녹은 물은 메마른 곳을 적시고 죽은 듯한 나무가 소생한다. 경이로운 ‘해빙’이 시작된다. 차가운 계절을 견딘 채소들은 쓴 맛이 날 것 같지만 오히려 반대로 달고 향긋하다. 극과 극처럼 여겨지는 죽음은 실은 삶과 짝이고 미시적인 것과 거시적인 것, 여성과 남성, 달과 태양 등 상반된 두 힘은 생명의 원동력이다.
얼었던 자연은 점진적으로 녹는다. 각각 순서가 있는 만물의 질서를 본다. 흙이 헐거워져야 싹이 튼다. 고대인들은 자연과 인간 등 삼라만상이 이어진 공동체에서 자연의 소리를 섬세하게 들었다. 그들은 달의 변화를 보고 농사를 지었고 적정한 때를 기다렸다.
동토(凍土)가 녹으며 온기가 퍼지는 이 봄, 죽음과 삶의 아름다운 ‘상견례’를 통해 생명, 활기, 자유를 소망한다.
2023.3. 최 혜 인
잉태하다 Conceive_삼합 장지에 금분, 백토, 안료_60x60cm_2023
팽창하다 Expand_삼합 장지에 백토, 안료_60x60cm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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