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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전月田과 1세대 한국화가들
월전 장우성 · ㅁㅁㅁ · ㅁㅁㅁ · ㅁㅁㅁ · ㅁㅁㅁ · ㅁㅁㅁ · ㅁㅁㅁ · ㅁㅁㅁ · ㅁㅁㅁ ·ㅁ 권영우 · 장운상 · 박노수 · 전영화 · 조평휘 · 이열모 · 이인실 · 이영찬 · 송영방 · 심재영 정탁영 · 오태학 · 이규선 · 이종상 · 임송희 · 하태진 · 부현일 · 홍석창 · 이석구 · 주민숙
2022. 1. 11(화) ▶ 2022. 3. 1(화)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83 | T.02-732-3777
월전月田과 1세대 한국화가들
월전 장우성(月田 張遇聖, 1912-2005)은 한국화단의 전통과 현대를 잇는 가교 같은 역할을 했던 인물로, 예술가로서 뿐만 아니라 교육자로서도 탁월한 역량을 보이며 후학들을 이끌었다. 1945년 일제의 강점에서 해방된 이후 1946년 9월 서울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가 창설되어 제1회 학생을 뽑았다. 초기 동양화과는 동양화론과 고서화에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었던 근원 김용준(近園 金瑢俊, 1904-1967)이 내정되어 있었고, 그의 소개로 월전 장우성이 교수진에 포함되었다. 당시 근원과 월전은 일본색이 농후했던 미술계를 타개하고자 하였으니 무엇보다 새로운 방향 설정이 필요했다. 월전은 우리들의 전통을 어떻게 살리고 이어갈까 하는 현안 문제를 놓고 근원과 틈만 나면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전통을 되살리는데 목표를 두고 새로운 시대사조를 수용하려는데 신경을 썼으며,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전통 문인화에 기반을 둔 한국화를 교육하는데 주력했다. 이 시기 월전의 작품을 보면 선을 위주로 대상을 간결하게 묘사하고 시원한 여백의 미를 주어 주제를 강조했으며, 맑고 산뜻한 채색을 사용하여 조형미를 더했다.
권영우 · 전영화 · 심재영 · 이규선 · 이종상 · 홍석창 · 이석구
1. 권영우 作_2004-1_73x61cm_캔버스에 화선지 꼴라주_2004 2. 전영화 作_선풍鮮風_90x90cm_종이에 수묵채색_1992 3. 심재영 作_순례자_돌아오다_75x105cm_종이에 채색_2007 4. 이규선 作_무제_91x114cm_종이에 수묵채색_연도미상
1. 이종상 作_원형상原形象 94129_58x58cm_동유화銅釉畵_1999 2. 홍석창 作_work_49x61cm_종이에 수묵채색_2007 3. 이석구 作_생성13-7_112x90cm_종이에 수묵채색_2013
이후 1956년 서울대학교 개교 10주년을 맞아 월전 장우성과 심산 노수현(心汕 盧壽鉉, 1899-1978)이 서울대학교 강당 무대의 좌우측을 장식하게 되었다. 좌측에는 심산이 산수화를 그렸고, 우측에는 월전이 인물화를 그렸다. 월전이 제작한 <청년도靑年圖>는 토론을 하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을 그린 것인데, 등을 돌리고 있는 남성을 중심으로 인물들이 그려져 생생한 교정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한, 한복과 양복을 입은 학생이 모두 그려져 당시 변화하는 젊은이들의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이 작품을 제작할 때는 월전이 서울대학교에 근속한지 10주년 되는 해였기 때문에 더욱 의미 깊은 작품으로 남았다. 1961년을 끝으로 월전은 15년간 몸 담았던 서울대학교 교수직을 사임하게 되는데, 당시 경복궁미술관에서 열린 제10회 「국전」에 출품한 <취우驟雨>를 통해 적막했던 월전의 심경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박노수 · 조평휘 · 이열모 · 이인실 · 이영찬 · 정탁영 · 임송희 · 하태진 · 부현일
1. 박노수 作_고사_63x63cm_옥판선지에 수묵채색_2007 2. 이열모 作_두타산 용추_46x68cm_종이에 수묵채색_2006 3. 조평휘 作_대둔산大芚山_160x455cm_한지에 수묵채색_2009
1. 이인실 作_제주해안_63x102cm_종이에 수묵채색_2003 2. 이영찬 作_산정山情_66x66cm_종이에 수묵채색_2007 2. 임송희 作_우후3 雨後_68x136cm_한지에 수묵채색_2013
