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웁쓰양 展
그림 좋다
플레이스막1
2021. 4. 17(토) ▶ 2021. 5. 7(금)
운영시간 : 12:00-19:00 (월,화 휴관)
서울특별시 마포구 성미산로 198, 동진시장 내
www.placemak.com
내일의 날씨_acrylic on panel_45.5x53cm_2021
어린 아이 시절에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위로와 안정을 주는 존재를 필요로 한다. 대체로 부모가 그 역할을 하지만, 항상 같이 있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섯 살 무렵, 나에게는 인견으로 된 루비색 머플러가 그런 존재였다. 어머니와 할머니 간의 고부갈등이 극에 달해 밥솥이 날아다니던 전쟁같은 유년기는 앞으로 겪게 될 사회대전(大戰)의 예고편 같은 것이었다. 그 때 손에 꼭 쥐고 냄새를 맡고, 얼굴을 부비면 묘한 안정을 가져다 주던 것이 나에겐 그 인견 머플러였다. 평범하지 않은 생의 굴곡을 겪어온 웁쓰양 작가에게는 루비색 머플러 대신 그림이라는 존재가 있었다. 삶이 주는 격랑 속에서, 자아를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닻의 역할을 해준 것도, 자존감의 불꽃에 에너지를 공급해 움츠린 가슴을 펼 수 있게 해준 것도 그림이었다. 나아가 작가에게 그림이란 그것만 손에 쥐면 세상과 싸울 수 있는 용기가 생겨나는, 찬란하게 빛나는 검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그는, 그 검의 자루를 꽉 움켜쥐고 예술이라는 세상에 발을 디뎠다. 손으로 전해져 오는 날붙이의 에너지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바로 예술이라고 믿었기에. 하지만 어느 날, 내내 잡고 있던 검의 날에 표정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왔다. 그 때 그는 낯섦과 불편함을 느꼈던 것 같다. 필요할 때 말없이 휘둘려 주던 존재, 바라보는 시선에 필요로 하는 모든 표정으로 해석될 수 있는 무표정으로 화답해 주던 존재. 그런데 그 존재가 그 동안 자신만의 표정을 가지고 나를 바라봐 왔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는 혼란스러워졌고, 살짝 무서워졌던 것 같다. 이미 예술의 숲에 발을 깊이 들인 터였다. 길가에는 외로움이라는 자객에게 당해 먼지를 뒤집어 쓴 미이라가 되어 버린 인간들이 즐비했다. 이대로는 걸음을 떼어놓기 힘들다고 느꼈을 그는 길동무가 되어줄 만 한 다른 무기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그는 원체 눈썰미가 좋고 탐구력이 왕성한 사람이기에,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멋진 것들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 그것들에는 설치, 퍼포먼스, 출판 같은 이름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멍때리기 대회’라는 이름이 붙은 신형 기관총은 너무나 가볍고, 화력이 좋으면서도 힙했다! 그 기관총이 뿌려대는 적당한 관통력을 가진 상상력과 유희의 총알에 맞은 많은 사람들이 그의 포로가 되었다. 심지어 이 총알들은 발사된 뒤 저 스스로 바람을 타고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웁쓰양 작가라는 멋진 예술가가 한국에 있다고 소문을 내주는 역할을 해 주기까지 했다. 이 당시 작가는, 이대로라면 그림이라는 녀석 따위, 다시 손에 잡을 일 없이 예술의 세상 속에서 마음껏 뛰놀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칼 주제에 가늠할 수 없는 깊은 표정을 가진 녀석이라니, 쳇. 이라고 생각하면서.
