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학만 초대展

 

제 6시의 묵상

 

정금의 욥_20x22.5cm_Oil on wood

 

 

 

2022. 6. 8(수) ▶ 2022. 6. 25(토)

서울특별시 종로구 운니동 19번지 | T.02-730-3533

 

www.galleryjang.com

 

 

가시면류관_61x35cm_Oil on canvas

 

 

황학만의 서정적 묵상, 혹은 고백의 서정시

 

황학만의 회화는 자연주의나 사실주의에 기반을 둔 서정적 태도보다는 초현실주의에 더 잘 설명된다. 예컨대, 서로 상반된 두 세계의 통로로 작용하는 나무상자와 그 트인 전면으로 분명하게 드러나는 상징적 풍경의 조합은 데페이즈망(Depaysememt), 즉 사물들을 그 맥락과는 무관한 이질적인 것과 병치시키거나 충돌시킴으로써 현실계를 위반하고 몽환의 차원을 개입시킨다는 초현실주의의 기법을 환기하게 한다. 데페이즈망은 이밖에도 작가의 회화 전반에서 목격되는데, 작가의 소리는 해변이 아니라 나무통로의 내부에 놓여있고, 새는 수풀대신 상처를 싸맨 나뭇가지 위에 앉아있다. 이 같은 인위적 만남, 예외적 충돌은 현실계에서는 결코 가능하지 않은 설정이다. 그러므로 이미 사실주의와는 결별한 황학만의 회회 앞에서 우리의 관심은 마땅히 존재하는 것들 너머 존재하지 않는 것들, 혹은 존재를 초월하는 것들로 향해야 할 것이다.

 

 

부활하는 갈릴리의 해변의 아침_120x75cm_Oil on canvas

 

 

황학만의 상상세계와 초현실의 궁극으로서, 그리고 자신의 회화에 등장하는 모든 장치들을 독해할 진정한 좌표로서 자신의 영혼 깊은 곳으로부터 고백을 담은 그곳에 도달하기까지의 지난한 고백을 암시하는 것일 게다. 그것의 재질이 나무인 까닭은 그 소통의 힘이 골고다의 나무 십자가로부터 유래했다는 사실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한 마리의 새가 안식하는 곳이 다름 아닌 상처를 싸맨 나뭇가리자라는 사실과 같은 문맥이리라. 반반하고 음영이 드리워진 터널이 그것이 지나는 동안 피곤하고 사방의 어둠으로 포위될 수도 있는, 이를테면 우리의 생의 여정을 닮아 있다는 점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어떠한 경우든, 황학만의 회화는 동일한 정적에 싸여있다. 시간은 마치 묵상과 참배를 위해 준비된 것처럼 정지되어있다. 그리고 균형은 수직과 수평의 공존, 무거움과 가벼움의 교차, 상처와 치료, 고단한 현실과 영원한 안식의 공존으로 독해 될 수 있을 그것들에 의해 더 심원하고 견고한 어떤 것으로 화한다. 모든 의미를 마치 하나의 시구(詩句)처럼 압축한 교차와 공존의 긴장감 앞에서 관객은 이해와 인식의 번거로운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다.

시구로서 시 이상의 것을 지시하기, 혹은 이상의 것을 언급하면서도 단지 시로서 수줍게 존재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황학민의 회화적 재능의 진정한 근거일 것이다.

 

미술평론가 심상용 (미술사학 박사 동덕여대 교수)

 

 

제 6시의 묵상_82x42.2cm_Oil on canvas

 

 

[제 6시의 묵상] 주제 대한 작가의 변

 

역사 속에서 형성된 한국인의 정서를 바탕으로 인간의 실존을 묻는 초현실적인 작품을 주로 발표해 오면서, 자연을 배경으로 두고 자연과 인간의 생활, 또는 자연에 대한 인식세계와 인간의 실존을 묻고자 했던 것이 그동안의 작업이었다. 그다음 작업은 평면에 사물을 병치시켜 긴장감을 조성한 입체묘사에서 평면작업과 실물을 혼용한 상태의 '데페이즈망'기법의 병행으로 확장의 시도였다. 그것이 작품을 통해 일관되게 추구했던 인간존재인식에 현대인의 공감을 유도한 병행작업이다.  

'제 6시'란 오늘날 정오로서 역사적 한 사건이다. 한낮 정오가 오히려 흑암이었다는 것과, 또한 희망이라는 역설을 담은 작업이다.

 

 

낮과 밤_45.5x72cm_Oil on canvas

 

 

『제 6시의 묵상』

 

우리의 인식세계 너머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할까? 그것을 알 길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다. 어디서 온 줄 모른 탓에 종점에 당도해도 더는 갈 곳이 없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만이 우리에게 전부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전력투구하며 존재하도록 주어진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고 단정하게 된다. 그렇듯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다가 동력이 떨어질 때 밤하늘에 별똥별처럼 사라져버리는 것이 인생이라면, 그것에서 탈출은 꿈일 뿐이다. 돌아갈 곳 없는 인간에게 과연 그 출구란 존재하는 걸까.