1. 정탁영 作_어은도漁隱圖_27x55cm_종이에 수묵채색_2007 2. 하태진 作_비금도_70x137cm_종이에 수묵채색_2002 3. 부현일 作_일출봉에서_45.5x53cm_종이에 수묵채색_2007
서울대학교 교수직을 사임한 후 월전의 행보는 해외로 향했다. 1965년 미국 워싱턴에 동양예술학교를 설립하여 서울대학교 제자였던 창운 이열모(蒼暈 李烈模, 1933-2016)와 함께 이끌어나갔다. 월전이 추구했던 선비정신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문인화의 구축은 미국에서 귀국한 이후에 더욱 심화되었으며, 사의성 짙은 문인화를 현대적인 감성에 맞게 변용시킨 한국적 모더니즘 창출하게 된다. 창운은 월전에 대해 “이와 같은 선생의 작품이 효시가 되어 서울대미대 학생들은 새로운 동양화를 개척하는데 전위적 위치에 서게 되었고, 진보적 사고에다 발군의 역량까지 발휘하여 소위 말하는 서울대 화풍을 이루게 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서울대 화풍이란 중봉선묘의 수묵담채를 바탕으로 한 형체의 단순화와 직선화, 그리고 여백의 극대화이고 무엇보다도 이런 조형 양식의 내면에서 묻어나오는 선비적 성정의 표현을 이름이다.”라고 하였으며, 이는 서울대학교에서 월전의 영향이 얼마나 지대했던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을 가기 전 월전은 홍익대학교에 1년 남짓 출강을 했었다. 당시 홍대 미술대학장이었던 수화 김환기(樹話 金煥基, 1913-1974)가 직접 찾아와 부탁을 하였기 때문에 고심 끝에 출강을 결정하였다. 미국에서 돌아와 홍익대학교와 재차 인연을 맺었고, 1968년부터 전임이 되었다가 1972년 미술학부장까지 맡으며 1974년까지 후학을 양성했다. 조평휘(趙平彙, 1932-), 오태학(吳泰鶴, 1938-), 하태진(河泰瑨, 1938-), 홍석창(洪石蒼, 1941-) 등 한국화단의 중진으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수묵에 대한 새로운 실험의 길을 열어주었다.
송영방 · 오태학 · 장운상 · 주민숙
1. 송영방 作_은사월전선생소영 恩師月田先生小影_41x30.5cm_종이에 수묵_연도미상 2. 장운상 作_미인도_68x137cm_종이에 수묵채색_연도미상 3. 오태학 作_마이산_39x35cm_종이에 수묵채색_1997 4. 주민숙 作_그리움_76x104cm_종이에 수묵채색_1998
근대적 미술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을 무렵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교육자의 길을 걸었던 월전 장우성은 해방 1세대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문인화의 정신과 수묵의 현대적 변용에 관심을 갖게 하였다. 그들은 각자만의 독특한 필법으로 스승과는 또 다른 화풍을 구사하며 한국화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확장시켰다. 이외에도 월전은 동방예술연구회 설립, 월전미 상 제정, 한벽문총 발간 등 한국화단의 후학을 위해 적극적인 지원을 해나갔다. 한 작가가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정립하는 동시에 교육자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가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90세가 넘어서도 붓을 놓지 않았던 월전의 열정이 후학들에게까지 전해져 오늘날까지 한국화단 발전의 원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오윤형 | 이천시립월전미술관 학예연구사
월전 장우성 作_단군일백이십대손檀祖一百二十代孫之像_67x45cm_종이에 수묵채색_2000_월전미술문화재단 (좌) 월전 장우성 作_면벽面壁_65x44.5cm_종이에 수묵채색_1998 (중) 월전 장우성 作_오원대취도吾園大醉圖_97x76cm_종이에 수묵채색_1994 (우)
1. 월전 장우성 作_백매白梅_93x160cm_종이에 수묵_연도미상 2. 월전 장우성 作_광란시대狂亂時代_41x68.5cm_종이에 수묵_2001 3. 월전 장우성 作_백월서운려白月栖雲廬_43.5x135cm_종이에 수묵_2003 4. 월전 장우성 作_무극無極_59x64cm_종이에 수묵_연도미상 5. 월전 장우성 作_필묵생애筆墨生涯_183x34cm_종이에 수묵_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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