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에 기획초대전

 

설보혜 초대展

 

Eternal present

 

 The life instinct 130*130 / Mixed media on canvas 2019

 

 

 

2021. 3. 29(월) ▶ 2021. 4. 11(일)

서울특별시 강서구 초원로 14길 39 | T.02-2633-7325

 

https://blog.naver.com/galleryer1

 

 

The life instinct_116.7x180cm_Mixed media on canvas_2019

 

 

설보혜, 생명의 근원과 동경

 

설보혜는 식물의 태동과 성장에서 영감을 얻어 그것을 그림으로 표상하는 작가이다. 한때 국내 화단에서는 꽃 그림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는데 꽃그림이 식물의 화려한 색채와 자태를 강조한 편이었다면, 설보혜의 그림은 식물이 지닌 생명력이 영감의 원천이 된다. 말하자면 작가에게는 식물이 지닌 외형의 화려함보다는 내면의 속성을 중시하는 셈이다.

그의 이런 작업의 출발은 지금으로부터 6년 전에 식물의 이미지에 인물을 접목한 <놀이터>에서 시작되었다. 넓은 연잎 사이에 아이와 소녀가 누어 있거나 앉아 있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림의 주인공은 작가 자신이며 이것은 유년 시절 가족여행을 갔던, 지금 생각해도 절로 미소를 짓게 되는 즐거웠던 시절을 떠올리며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다 차츰 인물은 빠지고 지금과 같은 식물들이 서식하는 공간으로 바뀌게 되었다.

화면에 빼곡하게 들어선 식물들은 군집의 형태로 되어 있다. 하나하나의 식물이 지닌 외형보다는 그것의 근간이 되는 강한 생명력에 주목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플루메리아, 히비스커스, 릴라와디, 선인장, 아디안둠, 알로가시아, 극락조 등이 마치 화원에 와 있는 것처럼 보는 이를 설레게 한다. 작가가 하나하나의 식물에 주목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식물에서 느낄 수 있는 정교함이랄까 오묘함이다. 애니 딜라드(Annie Dillard)는 플리처상 수상작『자연의 지혜』에서 큰 느릅나무 한 그루에는 600만개의 이파리가 달려 있는데 이 이파리들은 각각의 톱니 모양을 하고 있다고 기술한 바 있다. 이 어마어마한 톱니 자국들을 식물학자들이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해도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예술가는 그런 식물들을 보며 그것의 자태와 경이에 감탄하며 이를 섬세하게 묘출한다. 이를 위해 멈추기를 자주하고 가까이 감으로써 그것들과 친화관계를 유지한다. 그림을 보면 이파리들이 제각각이다. 형태도 다르고 색깔도 다르다. 이파리의 무늬는 우아함과 고상함을 문신처럼 새기고 있거니와  예쁜 꽃들과 열매는 싱그러움을 선사한다. 거기에다가  한층 마음을 설레게 한다. 인간의 절제되지 않은 확장과 자기팽창, 즉 토양은 침식되고 늪은 파괴되며 산호초는 시들고 강물이 오염되는 생태계를 돌아볼 때 식물들의 신비로움을 강조하는 것은 우리의 경각심을 높일 뿐만 아니라 예술가로서 미래세대를 위하여 더 나은 세계를 물려주기 위한 뜻있는 시도로도 읽힌다.

 

 

The life instinct_91.0x116.7cm_Acrylic on canvas_2021

 

 

작가는 모든 식물 들이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것을 작가는 ‘생명력’이라고 부른다. 물론 실제의 식물들은 각각의 뿌리를 지녔으나 설보혜의 그림에서는 하나의 근원에서 비롯되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이 단계부터 작가는 식물에 대한 관점을 생태의 문제에 제한된 것이 아니라 좀더 복합적인 관점에서 접근되었음을 알게 한다. 작가가 언급하려는 것은 생명력과 그 반대 지점에 있는 죽음의 어른거림에 대해서이다.

 

“생명의 탄생은 다른 의미로 죽음의 시작일 수도 있다. 인간은 고통속에서 희망을 보고 죽움의 문턱에서 삶을 바라본다. 생명이 가진 원초적인 에너지와 그 양면성은 늘 나의 삶에 공존하고 있다.” (작가 노트 중에서)

 

작가는 삶과 죽음의 공존을 말하는데 우리는 화면에 솟구치는 생명의 활달함에 취해 ‘다른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있다. 여기서 ‘다른 측면’이란 식물 사이에 어둠으로 채워진 빈 공간을 말한다. 화려한 꽃과 이파리에 시선을 빼앗겨 검은 공간을 놓치기 쉬운데 작가의 그림에서 그것은 삶의 이면, 즉 죽음의 존재를 암시한다.  

