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NGIK ROOT

 

- ALONE TOGETHER -

 

홍익여성화가협회 41회 정기전

 

 

 

 

제2관 홍문관 2층

 

2022. 10. 12(수) ▶ 2022. 10. 17(월)

Opening 2022. 10. 12(수) pm 3

서울특별시 마포구 와우산로 94 | T.02-320-3272~3

 

https://homa.hongik.ac.kr

 

 

인사말

ALONE TOGETHER

 

홍익루트(홍익여성화가협회) 41주년 정기전을 결실과 수확의 계절인 10월에 개최합니다.

지난 40주년 기념전에 이어 모교인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에서 전시하게 되어 더없이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2년 반 전에 시작되어 아직도 끝나지 않은 COVID-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하여 전 세계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힘들고 어두운 시간 속에 있습니다.

이 혼돈이 하루속히 끝나고,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회복되기를 기대하고 소망합니다.

어려운 시간 속에서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작가의 길을 열정을 다하여 걷고 계신 존경하는 대선배님들과, 앞으로 홍익루트를 이끌어갈 귀한 보배와 같은 젊은 후배님들까지 많은 회원들이 전시에 동참하여 주시니 너무나 감사한 마음입니다.

창작생활을 하는 여성 예술가로서 사랑과 헌신으로 이끌어주신 선배님들의 노고로 홍익루트가 지금까지 한해도 빠짐없이 40년의 전통을 이어온 것에 대하여도 감사드립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80세가 넘으신 대선배님들이 홍익루트에 새로 가입하여 동참하여 주시고, 후배님들도 함께 작가의 길을 시작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대한민국의 미술사에서 수많은 역량이 뛰어난 화가들을 배출한 명문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의 저력과 한국 현대미술의 밝은 미래를 봅니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는 "진정한 친구는 삶의 보물이다. 그들은 때때로 우리 자신들보다 우리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친절한 정직함으로 우리를 안내해 주고 우리를 지원해 준다. 그리고 우리의 웃음과 눈물도 나눌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있음으로 우리가 절대 혼자가 아니란 것을 알게 해준다."고 했고, 바실리 간딘스키(Wassily Kandinsky)는 "예술가는 영혼의 울림을 만들어내기 위해 건반 하나 하나를 누르는 손이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 ALONE TOGEHTER >라는 타이틀대로 우리는 각자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추구하지만 공동의 전시회를 통하여 홍익루트가 어떤 환경과 어려움 속에서도 작가의 꿈을 지키기 위하여 온 마음을 다하는 홍익 동문 작가들의 영원히 따스한 위로와 격려의 장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해주신 홍익루트 동문 선후배님들과 전시를 위해 힘써주신 임원진께 감사드립니다.

 

홍익루트 회장 정해숙

 

 

송경 作_하늘_162.2x112.1cm_oil on canvas_1997

 

 

「홍익여성화가협회」 회원들은 왜 그림을 그리는가

: 삶의 의미이자 존재 이유로서의 그림

 

2022년 10월. 「홍익여성화가협회는 예년과 다름없이 정기전 《홍익루트전》을 열게 되었다. 이들은 2021년 10월 코로나 팬데믹으로 어수선하던 상황에서도 창립 40주년 행사를 대대적으로 치름으로써 이 단체의 위상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여전히 코로나로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음에도 130명의 대규모 회원이 정기전에 참여했다. 회원들은 아마도 새해가 시작되면 그 해에 있을《홍익루트전》 준비를 계획할 것이다. 매해 가을 개최하는 《홍익루트전》은 그 자체로 상당히 의미가 있는 것이, 봄에 씨 뿌린 후 여름의 더위를 극복하고 가꿔야 비로소 가을에 기쁨으로 풍성한 수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유독 봄 가뭄이 심했고 여름에는 더위와 장마로 농사일은 물론 일상의 삶을 영위하기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많은 회원들이 정기전에 참여한 것은 「홍익여성화가협회가 더욱 번창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김영자 作_외로움_116x90cm_oil on canvas_2021

 

 

「홍익여성화가협회는 1982년 8월에 아랍문화회관에서 《홍익전》이라는 이름으로 창립전을 열면서 한국미술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한국미술계는 여성작가들이 여성주의를 내세우거나 페미니즘 이론이 정립된 시기가 아니었고 다만 여성작가들이 설 자리가 부족하던 시절이었기에, 뜻있는 선배 여성작가들이 의기투합하여 단체를 만들어서 여성작가들이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것이었다.

