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영 展
불투명한 중첩
무제 untitled 55×20.5cm_Color on silk layered paper_2021
갤러리 도올
Gallery Doll
2021. 4. 14(수) ▶ 2021. 5. 2(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87 | T.02-739-1405
www.gallerydoll.com
무제 untitled 116.8×91cm_Color on silk layered canvas_2020
우리는 모두 각기 다른 삶의 모습을 지닌 채 살아간다.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제각각의 모습으로 생의 시간을 보내왔지만, 코로나 19 팬데믹과 함께 한 지난 1년 여의 시간은 우리가 모두 예외 없이 질병 앞에서 한없이 나약한 존재임을 실감하게 했다. 전염병의 위기 속에서 불확실함에 익숙해져야만 했고, 무력감과 우울감을 감당해내야만 했다.
작가 정윤영(33)은 바로 이렇게 ‘같지만 다른’개별적인 생의 흔적들을 중첩하여 그려낸다. 일반적으로 시각 예술 작품, 그중에서도 특히 ‘회화’에는 어떤 욕망이나 세계관과 같이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담겨있기 마련이지만, 정윤영의 이번 작업은 형상성이나 상징성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색 위에 색, 면과 면이 만나 겹을 이루는 작업은 이제 닮음의 형상에서 벗어나고 있다 말하고 싶다. 붓질의 흔적과 미묘하게 번지는 색이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물감층은 다채롭게 어떤 것을 나타내려 하다가도 정해진 모양은 드러나지 않는다. 추상적인 표현이 두드러지며 공간에서 서서히 움직이는 미생물의 모습처럼 미세하다가 어느새 부유하며 잡히지 않는 흐름처럼 역동적인 면도 드러난다. 반복적인 모습의 움직임과 자유로이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색채는 어우러진다. 평면의 공간이지만 형상은 무한대로 확장되고 있는 것 같다. 물감층의 변화는 끊임이 없다. 한 공간에 다양한 요소들이 더해지며 공존하는 화면은 여러 겹으로 이루어진다. 캔버스 위로 그려진 형상에 몇 겹의 반투명한 비단과 중첩되어 화면은 다르지만 연결된 형상들이 공존하고 있다. 물리적, 시간적 차이를 비교하며 서로 보완하기도 하며 덮음과 연결을 시도하면서 겹을 통한 의도를 최대로 표현한다. 불교미술학과를 졸업하고 서양화를 공부한 작가의 작업은 다양한 동서양의 표현으로 재미를 준다. 조심스레 올린 색채로 모순적이고 다양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untitled_Equilateral triangle 60cm_Color on silk layered canvas_2020
작가의 몸으로 느낀 존재의 연약함은 체험과 기억으로 작업의 원동력이 되어준다. 오랜 시간 병마와 싸운 시간은 자신의 삶과 주변을 되돌아보게 하고 진지함을 갖게 했다. 최근작 “untitled(무제)” 연작은 작가가 팬데믹과 함께 시작된 약 1년여 시간 동안 서울의 집과 강원도 양구의 작업실을 오가며 꾸준히 작업한 결과물로, 생명의 유한함을 확인하고 계속되는 삶에 현재 존재의 표현으로 실존에 대하여 담담하고 온전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감정은 말을 넘어서고 자각하며 살아가는 현실을 옮긴 색의 겹은 그래서 모호하고 여전히 움직인다. 서로 다르지만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요소들로 중첩된 화면은 생성과 회복의 에너지와 생명의 흐름을 관객들과 가감 없이 공유할 준비를 마쳤다. 전시는 5월 2일까지.
나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삶을 돌보는 태도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나에게 있어서 삶의 질곡 속에서도 삶에 감사하고 그 기쁨을 진실되게 추구하는 것은 중요하다. 전시장에 설치된 작품들은 개인적인 투병 경험에서 이어진 불완전한 생의 단면, 그 상실과 결여로 얼룩진 미완의 상태를 이야기하고 있다. 사는 일은 때때로 비천함이 따르지만, 생은 그 자체만으로도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삶 속 매 순간마다 돌이켜보면 죽음을 견뎌내며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어쩐지 애잔하다. 나의 작업은 유한한 생명이지만 이를 위한 노력의 흔적을 되살려내는 것에 그치는 것이라기보다는 회상과 조형 활동을 통해 모순된 감정의 층위를 새롭게 돌아보고 그것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형성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삶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갖추어가는 과정이다. 예정된 의도 안에서 움직이며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대신, 화면 위 중첩 속에서 의미를 비껴가며 미지의 차원을 다시 열고 덧입힌다. 작품 속 화면은 짙고 깊은 암흑이라기보다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모호한 대상들과 순응과 저항 사이의 미묘한 상태를 담아내고, 그리다 만 것 같은 미숙한 표현이지만 맑고 투명하게 물든 어떤 그늘을 형상화한 것이다.
-작업노트-
무제 untitled 116.8×91cm_Color on silk layered canvas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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