한 낮의 밝은 태양은 분주한 일상으로 우리들을 몰아넣지만, 그래도 낮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희망이 있다. 정보정리와 활력충전으로 우리의 의식이 잠들었다 해도, 그 밤 역시 낮과 함께 교차하는 엄연한 삶이기 때문이다. 그토록 죽음으로 치부하던 잠, 그리고 밤이라는 닫혀 진 시간—. 그것이 또 하나의 숨겨진 세계라면, 그것은 오히려 영원으로 잇댄 출구의 단초(端初)일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한해가 삼백육십오일, 한 백년은 삼만 육천오백일. 한평생 교차되는 낮과 밤의 사이클 속에 갇혀 출구를 잃었다면, 그 출구는 정녕 밤일 것이다. 그것은 일상에서 창밖을 내다보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고난의-종_20x22.56cm_Oil on canvas

 

 

공간가운데 존재하는 만물은 시간 속에 개채로서 존재하며 변환된다는 점에서, 그 질서의 정연함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 그간의 작품 『공간배열』시리즈다. 그리고 때로는 우리의 인식세계 너머로 상실했던 꿈과 희망을 일깨우고자 창틀을 메타포(metaphor)로하고 창밖의 세상을 그리거나, 창틀마저 제거하고 초현실의 공간을 그린다.

찻집에서든, 하늘높이 떠가는 여객기 속에서든, 또는 대지를 가로지르며 질주하는 열차 속에서든 창밖을 내다볼 수 있는 자리를 찾는 것은, 잠재의식에 도사리고 있던 일상으로부터 일탈이란 욕구의 발로다. 꿈꿀 수 없는 망자들의 무덤에 창문이 있을 리 만무하다만, 산자들의 삶의 희망은 창밖에 있지 않은가. 그처럼 산자들의 꿈꿀 수 있는 권리, 그것은 분주한 일상의 낮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출구로서 내밀한 밤이요 상실했던 희망인 것처럼, 일상 속에서 일탈은 창밖이란 이야기다.

 

창밖 어두운 밤하늘에 영롱한 별빛이 변함이 없듯이, 한낮 해변에는 파도가 변함없이 일렁이고 어제 흘러갔던 흰 구름은 오늘도 그처럼 또다시 흘러간다. 그래서 잊었던가, 그 광경은 우리의 새날을 위해 끊임없이 배설하는 창조주의 은총인 것을⋯⋯. 창밖의 세계는 변함이 없다는 사실에 우리는 오히려 안도하며 희망을 품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 않았던가하는 반문이다. 그런 착념에 창틀을 설정해서 역사 속에 형성된 한국인의 정서를 바탕으로 인간의 실존을 묻는 초현실적인 작품을 해왔다. 그리고 그와 함께 자연을 배경에 두고 자연과 인간생활, 또는 자연에 대한 인식의 재고(再考)에서 인간의 실존적의미를 찾고자 했다. 그렇게 해서 극사실적묘사의 평면작업에 드러나는 '데페이즈망'(depaysement)은 작품을 형성하는 메타포다.

 

작가노트

 

 

백자_27x35cm_Oil on canvas

 

 

70대 원로화가인 황학만선생은 목회자이며 여러 권의 책을 출간한 에세이스트이다.

명상과 통찰을 기반으로 독자적 장르를 개척하고 있는 서양화가로 작가의 작품은 자연주의나 사실주의에 바탕을 둔 서정적 표현에 초현실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예컨대, 서로 상반된 두 세계의 통로로 작용하는 나무상자와 그 트인 전면으로 분명하게 드러나는 상징적 풍경의 조합은 데페이즈망(Depaysememt), 즉 사물들을 그 맥락과는 무관한 이질적인 것과 병치시키거나 충돌시킴으로써 현실계를 위반하고 몽환의 차원을 개입시킨다는 초현실주의의 기법을 환기하게 한다.

 

작가의 작품은 언뜻 보기에 개념화되고 패턴화된 오브제를 전면 회화의 논리에 따라 배열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거리에는 초현실적인 꿈과 상상의 세계에서 일상의 세계로 돌아온 작가의 따스하고 편안한 시각이 배어있다. 살바도르 달리를 연상하게 하는 마술적인 붓놀림과 초현실적인 명상의 깊이를 담아내는 통찰의 탄탄한 시각이 화면에 자리 잡고 있다.

작품을 들여다보면, 사물의 상징과 도상은 한국적이기보다는 국제적인 어법을 지향하고 있는데,  그러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들여다보면 작가가 즐겨 선택하는 찢어진 판자조각. 문짝 등은 한국인의 자연관을 잘 드러내는 소재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는 상상세계와 초현실의 궁극으로서, 그리고 자신의 회화에 등장하는 모든 장치들을 독해할 진정한 좌표로서 자신의 영혼 깊은 곳으로부터 고백을 담은 그곳에 도달하기까지의 지난한 고백을 암시하며, 우리들은 작품 속에서 작가의 성찰을 포착하게 된다.

 

우리의 안식세계 너머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할까? 황학만 작가의 묵상이 당도한 숨겨진 세계, 새로운 신비로 이끄는 기독교적 초현실 세계와의 만남, 황학만 작가의 초현실주의 작품 30여점이 푸르른 녹음이 가득한 6월에 장은선 갤러리에서 선보인다.

 

 

황학만 작가는 중앙 대학교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경기미술대전 운영위원, 심사위원 그리고 나혜석 여성 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을 하며, 2022 장은선 갤러리 초대전을 비롯 일본을 비롯하여 해외를 오가며 55회의 개인전과 기타 다양한 단체전 등에 참여하며 활발한 작가 활동을 해오고 있다.

 

 

공간배열_194x130cm_Oil on canv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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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20608-황학만 초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