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훈 展

 

반복되는 문장으로 주름을 연습했다

 

 

 

갤러리 조선

 

2022. 3. 22(화) ▶ 2022. 5. 6(금)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 5길 64 | T.02-723-7133

 

www.gallerychosun.com

 

 

Dreamer_acrylic and oil on canvas_180x145cm_2014

 

 

이 종이를 손에 넣기까지 당신은 두 개의 문을 통과해야 했다. 두 개의 문은 외부에서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열어젖힌 문 하나와, 계단 바로 앞에 선 또 다른 문을 말한다. 그리고 이 종이를 받아 든 당신 앞에는 다른 문 하나가 더 등장한다. 거듭 등장하는 문은 예상 가능하던 공간을 한 번 더 비틀어 보이고, 시간 역시 기대하던 것과 다르게 흐르도록 한다.

안상훈의 회화는 언어의 세계가 아니라, 이미지 세계에 속한다. 그의 그림 앞에 머물러 본 사람이라면, (누군가는 그것이야말로 완성이라고 여길) 형상은 지우고 캔버스를 덮은 색들이 엉키는 가운데 난데없이 검은색 획이나 보라색 면이 등장하는 이미지의 운동을 경험했을 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만드는 회화적 요소들은 다음을 예견하게 하거나 맺음을 시사하지 못하는 대신, 계속해서 이어지는 상상과 시선을 생성한다. 때문에 캔버스를 규정하고 지시하는 날짜나 문장(제목)이 있을지라도, 보는 이는 언어 세계에 속하는 분명하고 분절적인 의미(connotation)를 획득하지 못한다. 회화가 이미지 세계에 속한다는 말이 동어반복이 아닌 이유는, 회화가 언어 세계에 속하는 방식으로도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상훈은 의식적으로 주어진 회화가 언어 세계에 속할 (불)가능성을 실험하면서도, 이미지 세계로 향하기를 택한다.

전시의 제목, 작품 제작 시기를 가리키는 숫자, 더불어 이 서문의 문장들은 결코 작품의 시작점이 아니었거니와 종착점이 될 수 없다. 캔버스를 가로지르는 선, 뭉개 뭉개 피어오르는 형상, 벽을 타고 나타난 제스처들, 밝은 노란빛 사이로 뽀얗게 드러나는 맨 캔버스, 겹겹이 덧입혀진 질료의 층, 붓의 갈라진 결을 따라 만들어진 흔적, 하나의 색과 또 다른 색, 넓게 펼쳐진 색면과 그 위의 날카로운 선…… 그의 회화를 따라가는 시선이 발견하는 것은, 의미를 떠올릴 수 없음, 의미가 사라지는 상태, 적어도 둘 이상의 의미 사이에서 진동하고 있는 상태일 따름이다. 그러한 상태는 추상적이기 보다 구체적인 실체로 당신의 눈 앞에 놓인다. 그 구체성 앞에 붙들림으로써 당신은 그림 앞에 좀 더 오래 머무르게 될 것이다. 펼쳐진 이미지의 세계에서, 시선의 궤적과 시간은 회화를 다시 구성한다.

 

글.허호정

 

 

blue window_130x100cm_mixed media on canvas_2014

 

 

잔잔하고 시원한 바람이 좋았다(I liked the calm and cool wind)_acrylic and oil on linen_227.3x181.8cm_2022

 

 

Summer Vacation_oil on linen_50x50cm_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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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20322-안상훈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