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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민경, 김기찬 展
구체적 진술과 은유
더소소
2022. 10. 29(토) ▶ 2022. 11. 25(금)
서울특별시 중구 청계천로 172-1 (주교동) | T.031-949-8154
www.gallerysoso.com
감민경 作_나의 지구_각 215x150cm_Charcoal on Korean paper_2022
담담한 풍경, 격렬한 깊이
하얀 종이에 목탄과 연필로 그어진 검은 선들이 형태와 명암으로 풍경을 만든다. 감민경과 김기찬, 두 작가는 가장 소박한 재료가 사용되는 회화, 드로잉으로 만났다. 주가 아닌 주변의 것, 매일 다니며 무심코 흘려버리는 것들에 시선을 보내는 이들의 작품은 《구체적 진술과 은유》라는 제목으로 같은 공간에 자리하게 되었다. 시간을 두고 볼수록 점점 더 자세한 풍경이 되는 이들의 모노톤 드로잉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크고 작은 화면과 진하고 연한 선처럼 다양한 사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이윽고 작품의 소리와 공명하는 순간을 맞게 된다.
그들의 진술은 담담하다. 감민경의 작품 속 어딘지 모를 풍경은 꿈결처럼 아련히 종이 위에 나타난다. 목탄의 거친 선들은 어디선가 보았을 법한 풍경이 되어 그곳에서 일어난 누군가의 조그만 일들을 작게 이야기한다. 그것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고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모두가 본 풍경이며 누구라도 겪었을 일들이다. 너무나 작아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하는 김기찬의 작품은 평범한 거리의 풍경을 정갈하게 담고 있다. 어제 지나갔던 아파트의 놀이터, 누군가의 낙서가 있는 강가의 다리, 어둑한 저녁에 지나간 파출소 앞, 밤새 내린 눈이 소복하게 쌓인 주차장은 특별한 일 없이 우리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일상의 모습이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풍경들은 담담하게 그날의 일들을 말하고 있다.
그 속의 은유는 격렬하다. 커다란 화면을 가득 채운 감민경의 선들이 거대한 풍경이 되었을 때, 평범한 인간의 몸은 역사가 된다. 작가의 힘이 실린 선을 따라 자신조차도 자세히 본 적 없는 속살에 새겨진 인생의 파고를 만나고, 힘겹게 넘어야했던 거대한 둔덕과 깊은 어둠을 지나간다. 이름모를 곳에서 일어난 누군가의 일은 나의 기억과 겹쳐지며 삶을 지배하는 강렬한 사건이 되기도 한다. 김기찬의 작은 풍경 속에서 수천 번 수만 번 그어진 섬세한 선들을 인식하게 되면, 무심코 지나쳤던 풍경에 쌓인 수많은 시간이 한꺼번에 닥쳐온다. 누군가 살았었고 지금도 누군가가 살고 있을 아파트 벽의 균열, 어제 지나간 그 골목을 지나쳐갔을 수많은 사람들, 그 모든 것이 담담한 풍경을 뚫고 가슴 아리게 다가오는 순간을 경험한다. 이렇게 이들의 풍경은 격렬한 깊이를 지니고 있다.
아주 구체적으로, 너무나 선명하게 그려진 그림들이 뚜벅뚜벅 걸어와 내 앞에 선다. 어떠한 포장도 없이 맨 얼굴을 보이고 있는 이 그림들 앞에서 나를 덮고 있던 모든 가장들을 벗는다. 작품과 마찬가지로 맨 얼굴이 된 나는 비로소 작품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듣는다. 별일 아닌 듯, 그냥 그런 이야기인 듯 조곤조곤 말하는 풍경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하루하루 견디고 있는 삶의 무게를 마주한다. 그 하루를 조용히 안아준다. 이것이 《구체적 진술과 은유》에서 감민경과 김기찬이 만들어내는 담담하고도 격렬한 공명을 만나는 순간이다.
전희정(갤러리 소소)
김기찬 作_눈_9x12cm_pencil on paper_2021
전시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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