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원 展
2022. 12. 7(수) ▶ 2022. 12. 13(화)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길 52-1 | T.02-736-6669
http://galleryis.com
정정(正定). 바른 마음의 집중
불화를 마무리하는 화기(畵記)에 ‘목수분향(沐手焚香) 경화(敬畵)’ 라는 말이 있다. 이는 목욕 재계를 하고 향을 피우며 공경하는 마음으로 그리는 것을 의미한다.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고 부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그리는 불화는 현대의 미술과는 다른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다. 종교적 관점에서 보면 신심을 담아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수행의 과정’이 되기도 하고 예술적 관점에서 보면 작은 것에도 심혈을 기울이는 ‘장인 정신’이 담겨있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려진 금문양들, 손톱보다 작은 크기로 그림을 빼곡히 채우는 만 오천 개의 부처님 얼굴, 반대로는 건물 몇 개의 층에 달하는 높이의 대형 불화인 괘불. 무엇 하나 허투루 할 수 없는 정성 어린 ‘과정’과 손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 같은 ‘장인 정신’이 담긴 불화는 관람자로 하여금 놀라움과 감동을 준다. 불화 한 점이 그려지는 과정은 느리고 길다. 비단을 물에 씻어 정련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아교를 수차례 발라 올을 메꾸어 표면을 정돈해야 한다. 비단이 준비가 되면 먹을 갈아 선을 긋고 안료는 곱게 손으로 개어 올라온 뜬 물을 사용해 색이 맑게 올라온다. 그런 뜬 물을 비단의 앞과 뒤에 수십 번을 올려야 깊이 있는 색이 나온다. 채색이 완료되면 금분으로 문양을 그려내는데, 이때 선은 머리카락보다 얇게 그려야 한다. 현대 문화에서 장인 정신의 필요성을 역설한 저서 『장인』(2010)에서 저자 리처드 세넷에 따르면 이러한 노력은 오늘날 미련한 ‘잉여’의 노력으로 보일 수 있고 경제적 가치나 효율성과는 거리가 멀 수 있다. 그럼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 더 나은 상태를 만들어보려는 불화 제작자들의 노력은 편리함을 등지고 정성과 인고의 시간을 쌓아가는 ‘장인’의 정의에 가깝지 않은지 생각해보게 된다.
예술적 시각에서 본 불화는 전통 채색 방식을 모두 담고 있는 그림이다. 따라서 불화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원본을 모사하는 것이다. 원본을 그대로 모방하거나 복제하는 ‘모사’는 창작이 중시되는 오늘날 경시될 수 있는 분야이다. 그러나 전통회화에서 선조의 그림을 모방하는 일은 회화 기법을 터득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자 전통기법을 전수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또한 서화 문화재를 모사하여 원본을 보존하는 사업과 해외에 반출된 우리 문화재의 모사본을 만들어 대중들에게 알리는 전시도 지속적으로 열리고 있기 때문에 모사는 불화뿐만 아니라 전통회화에서도 가치가 있다.
이에 이번 전시에서는 원본에 충실한 모사작부터 원본을 자신의 관점으로 재해석하여 그리는 방작, 이를 발전시킨 창작 이 세 가지 방법으로 그린 전통 진채 불화를 선보인다. 고려불화, 조선불화 그리고 현대불화까지 임모방식과 시대를 넘나드는 작품을 통해 불화에 담긴 정성 어린 과정과 장신정신을 느끼고 모사라는 분야에 대해 관람자분들이 한걸음 더 가까워졌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