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 대가 박생광 · 박래현 2인展

 

위대한 만남, 그대로 · 우향

 

 

 

3층 5,6전시실

 

2023. 3. 7(화) ▶ 2023. 3. 29(수)

10:00-19:00 (18:00 입장 마감, 월요일 휴관)

서울특별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406 | T.02-518-8026

 

https://www.sac.or.kr/site/main/show/show_view?SN=60100

 

 

박래현 전시전경, 1943년 조선미술전람회 총독상 수상작 <단장>과 부부전에 출품된 <부엉이>

 

 

한국화 대가 박생광과 박래현이 만나는 첫 대형 전시가 열린다. 아이프앤코와 주영갤러리가 공동 주최하는 이번 《한국화 대가 박생광 · 박래현 2인전 - 위대한 만남, 그대로 · 우향》 기획전(이하 「위대한 만남」전)은 전시 제목처럼 ‘시대를 대표한 한국화 남녀 대표작가의 위대한 만남’이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 전관에서 열리는 《위대한 만남》전엔 박생광 181점과 박래현 88점 등 총 269점이선보인다. 작가별로 200호(약 가로 240, 세로 180cm)가 넘는 대작부터 대표적인 중소품까지 150여 점의 원화가 출품된다. 특히 평소 만나기 쉽지 않은 박생광의 스케치 100점이 포함되어 더욱 주목할만하다.

 

전시는 크게 작가별 특성을 고려해 관람 동선을 설정했는데, 박생광은 작품의 소재별로 구분했고, 박래현은 시대순으로 작품의 변모 과정을 보여준다. 이번 《위대한 만남》전은 한국화의 새로운 비전을 재조명한다는 취지도 담고 있으며, ‘미술사적인 비교를 통한 재조명’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과 협력해 작가의 행적을 살펴볼 수 있는 아카이브존도 운영한다. 또한 소수정예 스토리텔링 미술관 교육기관으로 이름난 ‘미술관이야기’와 협력해 전문 도슨트 프로그램과 현장에서의 체험학습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이어서 대한적십자사, 아이프칠드런과 함께 문화소외계층을 초청해 무료 관람을 제공해 문화 향유의 사회적 역할을 재인식하고자 한다.

 

 

박래현 전시전경, 200호 대작 <이른 아침>, <향연>

 

 

박래현 전시전경, 태피스트리 작품

 

 

박래현 전시전경, 1960년 전후 대표작품과 함께 배치된 빈티지 가구. 협찬 앤더슨씨

 

 

 

《위대한 만남》전에서 박생광과 박래현의 작품을 선보이는 방식은 다소 차이가 있다. 우선 박생광은 ‘소재’에 따라 작품을 구분했고, 박래현은 ‘시기’에 따라 작품을 선별했다. 박생광의 경우 1980년대 강렬한 인상의 채색화 작업이 절대적인 중심을 차지했던 반면, 박래현은 1940년대부터 70년대까지 개별적인 특성을 고르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관람순서는 ‘박래현 → 박생광’ 순서로 이어진다.

 

해방 이후 ‘한국화의 현대적 재해석과 새로운 입지를 다진 역사적 성과’에 비해 박생광과 박래현 화백은 매우 평가절하되어 있다. 특히 끊임없이 새로운 창작적 실험에 매진한 두 작가에 대해 면밀하고 지속적인 관심을 더욱 기울여나가는 것 역시 ‘한국 현대미술의 정체성 회복과 경쟁력을 담보한 효과적인 창구’가 될 것이다. 또한 이번 《한국화 대가 박생광 · 박래현 2인전 - 위대한 만남, 그대로 · 우향》기획전이 소외된 한국 현대미술의 그림자를 밝히고, 한국화의 잠재적 역량을 재확인해 지속적인 가능성과 공공적 가치를 가늠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박생광 전시전경, 대표작 <해질녘>, <꽃가마>

 

 

박생광 전시전경, 무속시리즈

 

 

박생광 전시전경, 초기 수묵작품들과 100여점의 스케치

 

 

박래현박생광의 연보 및 아카이브존

 

 

 

 

 
 

■ 그대로 박생광(乃古 朴生光, 1904~1985)