한국 페미니즘 미술사에서 늘 거론되는 나혜석(1896-1948)이 페미니즘 의식을 갖게 된 것은 1910년대다. 그는 일본 유학 시절에 '조선여자'로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진보적 여성주의 이론을 접하고 이를 몸소 실천했다. 이는 여성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미쳤지만, 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이혼 후 홀로서기를 위해 무단히 애를 썼지만, 남성작가들은 그의 노력에 대해 비아냥거렸고 결국 그는 행려병자로 사망했다. 1948년 사망 당시 누구도 그가 1920년대에 세계 일주를 했던 나혜석인 줄 몰랐을 정도다. 그렇게 역사에서 완전히 지워졌던 그가 세상에 다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평론가 이구열의 끈질긴 추적 조사에 의해서다. 1974년에 이구열 선생은 『에미는 선각자였느니라』는 제목으로 나혜석의 일대기를 다룬 책을 냈다. 꼼꼼한 리서치를 토대로 나혜석의 삶과 예술을 다룬 이 책은 그야말로 불꽃같이 살았던 나혜석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고, 이후 나혜석 연구의 마중물이 되었다. 이를 기점으로 미술사학자는 물론 페미니즘 문학 연구자들에 의해 나혜석의 미술작품과 문학작품이 재조명되기에 이른다. 비록 미술작품에는 페미니즘 의식이 직접 드러나지 않았지만, 당당하게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나혜석의 글은 지금도 페미니즘 연구자들에게 중요한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조문자 作_광야_130x97cm_Mixed Media on paper_2021

 

 

한국의 미술사 연구 영역에 서양의 페미니즘 담론이 도착한 것은 1980년대 후반이다. 그러니까 「홍익여성화가협회가 창립될 당시는 본격적인 페미니즘 이론이 정립되기 훨씬 이전이다. 잘 알려진 이불(홍대 조소과 졸업)의 <낙태> 퍼포먼스가 있었던 것이 1989년인데, 충격에 가까운 이 퍼포먼스는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제도비판이나 현실 저항 같은 적극이고 진보적인 페미니즘 미술의 신호탄이라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물론 이보다 먼저, 여성 문학가들이 갖고 있던 현실 인식을 공유하던 극소수의 여성 미술인들이 민중미술의 맥락 속에서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은 모더니즘 미술에 저항하면서 이중적으로 소외당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이나 노동 현장을 직설적인 방식으로 화폭에 담아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 현실을 폭로했다. 또 때로는 가부장적 사회에 만연한 여성에 대한 차별과 질곡의 현대사에서 이루어진 한국 어머니들의 희생을 적극적으로 다루기도 했다. 이러한 페미니스트 작가들이 등장하기도 전에 이미 홍익대학교 회화과 출신의 여성작가들이 결집하여 한국 미술계에 여성미술가의 존재를 각인시켰던 것이다.