이렇게 볼 때 그의 작품은 가시적인 세계에 대한 기록이기보다는 심리적이고 관념적인 표현이며 자연이 주는 심상과 내면의 심상이 자연의 색채와 어우러져 나온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자연이 지닌 생명의 본능과 에너지, 죽음, 그리고 그것의 순환에서 지금을 살아내고 있는 자신을 본다.

지난 몇 년 동안 작가는 인생 최대의 시련을 겪으며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것은 마치 작은 보트에 몸을 싣고 여행하던 중 망망대해에서 폭풍을 만났을 때의 두려움과 당황스러움 같은 것이었다. 상처받은 마음이 그림에 더욱 몰두할 수 있도록 몰아세웠던 탓일까? 그러던 중 식물이 지닌 생명에 대한 신비와 경이에 마음을 빼앗기면서 힘든 시절을 견뎌낼 수 있었다고 한다. 작가는 식물을 그리면서 내부로 침윤된 것이 아니라 느린 호흡으로 생명에 집중하는 가운데 그가 바라보는 것을 풍부하고 만족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그 결과 심적 균형과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Eternal present_72.7x91.0cm_Mixed media on canvas_2021

 

 

삶 옆에 죽음을 둔다는 것은 인생의 비극을 힐끗힐끗 비추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두려움과 좌절 바로 옆에 삶에 대한 열망과 희망이 자리한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 서로 상반된 것들의 변증법적인 관계 속에 바로 인생이 존재한다는 것을 작가는 말하려는 것같다.

어쨌거나 작가에게 있어 생명의 근원과 동경은 자연에 대한 이끌림을 가져왔고 그것은 기본적으로 생명과 죽음의 관계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그의 그림이 우리의 생각만큼 침울하고 심각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그림은 미래의 불안과 두려움보다는 현재의 충일함과 희열로 술렁거린다. 말하자면 식물의 에너지와 생동감이 불안의 그림자를 압도하는 형국이다. 그리하여 마치 식물을 통해 ‘영원한 현재’를 영위하고자 하는 것같다.

블랙햄(H.J.Blackham)은 만일 인간의 삶이 덧없고 인생 자체가 궁극적으로 소멸할 운명이라면 이 세상은 ‘거대한 하나의 무덤’이라고 말한 바 있다. 모든 생명체들이 소멸할 순간만을 기다린다고 가정한다면 얼마나 허탈하고 무의미할까? 살아있음의 현재를 온전히 느끼고 거기에 감사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염세주의의 굴레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한때 비관주의에 빠져 있던 영국의 체스터톤은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우연히 길가에 핀 흔하고 평범한 민들레를 보며 ‘한 가닥 감사’(thin thread of thanks)의 마음을 갖는데서 무시무시한 기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듯 지혜로운 사람들은 자연에서 희망을 보았다.

설보혜의 그림은 인생의 질곡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그것은 어제 있었던 것이 오늘도 계속되며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대하는 일에서 시작한다. 식물 세계가 빚어내는 온갖 경이로움과 신비로움을 보는 순간 우리는 생생한 생명을 향하여 사랑에 젖게 되고 우리의 삶 또한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서성록(안동대 미술학과 교수)

 

 

Eternal present_72.7x91.0cm_Mixed media on canvas_2021

 

 

Eternal present_72.7x91.0cm_Mixed media on canvas_2021

 

 

Silent vibration_91.0x91.0cm_Mixed media on canvas_2020

 

 

 

 

 
 

설보혜 | SEOL BO HYE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회화 전공  

 

개인전 | 2016년 이앙 갤러리 | 2019년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 2020년 평창동 아트스페이스 퀄리아 | 2021년 갤러리에 초대전

 

그룹전 | 2015년 경인 미술관 | 2017년 갤러리 바이올렛 | 2017년 경인 미술관 | 2019년 서울 아트 쇼 | 2020년 토포하우스

 

E-mail | flola0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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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10329-설보혜 초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