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옥 展
미끄러운 문장들
필 갤러리
2023. 1. 27(금) ▶ 2023. 2. 9(목)
서울특별시 용산구 유엔빌리지길 24 | T.02-795-0046
www.fillgallery.com
미끄러운 문장들_185x116cm_장지위에 먹_2022
미끄러운 문장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불안에 익숙해진 듯 하다. 실체는 여전하지만 익숙함 속에서 희석된다. 불안은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다. 공기처럼 떠다니다가 가까이 왔다고 느낄 때 환경의 경계가 짙어짐을 체감할 뿐이다. 비로소 탈출구는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불안이 비단 코로나뿐만은 아니다.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문득 어제와 다른 현재를 마주하곤 한다. 변화의 실체는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지만 어느새 현실이 되어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변화를 실감할 때 실체는 다시 멀리 달아나버린다. 마치 손가락 사이로 미끄럽게 빠져나가는 물고기처럼.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들과 끊임없이 스치며 살아간다. 시간, 진실, 마음 등, 삶에서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은 사실 만질 수 없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무형의 실체를 더욱 추구하는지도 모른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솔직한 마음이 오해를 사곤한다. 서로의 비늘에 미끄러지는 물고기처럼 마음 역시 진심을 전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서로의 몸에 수없이 미끄러지며 자신의 자리를 잡는 물고기처럼 우리의 관계 역시 수많은 스침 속에서 서로 알아간다. 진심은 미끄러운 말 속에서 겨우 자리를 잡는다. 수족관 속 물고기를 소재로 작업한 지 수년이 흘렀다. 처음에는 수족관 속에서 우글대는 물고기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생존하는 삶의 축소판 같았다. 수족관 속 물고기처럼 우리의 삶 역시 제한된 환경 속에서 끊임없이 일상을 반복한다. 그러나 작업을 진행하면서 삶에서 느끼는 일종의 막연함이 물고기의 미끄러운 촉감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작업에서 물고기는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지만 우리 삶에 떠다니는 진실을 보고자 하는 욕망이며 동시에 그럴 수 없다는 막연한 아쉬움을 의미한다. 수족관은 공기로 치환된 삶의 환경과 유한함을 의미한다. 투명한 수족관 속 물고기처럼 인간 역시 유한함을 전제로 제한된 환경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간다. 수족관에서 출구란 존재의 부재를 뜻한다. 횟집 사장의 뜰채 외에는 출구가 없는 수족관에서 존재의 부재는 새로운 생명을 등장시킨다. 삶과 죽음이 끊임없는 반복되는 이 공간은 우리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
삶에서 소중한 것은 단번에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수족관 속 물고기가 서로의 몸에 끊임없이 미끄러지며 나아가듯, 진실은 수많은 생각들의 미끄러지짐 속에서 조금씩 그 실체를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온기를 느끼며 삶의 의미를 발견하곤 한다. 우리는 늘 현재를 마주한다.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지만 현재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있다. 알 수 없는 세상 속에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이어질 우리의 미끄러운 문장들. 이는 불안하고 막연한 사회 속에서 서로 온기를 느끼고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자 하는 애틋한 몸짓이다.
2022 김 정 옥
미끄러운 문장들_212x160cm_장지위에 먹_2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