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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야투자연미술국제레지던스프로그램 성과보고전
그린스펙트럼 II
강내희 · 고요한 · 고재선 · 김혜식 · 안치수 · 이정은 · 임혜옥 · 전일국
연미산자연미술공원
2021. 11. 6(토) ▶ 2021. 11. 30(화) Opening 2021. 11. 6(토) pm 3:30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연미산고개길 98 | T.041-853-8828
2021 야투자연미술국제레지던스프로그램 『녹색 스펙트럼II』에 대한 소고
김홍정 소설가
1. 레지던스 프로그램 참관자의 즐거움과 과제
2020년에 이어 한국자연미술협의회가 주관하는 2021 야투자연미술국제레지던스프로그램에 참관하여 작가들과 대담하고 소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회화적 요소와 달리 자연 미술 영역을 넘나드는 다양한 조형물 설치와 사진 작업의 결과물들이 전시되었다. 자연 미술의 확장성을 높이기 위한 시도라고 할 수 있고, 장르의 구분을 뛰어넘거나 혼종 과정을 조형화한다는 의미 있는 행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서정과 서사를 통해 자연의 형상을 그려내는 예술적 성과라는 기대를 할 수 있겠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필자는 우연히 두 컷의 그림을 떠올렸다. 그 하나는 연기(세종시) 동면 출신의 화가 장욱진을 떠올렸다. 그가 남긴 작품 중 필자는 <자화상>(1951년)에 집착한다. 엽서 한 장 크기 종이에 채색한 그림인데 구름이 떠 있는 하늘과 나무 한두 그루가 있는 노란 들판, 그 들판을 경사진 가로와 세로로 길게 꺾어 이어진 붉은 길, 댄디풍의 신사, 그 뒤를 따르는 강아지, 그리고 까치 혹은 제비들이 이어져 날고 있다. 아주 단순한 구조와 그득한 풍경이 인상적인 그림이다. 다른 하나는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에서 본 <까마귀가 나는 밀밭>(1890)인데, 구름이 보이는 검푸른 하늘에 닿은 밀밭을 가로 세로로 이어지는 흙길과 그 위를 나는 까마귀들의 풍경이다. 이 풍경 속에 인물은 보이질 않으나 밀밭 사이의 길에는 숱한 움직임의 흔적이 직선과 곡선이 혼재되어 표현되어 있으니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인물이 없을 것이라 단정할 수 없다. 이 두 작품 속에서 필자는 색상 대비에서 느끼는 선명함과 역동성을 느꼈지만 다른 한편 지독한 고독이 함의되어 있음을 알고 놀라곤 한다. 시공을 뛰어넘는 두 작품에서 공감하는 근원적 고독은 그들의 다른 작품 거목의 존재와 역동적인 생명의 움직임을 결합한 장욱진의 <거목>(1954)과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1889)에도 드러나 있다. 그 고독은 자연 속에 존재하는 인간에 대한 인식이다. 큰 자연과 압축되고 줄어든 인간의 일상(두 그림에서 낮은 건물들로 표현된 모습)을 대비시킨 두 화가의 고민이 결국 풍경 속에 잠긴 자연의 위대함에 대한 경외가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자연과 인간이 대비되는 실존적 가치를 찾으려는 인식의 바탕은 무엇일까 되새길 필요가 있다. 엄연했던 자연 그리고 인간이었던 자연론의 실체가 어느 순간 인간과 자연으로 그 우선순위를 뒤바꾸고 인성과 물성으로 구분하여 인식하게 된 바탕은 무엇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의문은 그동안 금강 유역에서 오래동안 논쟁해 온 인물성동론(낙론)과 인물성이론(호론)으로 나뉜 성리학적 접근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라는 것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새삼 인성(인간)과 물성(자연)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2. 물성物性을 어떻게 볼 것인가
