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낙우조각회 올해의 작가

장우진 초대展

 

건축용전각-기와

 

 

 

2022. 4. 14(목) ▶ 2022. 4. 20(수)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36길 20 | T.02-396-8744

 

 

10월의 드로잉

 

 

장우진 작업의 핵심적인 주제는 기표(記標)의 교란과 비어있음이다. 하나의 기표가 일정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기표의 특수한 연쇄, 즉 특수한 맥락 속에 있어야 한다. 그러한 맥락에 위치하지 못할 때 기표에는 균열이 가고, 의미는 새어나간다.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완전히 이탈할 때 기표는 비어 있게 되고, 약속된 코드가 제거된 시각기호가 된다.

 

장우진의 작업은 ‘전각(篆刻)’, ‘석비(石碑)’, ‘현판(懸板)’이라는 기표의 맥락을 상당부분 따르는 어떠한 대상을 제작하는 것이지 그러한 맥락에 합치하는 전각, 석비, 현판을 제작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작업은 이처럼 전승(傳承)을 위해 특정한 맥락 속에 인위적으로 가둬 놓은 기표를 자유롭게 이탈시켜 ‘전각’, ‘석비’, ‘현판’이라는 기표의 본질적인 비어있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폐쇄된 맥락에서 벗어난 그러한 기표를 코드 없는 시각기호로서 나타낸다.

 

장우진이 기표의 비어있음을 드러내는 방법은 흥미롭다. 그는 변종(變種)을 교배하듯, 현실적인 쓸모를 잃었기 때문에 ‘전시할 가치’를 얻은 사물의 기표에, 현실적인 쓸모를 지녔기 때문에 ’전시할 가치’를 얻지 못한 사물의 기표를 중첩시킨다. 그 효과는 특이하다. 무엇보다 여기엔 과거와 현재의 어설픈 결합이나 절충이 없다.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이 오늘날의 일상에도 접목될 수 있다든지, 오늘날의 일상 사물이 전통의 맥락 속에 미(美)를 가질 수 있다든지 같은 진부한 주장은 배격된다.

 

 

90cm 벽을 가진 세면장

 

 

장우진의 작업은 과거와 현재의 기표를 중첩시킴으로써, 하나의 기표를 특수한 맥락 속에 폐쇄시키는 조건이 유지되지 못하게 교란시킨다. 이번 전시에서 과거의 기표인 ‘전각’, ‘석비’, ‘현판’에 현재의 기표인 ‘건축 도면’이 겹쳐진다. 여기서 ‘전각’, ‘석비’, ‘현판’은 전승(傳承)된 기법에 의해 충실히 구현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전각, 석비, 현판에 가까운 무엇이지, 전각, 석비, 현판이 아니다. 현재의 기표인 ‘건축 도면’이 침입하여 그들이 정해진 맥락 속에 안착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장우진은 기표의 고정된 의미를 비워낼 수 있는 약한 고리를 노련하게 타격한다. 그는 디지털 시대의 건축 도면을 돌과 나무에 공들여 새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작업을 아날로그적인 향수와 무관한 무엇으로 이끌어간다. 그의 손길에 의해 건축 도면이라는 현재의 기표는 예스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낯설어진다. 이 때 부동산 중개거래소에서 흔하게 접하게 되는 일상의 이미지는 나스카(Nazca) 평원의 지상화(地上畵)와 같이 의미를 알 수 없는 시각기호로 이행한다.

 

 

3개의 뿔을 가진 치미

 

 

장우진의 작업은 박물관의 희귀한 유물처럼 보이고 일상의 범용한 사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박물관의 유물도 아니고 일상의 사물도 아닌 무엇을 산출해 낸다. ‘~처럼’ 보이는 친숙한 기표가 중첩되면서 도출하는 ‘~도 아니고 ~도 아닌’ 시각기호는 그 무엇에 새겨진 모든 기표들의 의미를 생경하게 비워낸다. 기존의 맥락에서 이탈하여 공백 속에 놓이게 된 기호는 장우진의 손길에 의해 ‘코드 없는’ 물체로서 생성된다. 어떠한 기표로도 붙잡을 수 없는 그 물체들은 용도가 상실된 용도, 의미가 상실된 의미를 지니는 규정할 수 없는 ‘그 무엇’이 된다.

 

마치 전통(傳統)적인 기표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것 같은 외양으로 다가오는 장우진의 전시는 아이러니하게도 전통적인 기표의 근원적인 비어 있음을 특이하게 유희(遊戲)한다. 그래서 <beneath the lines>이라는 표제는 이 전시를 효과적으로 집약하는 물음이 된다. 기표를 그리는 선(the lines) 아래(beneath)엔 무엇이 있을까? 그저 일체의 의미가 해체되어 가라앉는 무(無)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규정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생성되는 빈 터가 있는 것일까.

 

이러한 물음에서 장우진의 작업은 기호의 사멸과 생성을 사유하는 현대의 예술 담론과 예민하게 접속한다.

 

 

방 나누기

 

 

선물용 두상

 

 

10월의 드로잉 탁본

 

 

건축용전각

 

 

건축용전각

 

 

건축용전각-기와

 

 

 

 

table

 

 

전시전경

 

 

 

 

 
 

장우진 | JANG WOO JIN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졸업

 

2009 메이준 갤러리 | 2009 Transfer from studio 믿음 갤러리 | 2017 Beneath the Lines 플라스크 갤러리 | 2022 제 1회 낙우조각회 올해의작가 장우진 금보성아트센터

 

E-mail | manzoni@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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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20414-장우진 초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