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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해율 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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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마크
2022. 7. 7(목) ▶ 2022. 8. 13(토) 서울특별시 서초구 사평대로 20길 3 B2 | T.02-541-1311
움직임의 미학과 과학정신
박배형(미학,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노해율의 작품세계를 접해 본 사람이라면 그가 끊임없이 움직임과 관련된 모티브를 변주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될 것이다. “Swing”, “General Move” 그리고 “Movable” 같은 그의 연작들의 제목이 말해주듯 움직임이라는 주제와 무관하게 그의 작품을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러한 사정은 보는 이로 하여금 무엇이 작가 노해율을 사물들의 그리고 이 세계의 동적인 요소에 그토록 몰두하게 만들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한다. 사실상 우리는 끊임없이 움직임에 노출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은 너무 친숙해서 우리는 거의 이를 잊고 지낼 정도이다. 그러나 주위를 한번 둘러보자. 거리에서 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과 현대 도시문명의 속도를 대변해 주는 교통수단과 대형 전광판 영상들의 움직임까지, 우리는 움직임의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실상 그 안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도 바로 이러한 움직임들에 일조한다. 또한 우리를 둘러싼 자연 역시 움직임의 연속이다. 하늘의 구름과 바람의 흐름과 날아가는 새들의 날개짓 그리고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줄기의 움직임 역시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것들이 아닌가. 이 세계의 다양한 움직임을 포착하여 표현하는 그의 시도는 우리의 삶을 이루고 있는 중요한 측면을 드러낸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그의 작업이 갖는 특별한 의미는 지금까지 말한 그러한 움직임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움직임도 포착하고자 하며 또 포착하여 이를 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구현해 낸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작가 노해율을 규정하는, 두드러지게 만드는 요인이 존재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의 작품들이 우리 내면의 풍경이 흔히 그러한 것처럼 불안정하고 무질서하며 복잡다단한 형태를 지니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그의 작품 앞에 서게 되면 이런 기대는 곧 깨져버리고 만다. 그의 작품들의 형식은 오히려 정연하며 정제되어 있어 하나의 작업이 분명히 끝났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그의 작품들은 높은 완성도를 지닌다. 그가 보여주는 것은 혼란스럽고 순간순간 달라지는 기분과 느낌들의 방만한 표출과는 거리가 멀다. 완성된 작품들의 간결하고 질서정연한 형태들이 주는 매끈한 인상은 그가 주로 금속이라는 재료를 사용하기에 더욱 강화된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들은 갖가지의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이 움직임들은 내면의 풍경을 고스란히 전달해 준다. 여러 가닥으로 뒤엉키기도 하고 종잡을 수 없기도 한 내면의 모습을 단순한 형태와 움직임들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인내와 숙고 속에서 철저히 주제에 천착했는지를 말해준다. 즉 그는 설익은 표현을 성급하게 구성해내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표현을 발견하기 위해 과학자처럼 탐구하고 실험하여 가장 효율적인 길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실제로 그의 최종적 결과물은 재료와 힘의 역학적 고려와 음향학적 요소 등이 결합된 효율적 구조물이다. 그리고 여기에 작가 노해율을 대변하는 또 하나의 특성이 존재한다. 말하자면 그것은 과학정신이다. 아무리 그가 미세한 “감정”의 결을 강조한다고 해도 그의 작업의 바탕에 흐르는 것은 이 과학정신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느낌의 일렁임을 잡아내고 이를 형상화하는 반면, 또한 세밀하게 분석하고 정교하게 계산한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작품에서 이를테면 예술과 과학의 결합을 보는 셈이다. 물론 이것은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다. 미술사를 찬란히 수놓는 르네상스의 어떤 대가들 또한 과학자가 아니었던가. 20세기 초반 아방가르드 운동의 한 대표 주자였던 미래파 역시 얼마나 과학에 경도되었던가. 작가 노해율은 우리로 하여금 예술과 과학의 결합이 또는 공학의 결합이 어떠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하고 그 자신 또한 이를 고민하고 있다. 현대적 첨단 과학기술과 예술과의 만남이 특별히 이 시대의 대중적 관심을 받고 있는 지금, 그의 작업은 이것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예술과 과학과의 만남을 추구한다. 그가 가는 길은 화려한 색채와 번쩍이는 조명과 현란한 영상들의 유희가 아니다. 그의 작업은 우리를 현실 너머에 있는 가상의 세계로 이끌어 환상에 취하게 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재료 자체의 성질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 공간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게 하여 우리를 현실로부터 도피하게 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를 작품 앞에 멈추어 세우고 우리로 하여금 재료의 광택과 질감과 형태를, 또 이 형태가 연출하는 리듬감을 느끼고 생각하게 하고 또 이 모든 것을 즐기게 한다.
다시 움직임이라는 주제로 돌아오도록 하자. 작가 노해율은 자신에게 있어 움직임에 관한 소재는 당분간 고갈될 일이 없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는 앞으로도 무궁무진할 듯싶은 다양한 움직임들을 찾아내어 표현하는 데에 마치 어린아이처럼 즐거이 달려들 것이다. 바람에 따라 무작위로 반응하는 원뿔의 금속 모형이건 동력에 따라 좌충우돌하는 금속판들이건 그는 자신의 작품들 속에서 그가 설정해 놓은, 또 우연이 빚어내는 즉흥적인 움직임의 효과를 연출하고 또 연출할 것이며 누구보다도 그 자신이 이것을 즐길 것이다. 지속되는 그의 작업에서 그를 이끌고 있는 것은 그러나 단순히 움직임의 향연이 주는 흥미로움이 아니다. 그를 인도하는 것은 숨어 있지만 때때로 우리가 확연히 느끼는 삶의 어떤 리듬감이다. 불규칙적으로 보이는, 제멋대로처럼 보이는 운동 속에 숨어 있는 것은 어떤 질서 있는 리듬이며, 그가 변주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리듬이다. 이것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쉽사리 잃어버리기도 하지만 다시금 찾아내고 싶어 하는 그런 삶의 리듬이며, 그는 자신의 작업 속에서 이러한 리듬을 발견해내어 표현하고 스스로 이에 대한 감각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수고로운 자신의 작업 속에서 그저 에너지를 소진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리듬감을 회복하여 다시금 스스로를 새로이 하고 건강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듯 그의 작업이 삶의 리듬감을 되찾아가는 도정이라고 한다면, 어찌 그가 여기에 몰두하지 않을 것인가. 그러니 어찌 그가 움직임에 대한 탐구를 멈추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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