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llery RuacH 개관전

마음들의 고임 展

 

김광문, 김선형, 김유선, 박문종, 서정태, 심현희, 윤정원, 이갑철

이강일, 이미주, 이진경, 임수식, 임영숙 , 한만영, 홍인숙

 

 

 

Gallery RuacH 1관, 2관

갤러리르와흐

 

2021. 6. 4(금) ▶ 2021. 7. 30(금)

Gallery RuacH 1관 | 서울특별시 용산구 후암동 380

Gallery RuacH 2관 | 서울특별시 용산구 후암동 415-42

 

https://ruach.kr

 

 

조선 민화는 이미지와 문자의 주술성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가시화한다. 그것은 이미지의 힘을 빌려 속악하고 궁핍한 현실을 밀고 나가려는 의지이자 소망이다. 세상살이의 고단함과 현실의 부재와 결핍을 꿈과 소망으로 부풀어 채우고 이를 이미지를 통해 구현하고자 했다. 아니 환상적 이미지가 그것을 대리해준다고 믿고 스스로를 위무한다. 그러니 민화에는 치유랄까, 위안과 배려의 간절한 마음이 가득 고이고 짙게 가라앉아있다. 그래서 민화에는 죽음을 이기고 삶이 평안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인간의 육체가 지닌 한계가 극복되기를 염원하는 마음들이 무성하다. 모든 이미지는 그러한 의미를 담은 상징으로 극진하게 기술되어 있다. 그 상징들을 탑처럼 차곡차곡 쌓았고 한 그릇 밥처럼 수북이 담겨 있다. 온갖 정성들을 고이고 고였고 받치고 받쳤다. 그 마음이 하늘에 가닿기를 염원하기에 올리고 올렸다. 산자들의 욕망은 위를 향하고 죽은 이의 음덕은 아래를 향했다. 이 시선이 민화의 기본 구도를 만든다. 소망하는 것들이 탑처럼 고이고 생사의 시선들이 위, 아래를 지배하며 기원을 담은 온갖 상징들이 중첩되고 접속되면서 또 다른 생성적인 존재로 탈바꿈한다. 한편 좁고 긴 수직성으로 올라가는 도상들의 전개는 병풍구조라는 틀 안에서의 운용과 맞닿아있기도 하다. 민화는 사람들이 거주 공간, 작고 낮은 우리네 한옥이나 초가집의 방안에 놓이기에 그 높이, 넓이에 맞춤으로 들어가 가설되었다. 일시적으로 펼쳤다 접어두기를 반복하면서 새삼 그림의 환영들은 출몰하고 사라진다. 보였다 지워지기를 반복한다. 이처럼 병풍은 가변적이라 붙박이로 방안을 점유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 일상적 공간을 차원이 다른 세계로 비약시키고 새로운 공간으로 환치하는가 하면 그림 보는 이를 그림 안으로 불러들여 그 그림의 주인으로 앉힌다. 병풍을 뒤로 하면 그의 등 저편으로 실제 자연계가 번성하고 약동한다. 이 황홀한 장면을 전적으로 독대시킨다. 또한 병풍은 현실계의 벽으로 다가가 이내 그것을 무화시키고 자연계의 어느 한 공간을 펼쳐낸다. 거의 초현실적인 자리이동과 변신이 꿈처럼 이루어진다. 현실과 비현실, 생과 사, 이미지와 환상의 경계가 수시로 무너지고 넘나들기를 반복한다. 정해진 도상의 약속은 존재하지만 그것은 절대적 규범의 자리를 차지하지 않고 응용과 변형을 기꺼이 수용하면서 그리는 이와 보는 이의 넉넉한 마음과 이해에 따라 허용 되는 느슨한 형식 안에서 자유롭게 요동친다. 또한 그림 그리는 이도 솜씨 것 매만지고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는 자발성과 융통성이 들락거릴 수 있으며 보는 이도 보고 이해하는데 불편이 없는 상황에서 기꺼이 수용하는 관용성이 흘러 다니는 상황에서 민화는 출현한다. 본래 민화는 실용적인 차원에서의 이미지이자 부적이었기에, 일종의 읽는 그림/책 그림이었기에 애초에 고급한 예술이어야 하는 부담을 지워나갔고 그런 틀을 의식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화원이나 직업화가가 그리지 않아도 되었고 손재주가 있는 이라면 응당 감당할 수 있는 수준들로 누수 되었어도 무방했으리라. 그런데 이런 무방함이 개별성으로 넘쳐나는 민화가들을, 민화그림을 결과적으로 만든 힘이었다고 본다.

