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넘는 아이들 展
고경호, 권순영, 김수정, 나광호, 노경화, 민진영, 성희진, 신희수, 왕선정, 정문경
서울대학교미술관
2022. 1. 13(목) ▶ 2022. 3. 13(일)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 | T.02-880-9504
www.snumoa.org
고경호作_들러리 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19
‘밤을 넘는 아이들’과 마주하기
처음 우리는 폭력, 특히 은폐된 폭력과 그것의 다양한 기제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논의를 거듭한 끝에 은폐기제로서 ‘가정’으로 견해가 모아졌습니다. 은폐기제로서 그것이 특히 이 사회에서 완강하게 작동하고, 아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폭력의 희생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처음부터 아동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작고 방어력 제로인 약자가 폭력의 주된 대상이 된다는 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 은폐된, 대체로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특성이야말로 폭력의 실체이자 이 사회가 스스로 축적해 온 모순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압축 성장, 뿌리깊은 가부장제, 내재화된 경쟁사회, 타자에 대한 혐오…. 그리고 언젠가 길버트 채스터턴(Gilbert Keith Chesterton)이 말했듯 가정이 “규칙과 과제로 가득한 세상에서 마지막 남은 야생의 장소”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약자에게 관대한 야생은 없고, 다른 야생들처럼 이 야생도 약자와 희생자를 필요로 하고, 그 대상은 거의 예외 없이 여성과 아동입니다.
우리는
고통당하는 약자들에서 불명예스러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야만 합니다. 정말이지 그래야만 합니다. 그렇더라도 이 전시의 목적이 가정 내 폭력의 구조를 이론화하거나 계몽으로 나아가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예술의 우선적인 임무가 아닙니다. 예술은 깊이 경험한 자, 사건의 내부에 머물렀던 사람의 고백, 진정성을 지닌 영혼으로부터 듣고, 감지하고, 교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선언이 아니라 증언이, 주장이 아니라 고백이 더 명예로운 것으로 취급됩니다. 교감은 가장 오래되고 깊은 지적 수단입니다. 미술관은 철학 강의실이나
사회문제연구소 이상입니다. 여기 배치되어 있는 것들은 통상적인 학습의 대상과는 다른 깨달음의 고양된 도구들입니다. 그것들을 통해 자신을 만나는 것이 허용되는 다면체 거울들입니다.
서울대학교미술관장 심상용
권순영作_가족 장지에 먹_89.4×145.5cm_2010
나광호作_Postman Joseph Roulin 캔버스에 유채_72.7×91cm_2021
노경화作_땅 아이 캔버스에 유채_53×45.5cm_2021
민진영作_Between roof and roof 천, 아크릴, 움직이는 LED 조명_25×110×25cm_2012
정문경作_Fort 헌 옷, 혼합재료_270×300×300cm_2013
왕선정作_BUT EVE 캔버스에 유채_27×45cm_2021
신희수作_네버랜드-경계의 아이들 피그먼트 프린트_100×100cm_2020_ed. 1 of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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