한국 채색화의 대가로 손꼽히는 박생광 화백은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고, 호는 내고(乃古), 그대로이다. 특히 자신의 색채와 미감이 ‘그 자체로 한국적인 정체성을 대변한다는 믿음’으로 한글 ‘그대로’를 호로 사용했다. 진주보통학교와 진주농업학교를 다녔으며, 이 시기에 한국 불교계의 거목 청담스님을 만나 인연을 맺었다. 1920년 일본 교토시립회화전문학교(지금의 교토예술대학)에서 일본 화단의 ‘근대 교토파’라고 불렸던 다케우치 세이호우(竹內炳鳳), 무라카미 가가쿠(村上華岳) 등에게 새로운 감각의 일본화를 배웠다. 해방을 맞아 귀국 후에는 진주에 머물다가 서울의 홍익대에 재직하면서 진채(塡彩)를 사용하여 민속, 불교, 무속 등의 다양한 한국적인 소재를 독창적인 조형어법으로 재해석해 주목받았다.

박생광의 작품은 크게 수련기(1950년대 후반기), 추상화 시기(1950년대 후반~1974년), 2차 일본시기(1974년~1977년), 한국적 미감의 전성기(1977년 이후) 등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특히 1980년대 백상기념관(1981년)과 문예진흥원 미술회관(1984년) 전시 등을 통해 한국화단에 큰 반향과 새로운 채색화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작품에서 색채는 강렬함을 넘어서 신기, 광기 어린 ‘경이로움의 채색화’로 여겨진다. 1982년 인도 성지순례를 마친 이후 말년의 작품들은 ‘박생광 스타일을 완성시킨 대표작’으로 꼽힌다. 1985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으며, 대표적인 전시로는 1985년 파리 그랑팔레미술관 <르 살롱-85> 특별 초대전과 1986년 호암갤러리 유작전, 2019년 대구시립미술관, 2022년 강릉시립미술관, 2023년 한가람미술관 등의 기획초대 개인전이 있다. 한때, 왜색화가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으나 투철한 예술가적 창작 의지와 실험정신으로 확고하고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이뤄냈다. 미술사적 위치로도 ‘우리나라 채색화의 새로운 가능성과 역사적 주체성을 확립한 작가’로 인식된다.

 

■ 우향 박래현(雨鄕 朴崍賢, 1920~1976)

평안남도 진남포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우향 박래현 화백은 사범학교에서 공부하고 2년간 교사로 일했다. 1940년 화가의 꿈을 품고 일본 도쿄에 있는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에 입학했다. 1940년 조선미술전람회 창덕궁상에 이어 1943년 작품 <단장>으로 제22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총독상을 수상했다. 이후 1974년 제6회 신사임당상, 1956년 제5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대통령상을 수상했고, 성신여자사범대학교 동양화과 교수(1966~1967)를 역임했다.  

남편인 운보 김기창과 함께 동양화(한국화)의 전통적 관념을 타파하고, 판화·태피스트리(직물공예) 등 다양한 기법과 매체를 활용해 여성 특유의 감성을 작품으로 승화시켜 큰 주목을 받았다. 특히 섬세한 설채(設彩)와 수간채색, 면 분할에 의한 독창적인 화면구성을 통해 끊임없이 조형적 실험에 매진했다. 작품의 성향은 크게 일상적인 서정풍경에서 모티브를 찾은 1950년대, 추상적인 화면구성의 1960년대, ‘재료나 기법의 실험기’에 해당하는 1970년대로 나눌 수 있다.

박래현 화백은 한 인터뷰에서 “예술은 본디 마음의 휴식처를 제공하고 주변 환경을 좀 더 아름답게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작품은 순수미술을 기반으로 하되 장식미술과 생활미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조형세계를 완성해냈다. 가령 중남미의 토기, 아메리카 원주민의 편물, 중국 고대 청동기, 우리의 백자, 토기, 소반, 맷방석, 떡살 등에서도 고유의 아름다움을 찾아내 작품의 소재나 부분적 문양 혹은 패턴으로 응용한 부분이 참으로 이채롭다. 아마도 박래현 화백만큼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여성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지 예술작품으로 보여준 예도 드물 것이다. 한 인간으로서 삶과 예술가로서 삶을 쉼 없이 넘나들며 균형과 절충으로 평생을 바쳤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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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30307-한국화 대가 박생광 · 박래현 2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