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전 展

 

 

 

인사아트센터

 

2022. 4. 20(수) ▶ 2022. 4. 25(월)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훈동 188 | T.02-736-1020

 

www.insaartcenter.com

 

 

 

 

늘 그래왔듯이 화가로 산다는 것은 어렵다. 부모입장에서 자식이 그림을 잘 그린다거나 고이 키운 딸이 데려 온 남자가 화가라면 그리 달갑지 않아 하던 세대에 나는 유년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께서 정성껏 사다주신 일명 잡기장은 여지없이 만화로 가득 채워졌던 지라, 매일 저녁 그 잡기장을 검사 맡아야 했다. 절대적으로 금지되었던 그림 그리기는 급기야 공책 가장자리의 여백을 가득 메우기에 이르렀고, 이마저도 제재를 당한 나는 결국 완전 범죄 및 증거 소멸의 수단으로 허공에 손가락으로 그림 그리기를 일삼았다. 그 모습은 남들 보기에 우스꽝스러워 보였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몰라도 어머니의 극진한 후원으로 결국 미술대학교를 졸업한 후 1983년 파리 유학길에 오를 수 있었다. 70년대 말, 80년대 초 우리나라에는 미국에서 건너 온 극사실주의가 유행했는데 유럽쪽에서는 그런 조류를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 나 역시 책으로만 보던 유럽의 어마어마한 양의 그림들을 실제로 대하면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빛과 색채 두 요소가 네모난 공간에서 요동치며 동시에 생명을 불어 넣는 것에 겉 모습을 묘사하기에만 급급했던 나로서는 무한한 감동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클로드 모네와 반 고호, 폴 세잔느, 칸딘스키의 화면구성 방법을 모색하고 더욱 더 생기를 불어 넣기 위해 잭슨 폴록과 윌리엄 드 쿠닝 등의 필치를 연구하고 정감을 넣기 위해 클림트와 모딜리아니 등의 에로틱한 분위기를 연구하고 색깔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색깔별로 1, 2년의 세월을 보냈고 (빨간색 풍의 그림 흑은 파란색 풍의 그림 등), 모든 색깔을 어우러지게 하는 데 다시 또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리고 한국인 특유의 과감한 색깔 배합과 혼을 접목시켜 동서양의 종합적인 분위 기를 만들어냈다. 폭 넓고도 복잡한 이 과정이 무척이나 고독하고 힘들었으나 조금씩 사람들은 주목하기 시작했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인내와 희생을 거쳐야 했다. 다른 분야와 달리 미술 분야는 결코 남과 타협할 수 없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최대한 자기 개성과 주장을 관철시켜야만 성공할 수 있는 어려움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런 특성 속에서 일반인들로부터 주목을 받기란 몇몇 특정인들을 제외하고는 많은 고통이 뒤따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 그리기를 영유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자학주의가 아니고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림 그린다는 것은 성공이나 쟁취 같은 소유욕 이전에 마음의 치유가 우선이라는 점이다. 그림 그릴 때의 쾌감, 그 이후의 뿌듯함은 세상 그 무엇과도 비할 데가 없다. 오래 전, 완성도 끝도 없는 이 고독한 작업이 언제나 해결될 수 있을까에 대해 학교 선생님께 여쭤 본 적이 있다. 선생님은 지긋이 웃으며 내게 말씀하셨다. “죽으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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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20420-이해전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