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展
A Wanderer Never Stops On The Road
배윤환, 서희원, 최병진
슈페리어갤러리 제1전시관
2021. 7. 26(월) ▶ 2021. 8. 27(금)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 528, 슈페리어타워 B1 | T.02-2192-3366
배윤환_위덩더듕셩_Oil, acrylic, enamel on canvas_97x145.5cm_2010
배윤환 작가노트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A Wanderer Never Stops On The Road)
과거의 작업이 욕망의 경험을 무조건적으로 쏟아내기에 급급했다면 이번 작업은 그 동안의 작업을 추적하고 관찰하는 일로부터 시작됐다. 왜 이런 작업을 하게 되었을까? 위대한 곤충, 식물학자 파브르가 된 기분으로 나는 그 동안의 작업 하나하나를 다시 관찰했다. 그러자 제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작업의 결과물들이 꼬물꼬물 거리는 개미, 애벌레 같이 느껴졌다. 또는, 머릿속을 분주히 헤집고 다니는 쥐 굴의 쥐들처럼 여겨졌다. 처음에는 여기저기에서 산발적으로 떠오르는 환상의 \'생각 생물\'들을 모조리 잡아 살포하고 없애버린 후 잘 정리된 텃밭에서 새로운 작물을 경작하듯 작업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뇌 주파수는 여전히 여러 가지가 뒤섞인 생각, 그 생각들의 교배, 배설 주문을 내렸다. 여전히 내 생각에는 개미와 애벌레가 우글거렸고 쥐들이 드나들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아무런 제어 없이 작업의 형태로 전이됐다. 한 동안 나는 정리된 텃밭을 가꾸기 위한 시도와 반성을 거듭했다. 그러나 결국, 작업태도를 억지로 고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는 시스템 자체가 그렇게 구성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나에게 정신적 장애가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괴로웠다. 하지만 그동안의 작업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고 그것을 꼭 고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편해졌다. 고쳐나가려 했던 일들이 마음처럼 되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과정 속에서 나는 뒤돌아보기, 관찰하기, 인정하기라는 개인적인 수확을 거둘 수 있었다. 그것은 곧 나의 드로잉에 녹아들었고 나는 관찰일기를 쓰 듯 지금까지의 생각을 그림으로 그려나갔다.
드로잉 작업은 주제에 대해 생각 할 시간을 연장 해 주었고 응고된 집중력을 발휘 할 수 있게 했다. 생각은 여전히 산발적이었지만 드로잉을 통해 미리 들여다본 나의 세계는 채색화 될 때 어느 정도의 제어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이를테면 우글거리는 개미와 애벌레도 조화롭게 지낼 수 있는 세계를 구축하게 된 것이다. 자연스럽게 나의 이미지들은 더 매끄러운 곡선의 시퀀스를 가지게 되었다. 이렇듯 나에게 드로잉이란 앞서 말 한 작업의 태도변화에 의미를 두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드로잉의 의미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여전히 나의 뇌는 나만의 주파수를 통해 생각을 배출해 내라고 주문하고 있다. 내 머릿속 송신탑 위에는 누군가가 작은 글씨로 이렇게 새겨 놓았다. 관찰 하는 척 하지 마시오, 의식하지 마시오, 생각의 언덕에 개미, 쥐, 애벌레, 지렁이는 원래 있는 것이니 억지로 죽이거나 약을 뿌리지 마시오.
서희원_REQ 30_Oil on Linen_130.3x162.2cm_2018
서희원_강냉이 털러 가는 이빨요정_Oil on Linen_140.5x138cm_2017
서희원 작가노트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A Wanderer Never Stops On The Road)
‘웃음과 분노의 심리: 웃음과 분노는 기대를 깨트리는 혼돈스러운 상황에 대한 반응이라는 점에서 마치 동전의 양면 같다.’
Suspicious parade/Suspicious being (수상한 행렬/수상한자들) 는 2013년 경부터 시작된 연작이다. 어떠한 명확한 방향성을 가지고 시작된 것이 아니었으나 무려 8 년이라는 시간을 이어오게 되었다. ‘수상한 행렬’ 은 사실 장례/추모 행렬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 등장인물들은 고의적으로 삶과 죽음의 어느 경계를 걷고 있는 자들처럼 생기가 없게 표현 되었으면 하였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이를 감추기 위한 하나의 위장의 장치로서, 생일파티 혹은 축제와 같은 모습으로 연출을 하였다. (때로는 반대로, 놀이-파티의 모습에 집중하고 싶으나 ‘죽음’ 에 대한 관심/열망이 비집고 들어온다)
연극 무대의 배우들처럼 각자의 캐릭터가 부여된 등장 인물들은 사실 특정인을 지칭하고자 하는 의도가 없는 가상의 인물들이다. 때로는 주변 인물들의 특징을 반영하여 캐릭터를 설정하거나 형태적으로 참고할 만한 피사체가 나 자신 뿐이어서 마치 수 많은 자화상들 같아 보일 수 있으나, 그려진 대상과의 관계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소재들이 무엇을 직접적으로 상징하거나 어떠한 담론을 논의하기 위해 ‘연기’ 하고 있지 않다. 그저 Monkey mind 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의식의 흐름, 그 안에 넘치도록 충만한 불안정/불안함, 불만과 결핍, 그리움 등을 내 방식의 유머로 내 뱉고 싶은 것일 뿐인 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방황하고 있다. 그들은 고통을 노래 하며 마음의 평안을 찾아다니지만 목적지에 어찌해야 다다를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이는 어쩌면 그들이 찾아 헤매는 곳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시간에 존재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최병진_체육합반_oil on canvas_162x130cm_2016
최병진_2인 3각, oil on canvas_145.5x97cm_2019
최병진 작가노트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A Wanderer Never Stops On The Road)
“한동안 강박에 의해 시달리다 보니, 궁금증이 생겼다. 무슨 문제일까? 병원도 다니고 검색도 해보고 책도 읽어보고… 자연스럽게 작품도 그 답을 찾는 하나의 방편이 되었다. 답을 찾는다고 하기 보다는 그냥 추적해 보는 과정에서 나오는 결과물이라고 하는 것이 더욱 어울릴 듯싶다. 머리는 이해하지만 마음이 거부하는 상황이 닥칠 때마다 느껴지는 균열… 마치 메울 수 있으면 메워보라는 듯이 항상 그 자리에서 발목을 잡아채는 구멍… 발목이 삐끗할 정도의 구멍은 간단히 덮거나 조심이 지나가며 감수하겠지만 오싹할 정도의 구덩이가 생기니 한번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스팔트를 모두 걷어낼 엄두는 나지 않고 그냥 달리던 차에서 내려서 팟홀을 관찰하며 만져보기로 했다. 내 구멍에 대한 탐사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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