 

 

황영자 作_Original Energy_145x94cm_Acrylic on canvas_2021

 

 

필자가 미국에서 미술사를 공부하던 중 페미니즘 미술사 방법론에 매료되어 석사논문에서 페미니즘 방법론을 다루기도 했고, 귀국 후에는 휘트니 채드윅이 지은 『여성, 미술, 사회 : 중세부터 현대까지 여성미술의 역사』(시공사)라는 꽤 묵직한 번역서를 낸 바 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중세시대의 이름 없는 여성작가에서부터 현재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여성작가들까지를 망라해서 다루고 있는데, 한국의 여성작가로는 이불, 김수자, 윤석남이 소개되어 있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 후반의 시민권운동과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운동을 기반으로 현대 페미니즘 운동이 본격화되었고, 페미니즘 미술가나 비평가들은 여성 미술가들을 남성 미술가들에게 종속시키는 동인을 밝히기 위해 제도와 담론의 방법을 탐구했다. 젠더, 문화, 창조성 을 둘러싼 논쟁 속에서 여성 미술가들의 삶을 연구하면서 저자 채드윅은 근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왜 미술사가들은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을 무시해온 것일까. 성공적인 여성 미술가는 어째서 이상할 정도로 예외적인 존재인가. 이런 질문 속에서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을 분석하고, 가부장적 사회에서 발생하는 젠더 문제와 인종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었다.

 

 

이정혜 作_Flower_98x67cm_Acrylic on canvas_2022

 

 

지금은 21세기. 현대 페미니즘 담론이 부상한 지도 이미 반세기가 훌쩍 넘었다. 요즘 우리나라 작가 중에 국제적 명성을 얻은 작가들 대부분이 여성작가라는 사실을 환기해 본다면, 이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회적으로 혹은 미술계 내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일은 드물 것이다. 그러나 미술사 연구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여성작가들은 여전히 미술사에서 소외되고 있다. 이는 전적으로 연구자의 게으름이나 안일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현대미술사 연구자들은 대부분 전위성을 띤 작품이나 제도를 비판하고 현실 저항적 메시지가 강한 작품에 주목해왔다. 게다가 민족주의 같은 거대 담론이나 정치 이데올로기가 미술사 논의를 지배하면서 작가 개인의 내밀한 의식이나 사적인 관심사를 다룬 작품은 논의 대상에서 제외되고 미술사에서 탈각된 결과, 한국 현대미술사가 지나치게 평면적으로 기술된 감이 없지 않다.

그러면 「홍익여성화가협회」 작가들의 관심사는 무엇인가? 다시 말해, 이 회원들이 무엇을 즐겨 그리는가, 왜 그림을 그리는가, 창작활동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등의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창립 40주년 전시도록 『HONGIK ROOT 40, 1982-2021』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도록에는 작가들의 작품 사진과 함께 각자 자신의 작품을 소개한 글들이 실려있으며, 적잖은 원로작가들이 서면 인터뷰를 통해 그림을 그리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이는 「홍익여성화가협회」 회원들의 화풍뿐 아니라 각각의 관심 사항, 창작 의지 및 경향성을 파악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다. 이 자료를 토대로 회원들이 즐겨 다룬 소재나 주제의 키워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남영희 作_면의 일상_97.5x61.5cm_Hanji, Indian Ink, Acrylic_2022

 

 

꽃, 여인, 동심(송경), 버선(제정자), 풀잎의 떨림, 새소리, 물소리 등 자연의 요소(황영자), 행복한 순간(김영자), 자연의 변화와 생명감(석난희), 광활한 불모지, 생명력(조문자), 꽃, 마음의 평정(이정혜), 작가를 둘러싼 인간의 이야기(남영희), 꽃, 자연의 경이로움(정동희), 자연의 아름다움, 순수함(김정자), 초월적 세계, 우주, 지고한 정신(이정지), 삶 속의 여유, 감동, 환희, 희망(전명자), 만남과 축제, 인생(전준자), 여행 체험(심선희), 우주의 질서와 자연의 신비(황명혜), 내면세계를 비추는 성령(민정숙), 자연, 생명(박명자), 인물-여성 누드, 새로운 활력(이명희), 색채의 향연과 생명성(김경복), 꽃, 치유, 생의 기쁨(김령), 지친 영혼의 안식처(장지원), 일상의 감정(조정동), 자연, 대지의 생명력(황용익), 자연, 생명, 평화(이은구), 자연, 삶의 이야기(장경희), 꽃, 사랑, 생명(유성숙), 빛, 절대자의 존재(공미숙), 꽃, 생의 환희(성순희), 삶의 기쁨, 기다림, 우주(백성혜), 삶의 여정, 생명(변경섭), 치유, 위로, 회복, 사랑(정해숙), 샘, 생명(손일정), 자연, 생명(송진영), 생, 사랑(신미혜), 꽃, 생명, 행복(유복희), 자연, 조화(이지혜), 자연, 생명체(김미경), 삶, 생명(하민수). 지면 관계상 더 많은 작가를 거론하기 어렵지만, 이들 이후 세대 작가들의 경우에도 추상적인 작품을 제외하면 대체로 나무, 꽃, 풀 같은 자연 모티프가 큰 비중을 차지하며, 사랑, 행복, 생명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이정지 作_<0>-62 (The Great Lawn)_116.8x91.0cm_oil on canvas_2019