 

전통시대 이미지들이 모두 특정한 텍스트에 기생하는 문학적 그림이듯 민화 역시 이야기 그림이다. 한국의 신화와 전설, 유·불·선의 경전에 기반 한 여러 의미들이 겹겹이 누벼져 있다. 그래서 민화는 읽는 그림이고 모종의 서사적 흐름을 한 화면 안에서 펼쳐낸다. 이야 기는 일련의 상징들을 통해 전개된다. 이 상징들은 그림이자 이야기이고 동시에 모종의 주술적 힘을 발산하는 부적 같은 그림이다. 따라서 그 도상들, 상징이 어떤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모든 전통시대의 이미지들은 모두 문학적 기능을 한다. 하지 만 그 상징만 강조하다보면, 민화도 궁극적으로 하나의 그림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망각하거나 외면하게 된다. 뛰어난 민화는 그것 자체로 너무나 매력적인 회화이기에 그렇다. 이미지 자체가 발산하는 힘과 기운에서 놀랍고 좋은 민화는 그림 자체로 돌올하지 그 상징으로 인해 우뚝 솟은 것은 아니다. 민화는 우리 전통 회화인 불화, 산수화, 초상화 등과는 다른 차 원에서 그림의 맛과 조형적인 매력을 안긴다. 앞의 그림들과는 다소 이질적이고 불가사의한 미감, 천진하고 소박하며 더없이 어눌하면서도 놀라운 조형감각을 이상하게 전달하는 기운 이 좋은 민화에는 자리하고 있다. 그 안에는 구도나 형태의 독창적인 파악, 지극히 대담하고 무심하게 그은 선과 색채 처리에서 자유분방함과 높은 회화성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여전히 이어져 동시대 한국 현대미술에도 크고 넓은 흔적을 굵게 깊게 새기고 있다.

갤러리르와흐 1. 2 두 공간에서 열리는 이번 개관 전시는 조선 민화에 기반 한 조형적 에너지와 방법론을 응용한 동시대 한국 작가들의 작업이다. 앞서 언급한 조선민화의 놀라운 회화적 기운과 조형적 매력을 은밀히 그러모아 자기 작업에 응용하고 버무려놓은 작업들, 조선민화의 영향을 지극히 자연스럽고도 신선하게 해석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작가 15인을 한 자리에 모 았다. 그러나 이 전시가 의식적으로 조선민화를 계승하거나 기계적으로 차용하거나 하는 것 이라는 것을 말하려거나 그런 결과를 표명하려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런 의도는 민화와 무관하고 전통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번 전시에서는 조선민화를 의도적으로 표방하는 작업들은 제외했다. 민화의 단순한 차용이나 답습 내지 민화의 도상을 본 따 그리는 경우의 작가들은 모두 배제했다. 그것은 조선민화와는 무관한 작업이라는 생각에서이다. 중요한 것은 조선 민화에서 추출해낸 미의식이나 그 그림이 지닌 대한 조형미, 회화성 그리고 사물을 해석하고 그려내는 기발한 상상력을 어떻게 해석하고 응용해내면서 작가들 마다 자기 작업으로 만들어내느냐에 있을 것이다. 조선민화를 아무도 보지 못한 부분까지 보고 그리고 그것을 누구나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작업이 부분적으로 그런 가능성에 도전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 가능성에 희망을 건 전시다.

 

박영택 (경기대교수, 미술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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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10604-마음들의 고임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