사서의 하나인 『대학大學』은 격물格物과 치지致知를 근본으로 삼아 성의誠意와 정심正心으로 수신修身에 이르고 제가齊家와 치국治國을 이루어 평천하平天下에 이른다고 기술한다. 주희 선생은 온갖 물상들이 사는 시간과 공간에서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도 그 나름의 이치를 갖추고 있으며 그 이치를 따져 살펴봐야 비로소 제대로 아는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물성을 따지는 과정을 격물이라 말하고 물성을 아는 것을 치지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알게 되는 물성은 그 스스로 이치를 지닌 자연이다. 자연은 그 스스로 이치를 지녀 움직임을 일으키고 서로 작용하여 생명현상을 이룬다. 해월 최시형은 살아 움직이며 작용하는 것은 그것이 물성이든 인성이든 다를 것이 없다고 하여 인성과 물성이 하나임을 경물론敬物論으로 간파한 바 있다. 간혹 경물론을 일종의 숭배론으로 보고 영성을 부여한 원시신앙으로 여겨 마치 접신이나 접령의 애니미즘이나 토템의 하나로 보는 이도 있다. 그러나 실제 경물론은 자연에서 비롯되는 현상에 영성을 부여하는 한 방식일 뿐이다. 물론 이러한 영성적 접근 또한 자재연원自在淵源을 밝혀내는 예술 분야에서 작가 나름의 접근 방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곳과는 달리 금강 유역의 야투자연미술은 서로 작용하는 생명현상의 근원을 찾아 미술작품으로 펼쳐내는 예술활동이다. 이런 활동을 금강 유역에서 심화된 인성과 물성의 관계를 찾는 탐색의 또 다른 모습이라 생각한다. 우연이라고 치부하기는 너무도 놀라운 자연미술 활동은 물성의 근원을 궁구하고 작동의 원리를 알고자 하는 성리학적 접근의 한 방편으로 여길 수도 있다. 더구나 이런 일련의 탐미적 활동이 금강 유역에서 비롯되었으나 점차 그 범주를 넓혀 대륙을 넘나들고 전 지구적 미술활동의 한 지평을 이루고 있으니 참으로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019년 여름, 로키산맥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며 알래스카를 여행한 적이 있다. 북아메리카의 원주민 상당수는 자신들의 언어가 사라지는 것을 우려하고 영어로 바뀐 지명을 원주민들의 언어로 복원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언어와 퉁구스, 몽골, 한국, 일본 등지의 언어와 비교 연구하여 유사성에서 자신들의 근원을 찾아 원주민 문화박물관에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그런데 그 원주민들의 언어 못지않게 주목하는 것은 원주민들의 생활양식을 정리한 문화 도구들이다. 물론 이러한 생활문화 도구들은 사진 자료들이나 그림으로 그려 정리한 것들인데, 특히 원주민들이 남긴 벽화들은 그 유래를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그것은 무엇보다 물성을 중시하는 회화적 대물림이라 할 것이고 이는 집단무의식의 발로라고 봐야 한다. 유구한 역사성을 지닌 집단무의식은 보이는 물성에서 기인하여 보이지 않는 영성으로 전이되고 새로운 실체로 자리 잡고 유기체적인 구조물로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이 과정은 미술의 한 방법론으로 발상되어 변이의 과정을 겪고 있는 자연미술에서 체계화되어 보완 정리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코로나19로 비롯된 팬데믹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들이 불확실성을 견딜 수 있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이런 의구심은 유사 이래 끊임없이 탐색해 온 자연의 실체에 대한 선명한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한 현대 과학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것이다. 결국 과학으로 입증하려던 연구과제는 더 이상 가시화된 실체로 정리될 수 없는 근원적 문제라는 것을 되새기게 되었다. 이러한 위난의 시기에 야투자연미술 참여 작가들이 자연의 근원적 현상을 치열하게 탐색하여 엄연히 존재하는 미확인 물상을 가시화하여 보여주었다. 놀라운 일이나 이러한 시도는 가히 과학의 한계를 딛고 근원을 찾는 예술 활동이라 할 것이다. 2021년 야투자연미술레지던스프로그램에 참여한 작가들이 보여준 작품들은 현상에 안주하지 않고 극복하려는 반성적 활동의 실체다. 이는 원효가 일찍이 화쟁和諍의 양상으로 제시한 비연비불연非然非不然에 다르지 않다. '그렇지 않고, 그렇지 않은 것도 아닌' 부정과 부정의 부정이란 변증의 실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3. 검증의 실체로서 변증의 실상 보여주기
야투자연미술레지던스 프로그램이 펼쳐지는 주 공간은 연미산 자연미술 공원이다. 연미산 자연미술 공원에 설치된 작품들은 실상을 되돌아보고 팬데믹 상황을 견딜 수 있는 작품에 의미를 부여하였다. 또한 연미산을 벗어나 금강 유역으로 그 범주를 확대하여 새들목과 죽당리 인근에서 전개되는 자연 현상의 예기치 못한 변이를 파고들어 자연이 보여주는 실상과 드러내지 않는 의미를 구체화했다.
