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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선 展
인사아트센터
2022. 11. 16(수) ▶ 2022. 11. 21(월)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길 41-1 | T.02-736-1020
김영선 회화는 화려하면서 정제된 작품과 현란하면서 추상적 작품으로 나뉜다. <화강>과 <화(花)> 계열의 작품은 화려하면서 정제된 작품이고 <걸음을 멈추고>와 <그후로도 오랫동안> 계열의 작품은 현란하면서 추상적 작품이다. 하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무한시점과 무한초점을 표현한 것이다. 김영선은 (아직 미완성이기는 하지만) 캔버스와 장지(壯紙)의 화면에 무한시점을 구현하고 무한초점을 표현한다. 이것은 일반적 추상회화와는 다른 기법이다. 추상(abstract, 抽象)은 어떤 대상의 공통 특성과 본질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고, 추상화(Abstract Painting, 抽象畵)는 실재하는 대상의 본질을 표현한 비구상적이고 반사실주의적 회화다. 일반적으로 화가들은 ‘구상 – 반구상 – 반추상 – 추상’의 단계를 거친다. 김영선 역시 그런 단계를 지났겠지만, 지향하는 추상성과 표현기법은 일반적 추상회화와는 상당히 다르다. 일반적 추상은 단순화(simplification, 單純化) 기법으로 대상의 본질을 표현하는 것임에 반하여 김영선의 추상은 대상의 본질을 단순화하는 동시에 복잡화(complexification, 複雜化)하여 이원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김영선은 무한시점과 무한초점으로 단순복잡한 이율배반(antinomy)의 극단적 미감을 추구한다. 물론 이 말은 지향의식이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 표현된 작품은 극단적이지 않다. 오히려 작품에는 조형적 아름다움, 서정적 정감, 다정한 이야기, 몽상적 감성, 섬세한 감각 등이 담겨있다. 대체로 김영선의 회화는 기하학적으로 단순화한 추상화 기법과 서정적으로 복잡화한 수묵담채의 기법이 주류를 이룬다. 그렇다면 김영선은 어떻게 단순화와 복잡화의 이항대립(binary opposition)을 캔버스에서 구성하는 것일까? 김영선의 무한시점과 무한초점은 주체(Subject)가 대상(Object)을 보는 무한한 관점을 토대로 한다. 원형 캔버스에 순색과 원색으로 그린 <화(花)> 연작의 시점과 초점은 무한이다. 김영선은 수직의 꽃들을 수직의 무한시점에서 응시한다. 이 작품에는 원근이 없다. (원근이 해체되어) 하나하나의 꽃들은 하나하나의 시선을 받고 있다. 꽃과 화가의 대화는 무한이다. 그래서 원형 캔버스는 생명체 꽃이 내는 영혼의 울림으로 가득하다. 칸딘스키(W. Kandinsky)의 화폭처럼 캔버스는 살아 있고, 캔버스의 꽃들도 살아 있다. 김영선은 <화(花)> 연작에서 하나의 시점과 하나의 초점을 해체하고 무한한 시점과 무한한 초점을 선택했다. 이렇게 하여 캔버스 중심과 주변에 작용하는 힘을 같게 만들었다. 그 결과 긴장과 대립이 없어지고 평안과 조화가 드러나 있다.
그런데 화가가 하나의 꽃에 내재한 무한의 원소(x)들에도 시선을 줄 수 있을까? 김영선은 꽃 한 송이의 모든 원소에도 무한초점의 시선을 주었다고 말한다. 무한시점(Infinite view point, 無限視點)은 주체가 대상을 보는 무한한 수의 관점이고 무한초점(Infinite focal point, 無限焦點)은 주체가 대상의 가깝고 먼 곳 모두에 초점을 맞추는 관점이다. 이것은 무원근법(non-perspective, 無遠近法)과는 다르다. 단일시점과 단일초점의 무원근법이 아닌, 무한시점과 무한초점은 화가의 시선이 무한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화가의 시선에는 0의 시선, 하나의 시선, 여럿의 시선, 무한의 시선이 있다. 그런데 김영선은 대상을 단순화(simplification)하여 하나로 보기도 하고 대상을 나누어서 여럿이나 무한으로 보기도 한다. 그리고 가까운 것과 먼 것을 공감각(synesthesia)으로 조정하여 똑같은 각도와 거리로 표현한다. 그리하여 1미터 앞의 사물이나 1,000m 앞의 사물을 같은 시점과 초점으로 그린다. 김영선의 <화(花)>와 <걸음을 멈추고>는 무한시점과 무한초점의 추상적 표현이다. 아마도 그것은 재현의 구상회화에서 표현의 추상회화로 가는 과정에서 얻은 서정적 추상표현주의 기법일 것이다. 김영선이 (정지한 평면사각에) 표현한 것은 운동하는 대상이다. 김영선은 어떤 대상이든지 무한의 시간으로 불러와서 대상과 함께 무한의 운동을 실행한다. 그러면 완벽하게 박제되었던 평면은 생명력 있는 무한의 운동을 시작한다. 평면 사각 가로 x, 세로 y의 2차원은 (높이 z를 배제하고), 시간 t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러니까 김영선 회화의 본질은 평면(x, y)에 시간(t)이 무한운동하는 김영선식 추상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화가의 무한시점과 무한초점이 가능해야 한다. 자신의 사유를 무한하게 나누고, 자신의 시선을 무한으로 확장하는 것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그것이 가능한 유일한 공간은 사각평면(Square planar, 四角平面)이다. 인간은 원래 모든 것을 (사각평면처럼 생긴) 마음의 스크린을 통해서 인식한다. 김영선이 표현하는 추상화는 시공간에서 무한운동하는 사각평면(x, y, t)이다. 현실의 입체(x, y, z)를 평면(x, y)으로 표현하는 것이 추상의 본질이다. 김영선은 일반적 추상에 표현주의적 추상을 가미하여 추상표현주의로 나가고, 여기서 다시 서정성을 가미하여 서정적 추상표현주의로 나간다. 그런데 김영선은 유화가 아닌 수묵을 쓰기 때문에, ‘수묵 서정 추상 표현주의’가 되는 것이다. 김영선의 추상표현주의는 대상 없는 서정적 직관에서 얻어진다. 김영선이 지향하는 수묵 서정 추상표현주의는, 칸트(I. Kant)의 미학 개념으로 말하면, 대상의 현전 없이(ohne Gegenwart des Objekts) 직관으로 표상하는 예술이다. 여기서 얻는 미(美)는 상상과 지성의 자유 유희다. 화가의 미적 자유유희는 관객의 미적 자유유희와 만난다. 그것은 화가의 주관적 감성이 보편적 지성과 일치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여기에 반성적 판단(reflektierende Urteilskraft)으로서의 회화 미학이 빛난다. 김영선의 수묵 서정 추상표현주의의 길은 멀지만, 희망의 빛이 환하게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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