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훈 展

 

 

 

 

2022. 4. 22(금) ▶ 2022. 5. 10(화)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36길 20 | T.02-396-8744

 

 

Loop(Passion)_53.0x72.7cm_Acrylic on Canvas_2022

 

 

on your mark, then to the new mark

 

1930년대 초 발터 벤야민은 자신의 유년시절에 대한 에세이를 집필했다. 사물과 연관된 파편적인 경험, 그리고 잔상이 되어 남은 소리에 집중한 유년기의 기억들은 글 속에서 서로 상충되기도 하고 혹은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에 대한 기억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어우러지기도 하면서 한 소년의 삶을 써내려갔다. 그렇게 완성된 벤야민의 <베를린 연대기>는 시간의 연속과는 상관없이 한 소년이 감각적으로 바라본 자신의 역사를 쌓아간다. 조성훈 작가의 이번 전시 작품들은 벤야민의 에세이와 닮았다. 작가의 경험과 기억, 그리고 다양한 사유들로 이루어진 지금까지의 자신의 연대기. 그 모든 것을 작품에 담았다.

 

 

Loop(Breath)_53.0x72.7cm_Acrylic on Canvas_2022

 

 

조성훈 작가가 열정을 품고 걸어온 그 길은 직선도 지름길도 아니다. 그래서 작가의 작품은 다양한 길을 담을 수 있었다. 결코 짧지 않지만 그렇다고 마지막에 다다른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걸어 온 길, 그리고 지금 자신이 서 있는 그 길을 캔버스에 담아낸다.

작가는 길에서 만난 수많은 기억과 경험들을 선, 색, 면을 통해 레이아웃한다. 각각의 패널들은 그 순간의 기록이다. 어떤 시간에 대한 기억, 어떤 장소에 관한 경험, 그리고 그곳에서의 자신의 사유와 감정. 이 모든 것들은 거미줄처럼 보이기도 하고 파도처럼 보이는 복잡한 물감의 향연 속에서 눈부시게 써내려간 일기가 되었다.

 

 

Loop(Dispassion)_53.0x72.7cm_Acrylic on Canvas_2022

 

 

발터 벤야민이 <베를린 연대기>에 유년시절에 대한 기억을 파편적으로 나열하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의 시간을 조각조각 모아가듯이, 조성훈 작가의 작품들도 독립적인 화면을 구성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다른 더 큰 세계의 일부분이 되기도 한다. 이 작품들은 결코 아름다운 이야기만 담아내지 않는다. 벤야민이 자신의 유년기의 좋았던 그리고 좋지 않았던 모든 기억들을 소리와 이미지, 그리고 언어에 집중하여 풀어낸 것과 같은 방식으로, 조성훈 작가 역시 선, 색, 면을 중심으로 화면에 자신의 에세이를 담아낸다. 누군가가 겪고 느낀 시간과 장소에 대한 경험이 결코 그 자신의 삶에서 분리될 수 없듯이, 조성훈 작가의 작품들은 그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조각이자 또 다른 작품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순환의 고리에 놓여 있다.

 

 

Loop(Return)_53.0x72.7cm_Acrylic on Canvas_2022

 

 

<Infinite Loop>(2021) 연작은 한 면을 구성하는 선과 색이 또 다른 면의 선과 색을 자연스럽게 찾아간다. 어떤 단계나 인과성, 혹은 시작과 끝은 없다. 그저 패널과 패널을 넘는 다양한 선과 색들은 함께 유랑하며 거대한 공간을 아우른다.  <Loop>(2022) 연작은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 화면 내부의 순환, 즉 작가 내면의 충돌과 화해를 이야기한다. “가장 엄밀한 의미에서 기억은 서사적이고 광상곡과 같은 리듬으로 언제나 새로운 장소에서 땅파기를 시도해야 한다.”고 언급한 벤야민과 같이 다양한 길을 걷고 돌아 다시 이 자리에서 그림을 시작한 조성훈 작가의 내면에 집중하는 화면이 눈을 사로잡는다. 흡사 침몰하거나 폭발하는 밝은 빛의 거대한 파도를 마주하듯이 화면 가운데를 중심으로 확장하는 색채가 쉼 없이 일렁인다. 거침없는 색의 리듬감은 폭우를 만난 바다를 거칠게 헤치고 공간을 흔들면서 원숙해진 작가의 사유를 대변한다. <On Your Mark>(2022) 연작의 물빛으로 부서지는 잔잔한 색의 향연은 <Loop>와는 대조적으로 평온함을 선사한다. 이제 자신의 자리에서 다음의 길로 향하는 작가의 이야기를 대신하는 것이다.

 

 

On your mark(Dream1)_116.8x91.0cm_Acrylic on Canvas_2022

 

 

그림에 대한 열정만으로 시작한 길이 당연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인생은 하나의 선으로 되어 있지만 그 길이 직선인지 곡선인지 아니면 수많은 갈래 길을 포함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은 잘못 든 길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길을 순간순간의 선택에 따라 다만 묵묵히 걸을 뿐이다. 그 길을 따라 걸으며 조성훈 작가는 자신의 다음 연대기를 캔버스에 한 걸음 한 걸음 써 내려가고 있다.

 

한국미술관 학예사 김윤경

 

 

On your mark(Dream2)_91.0x116.8cm_Acrylic on Canvas_2022

 

 

On your mark(Dandelion1)_60.6x72.7cm_Acrylic on Canvas_2022

 

 

On your mark(Dandelion2)_112.1x193.9cm_Acrylic on Canvas_2022

 

 

On your mark(Road)_162.5x112.5cm_Acrylic on Canvas_2022

 

 

On your mark(Road)_53.0x45.5cm_Acrylic on Canvas_2022

 

 

On your mark(Wall)_53.0x45.5cm_Acrylic on Canvas_2022

 

 

 

조성훈 작가

 
 

조성훈

 

상명대학교 조형예술전공 서양화

 

E-mail | seonghoon_j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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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20422-조성훈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