강내희와 고재선은 공간에 설정된 의미를 부여하여 보이는 현실과 보이지 않는 실체를 동시에 드러내어 공존하는 삶과 그 안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삶의 단면을 그려냈다. 안치수는 화석어류 실러캔스를 재현하여 시공을 초월한 가능세계의 실체를 제시했고, 임혜옥은 사진 작업을 통해 연미산과 금강 고마나루에 전승되는 설화를 자연변이의 현실 모습으로 그려냈다. 전일국은 흔적으로 남은 소나무 등걸에 설치 작업으로 보여지는 것과 비춰지는 것을 대비하여 인간의 내면을 완곡하게 드러내려 했다. 이정은의 작업은 생물학적 현상과 화학적 현상이 결합된 가설을 세우고 실험적 방식을 통해 자연 현상이 소리치는 아우성을 전달한다. 물론 그 아우성을 현실음으로 듣기에는 제한적이지만 실상을 부정할 수 없고, 기포의 움직임 등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죽당리 억새 숲으로 나간 고요한은 생명현상이 무성한 자연 공간에 가해진 인간의 가학적 억압과 파괴를 딛고 일어서는 자연성을 유희적 퍼포먼스로 보여준다. 김혜식의 가시박은 환유적 시각으로 찾아낸 새로운 발견이다. 가시박의 실체는 상식을 벗어나 변이과정으로 증식하고 번성하여 기존의 자연 질서를 교란하고 파괴하는 모습을 드러낸다. 작품으로 제시한 가둔 가시박 표본들은 가시박으로부터 기존의 자연을 지켜내려는 작가의 간절한 소망이다.
작가들의 작업은 궁극적인 낙관성을 유지한다. 이는 보이지 않는 가능성의 세계에 대한 확신으로 비롯된다. 이러한 낙관적 자세는 야투자연미술이 던지는 미래에 대한 소신이다. 굳이 인성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하여 물성의 탐구로 멈춘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야투자연미술의 즐거운 상상이고 경험적 소산이기 때문이다. 새삼 경물론에 담길 수 있는 영성을 기대한다.
강내희 作_초록의 나라로..
고요한 作_억새풀 숲
고재선 作_공존의시간-초대
김혜식 作_가시박
안치수 作_Timeless
이정은 作_Biotope 프로젝트
임혜옥 作_천년의 시간 속으로-연미산에서 고마나루까지
전일국 作_'보는 것'과 '보이는 것'과의 긴장을 풀고 세계와의 소통을 꿈꾸는 거울을 설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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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투자연미술국제레지던스프로그램 한적한 자연 공간에서 작업에 몰두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 야투자연미술국제레지던스프로그램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이 서로의 예술 세계를 접하고 교류하기 위하여 (사)한국자연미술가협회-야투에 의해 2009년부터 운영되고 있다. 본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1981년 이후 지금까지 자연 속에서 작업하고 있는 야투그룹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접할 수 있으며,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작가들이 자연 속에서 새로운 미술적 실험을 해나가는 가운데 서로의 생각을 교류하고 전시하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또한 주민과 함께하는 지역협력사업과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으로 지역사회 교류와 문화예술 활성화에 노력하고 있다. 환경파괴로 인해 생태계가 파괴되고 그로 인한 자연 재해가 극심해지고 있는 이때 야투 레지던스프로그램은 자연과 인간이 상생의 조화를 이루어 낼 수 있는 새로운 자연미술미학을 함께 발전시키는 계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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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메일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은 작가와 필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 vol.20211106-그린스펙트럼 I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