 

 

작품의 소재나 주제 외에도, 40주년 기념 도록에 실린 원로작가들의 인터뷰 내용은 창작활동의 목적, 즉 왜 그림을 그리는가에 대해 흥미로운 정보를 제공한다. 1962년에 졸업한 제정자 동문은 '그림은 삶의 의미이자 자신을 지탱해주는 힘'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창작 자체가 작가로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자 삶의 원동력이라는 생각에는 여러 작가들이 동감할 것이다. 황영자 동문은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응하면서 자신이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을 표현하고 있다. 김영자 동문은 현실을 넘어선 환상적인 풍경을 통해 행복했던 과거에 대한 향수를 그리곤 하는데, 80대의 나이에도 안주하지 않고 그림을 그린다는 자체에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림 그리는 자체에서 행복을 얻는 것은 이정혜 동문도 마찬가지다. 작가 자신을 둘러싼 일상의 이야기를 다루는 남영희 동문 역시 자유롭게 그림에 몰두할 수 있는 자체에 만족해한다. 꾸준하게 아프리카 풍물을 그리고 있는 김정자 동문은 아프리카의 풍경과 인물을 그리면서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 천주교 신자였던 故이정지 동문은 거룩함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 그림을 통해 치우침이 없는 통합과 조화의 세계를 구현하고자 했다. 심선희 동문 역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자체에 행복감을 느끼며 「홍익여성화가협회」에서 활동이 힐링과 위안이 된다고 고백한다. 그런가 하면 민정숙 동문은 작가 내면의 삶을 표현하고자 하고, 자연과 생명을 찬미하는 박명자 동문은 기독교인으로서 지역 이웃과 소통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또 김경복 동문은 그림을 그리는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으며, 김령 동문은 그림을 통해 내면의 존재를 일깨우면서 치유받고 행복감을 느낀다고, 장지원 동문 역시 창작하는 자체에서 삶의 활기는 찾고 행복감을 느낀다고 언급하고 있다. 황용익 동문은 그림이 바로 자신의 인생이라 여기며 창작활동을 하고 있으며, 화사한 빛을 발하는 꽃을 즐겨 그리는 유성숙 동문은 생명의 존귀함을 드러내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정숙 동문, 박은숙 동문, 최정숙 동문 역시 앞서 언급한 동문들과 마찬가지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삶 자체이자 존재의 이유이며 자신의 존재를 가장 잘 드러내는 매개물이라고 여기고 있다. 오랫동안 기하학적 추상으로 다양한 모티프와 함께 빛을 표현하고 있는 정해숙 동문에게는 그림 그리는 자체가 일종의 신앙고백이다.