밤세수_acrylic on panel_51x75cm_2021
하지만 2020년, 그렇게 뛰놀 수 있었던 세상은 코로나와 함께 멸망했다. 한동안 그는 칩거를 거듭했다. 삶을 영위하게 해주는 최소한의 경제생활에 참여해야 할 때를 빼놓고는 커다란 테라스가 있는 4층의 옥탑에서 라푼젤 같은 생활을 이어 갔다. 하루 내내 집 안에만 있는 것을 못 견뎌야 했던 그를 아는 나로서는,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그 사이에 멍때리기 대회를 조그맣게라도, 아니 비대면으로라도, 아니 그 이름만 걸어놓은 뭔가 다른 형태로라도 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은 크리스마스 트리의 불빛처럼 켜지고 꺼지기를 반복했고, 웁쓰양 작가의 얼굴은 그에 따라 점점 더 어두워져 갔다.알고 보니, ‘멍때리기 대회’는 배터리가 들어가야 불이 들어오고 작동이 가능해지는 총기류였던 것이다. 그 배터리는 바로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이 모여들 수 없는 시대. 그런 시대의 ‘멍때리기 대회’는 좀비 아포칼립스가 휩쓸고 지나간 뒤의 놀이공원이나 마찬가지였다. 움직여야 할 것들이 움직이지 않아 더욱 을씨년스럽고 쓸쓸한 풍경. 그 안에서 자라난 잡초들이 웁쓰양 작가의 마음을 덮어버린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될 무렵, 웁쓰양 작가는 이사를 했다. 하루 종일 창가를 바라봐도 구름 떠가는 것만 보이던 그 전의 옥탑과는 다른, 배달 오토바이와 담배 피는 고등학생들이 지나다니는 모습이 지나칠 만큼 가깝게 보이는 빌라 2층이었다. 그 한 켠에 종이를 깔고, 비닐을 덧대고, 낡은 이젤을 꺼내 판넬을 걸었다. 그 판넬이 꼭 숫돌처럼 보였던 것은, 작가가 애당초 이 세계에 발을 들일 용기를 줬던 존재, 그림이라는 칼의 날을 제대로 들여다 보는 작업을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날 속의 표정을 들여다 보기 위해선, 먼저 만족스러울 때까지 벼려야 할 것이고, 그게 가능해야 다시 그 자루를 손에 잡을 수 있을 것이었다. 시작은 쉽지 않았던 듯 하다. 그림을 쉰 9년이라는 시간이 만들어 놓은 빈 캔버스의 강을 건너야 했고, 점점 또렷해 지는 푸른 날 속 눈동자를 앞에 놓고 격렬한 불편함과, 때로는 공포와 싸워야 했다. 작업에 매달리는 며칠을 보낸 후, 빚독촉하는 깡패처럼 찾아온 공황 때문에 아무 일도 못하고 며칠을 보내 버리는 일이 반복되었다. 몇 달에 걸친 그 과정 속에서 차츰, 작가는 자기를 쳐다보는 검은 눈동자를 마주 쳐다보고, 그 시선을 피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낸 것 같다. 경직되고 곤두서 있던 그림 속의 선들은 차츰 부드러운 면으로 변해갔고, 각이 진 색깔의 레이어들은 뭉글뭉글하게 뭉쳐져 하나의 기운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작가는 칼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팔랑거리는 한 자루의 신칼이 되어 공간에 색을 흩뿌리며 춤추고 있었다. 그림이 던지는 시선을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림 안의 시선이 되어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세상의 재미를 그림에 담는 것이 아니라, 그림의 재미로 세상을 보기로 결심한 게로구나. 라는 것이 예술적 한계가 명확한 나라는 사람의 웁쓰양 작가에 대한 비예술적 해석이다.
숨쉬기_acrylic on panel_45.5x53cm_2021
전시에 걸린 페인팅과 드로잉은, 어떤 ‘장면’이라기 보다는 작가가 스스로 굿판의 신칼이 되어 재미지게 휘둘린 ‘춤의 궤적’으로 보시는 것이 어떨까. 라는 것이 작가의 작업과정을 죽 지켜봐 온 사람으로서 드릴 수 있는 조언이다. 그 춤은, 아무리 일상의 회색 불꽃으로 지져도 다 타버리지 않고 오히려 더 투명하게 광휘를 발하는 무엇인가를 찾아낸 이가 추는 기쁨의 춤이기도 하고,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마음 속 검은 액체를 더 깊은 심연 속으로 가라앉히기 위해 추는 진혼의 춤이기도 하다. 그림 속 몸짓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분이라면, 그 작품을 한자루의 장도(粧刀) 삼아 풍랑치는 일상 속으로 나아가 보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
탁재형_다큐멘터리PD / 작가
성불_acrylic on panel_51x75cm_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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