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주 展
불멸낭만_ 먼지로 쓴 시
학고재 아트센터
2021. 12. 22(수) ▶ 2021. 12. 26(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48-4 | T.02-720-1524
https://artcenter.hakgojae.com
내가 그리고자 했던 낭만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담백한 맛이 난다. 과거의 작업들에서 느낄 수 있었던 무게나 열기가 증발해버린 듯한 느낌이다. 물 위로 부는 바람에서, 살며시 흔들리는 버드나무 잎에서, 별빛이 스러지며 내는 청각적 심상에서 내가 정의한 낭만이 새롭게 설명되고 있다. 그러나 이 낭만은 결코 감상적이지는 않다. 나는 우주적 관점과 영원의 시선에서 찰나에 스친 인생의 유한성을 낭만과 먼지로 해석하였다.
먼지로 쓴 ‘불멸낭만’이란 시는 먼지와 불멸이란 단어가 충돌하면서 기묘한 기분을 자아낸다. 불멸과 영원의 무게를 먼지처럼 느끼는 것은 유한한 인간이 자신의 전부로 겪는 시간의 총체가 결국 덧없는 찰나에 지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낭만적이고자 하는 이유는 영원을 꿈꾸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원과 불멸, 완전이라는 단어는 유한한 존재가 가늠할 수 없는 미지의 개념이다. 나는 네 글자의 조합이 창출하는 뜨거운 열망과 완벽한 실패의 직조가 인간의 삶을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에 이따금씩 찾아오는 낭만적인 순간들이 한 숨에 실려 사라지듯, 우리의 존재 또한 “광막한 우주 변두리 창백한 푸른별”에 잠시 있다 사라지는 먼지 한 올에 불과하듯, 우주와 영원의 시선이 바라본 각자의 인생은 불멸이 경험한 낭만의 순간으로 남는다.
나는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 그려진 빈 집을 차용하여 종이집으로 각색했다. 아무것도 칠하지 않은 빈 종이집으로 한지의 피부를 고스란히 드러내며 인간존재의 덧없음과 가벼움, 고독함과 쓸쓸함을 말하려 했다. 끊임없이 변하는 물의 움직임은 계속해서 변화하는 세계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비유한다. 물 위를 떠다니는 종이집의 가벼움과 종이집이 젖기까지의 짧고 위태로운 시간을 통해 인생의 유한성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종이집과 일맥하는 방식으로 표현한 빈 땅은 내 자신이 처한 모호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태도로 읽힌다. 그러나 그 모호함 속에 서있는 화자는 체념과 방랑 없이 매일매일 비질을 하고 석등에 불을 키며 자신의 근원을 기억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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