 

 

민정숙 作_마태 아저씨의 편지_80x80cm_Hanji_2022

 

 

이상의 원로 및 중견 작가들을 중심으로 《홍익루트전》에 참여한 작가들이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종합해보면, 이들은 일상적 삶, 가치관, 종교관 등 지극히 개인적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창작 그 자체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고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 물론 이들 역시 갖가지 재료와 조형 실험을 통해 자신만의 독자적인 조형언어를 탐구하는 중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현재 한국 미술사가들이 관심이 있게 다루는 기성에 대한 저항, 전위성, 사회나 정치적 현실 참여, 제도비판, 이데올로기 등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홍익여성화가협회」 회원들에게 그러한 요소들은 '예술 그 자체'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나혜석이 남편을 따라 만주에 머무는 동안에도 《조선미술전람회》에 지속적으로 작품을 출품하자 "야심이 앞선 것"이라고 그의 창작활동을 헐뜯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나혜석은 "내가 그림없이 어찌 살라구," "그림을 제해 놓으면 실로 살풍경"이고, "내가 그림이오, 그림이 내가 되어, 그림과 나를 따로따로 생각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항변하지 않았는가(조선일보, 1926.5.20.). 그로부터 10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나혜석의 항변은 여전히 유효하다. 여성 작가들에게 그림이란 삶 그 자체다. 창작활동 그 자체가 존재 이유라고나 할까. 제도나 현실을 비판하면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작가들과는 지향점이 전혀 다르다고 하겠다.

 

 

김경복 作_ Memory- 자주꽃_111.5x162cm_Acrylic on canvas_2022

 

 

한국 현대미술사 연구자들은 새로운 조형 실험에 앞장선 전위적인 작가들이나 제도와 현실에 비판적인 작가들에 주목해왔다. 1970년대까지 미술의 중심을 차지한 것은 전위성을 추구하는 남성작가들이었다. 1980년대에도 현실비판과 역사의식을 중시하는 작가들이 급부상하면서 민족의 문제나 분단의 현실, 정치 비판을 창작의 주된 목적으로 삼는 남성작가들이 주목을 받았다. 여성작가들의 작품은 모더니즘과 민중미술이라는 거대한 양대 산맥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던 셈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홍익여성화가협회」 회원들의 주요 관심사인 개인의 삶 이야기, 자연과 생명, 그리고 창작 그 자체가 지닌 위대함 등은 거대 담론과 이데올로기의 그늘에 가려 쉽게 무시되었고, 작가 한 사람 한 사람의 고유한 조형언어와 창작의지는 간과되었다. 필자가 미술사라는 학문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1982년 9월, 우연히도 「홍익여성화가협회」의 창립전이 있었던 바로 그 시점이다. 필자 역시 미술사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한국 현대미술사의 거대 담론에 기대어 연구해온것이 사실이다.

이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필자의 미술사 연구 이력을 살려서 지난 40여 년간 「홍익여성화가협회」 회원들의 창작활동을 면밀히 들여다보고자 한다. 창작의 즐거움, 행복감, 자기 확신 등은 인간의 삶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의미 있는 일이다. 현실 비판적인 작업역시 사회적으로 필요하지만, 점차 많은 작가들이 자신이 경험이나 느낌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것을 훨씬 진정성 있고 가치 있는일로 여기고 있다. 다른 단체전과 달리 《홍익루트전》이 더욱 번창하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김이순(미술평론가, 미술사연구회 회장)

 

 

김령 作_생의 Fantasia_116.8x91cm_Bead &Mixed media_2022

 

 

황용익 作_백합꽃 이야기 2_53x45cm_Acrylic on canvas_2021

 

 

유성숙 作_향기로 피어나다_130.3x162.2m_Acrylic & Mixed Media_2021

 

 

박은숙 作_Origin-harmony21w_116.8x91cm_Mixed Media_2021

 

 

최정숙 作_별 내리는 섬_116.8x72.7cm_Mixed media on canvas_2022

 

 

정해숙 作_투영(주님의 시간, KAIROS)IV_130.3x130.3cm_oil on canvas_2022

 

 

공미숙 作_Rejoice_33x77cm_Acrylic on canvas_2021

 

 

문미영 作_오늘을 그리다_76x76cm_Mixed Media_2022

 

 

이은실 作_Prelude. No.4_90.9x72.7cm_oil on canvas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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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21012-홍익여성화가협회 41회 정기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