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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미자 展
오늘도 그린다는 건
갤러리 내일
2021. 3. 26(금) ▶ 2021. 4. 15(목)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3길 3 | T.02-2287-2399 후원 | 내일신문
화가의 묵상
글. 홍희진(독립 큐레이터) / 2021.3.15
우연히 마주한 어느 고목은 십년이 넘어가도록 화가의 신체에 저장되어 있다. 이 고목의 생김이 화려하거나 괴상하여 인상적인 찰나를 포착하듯이 순간을 재현해내는 것이 아닌 조용한 시간을 흘려 보내며 심상에 맺힌 사유의 이미지임을 밝힌다. 그 자리에 계속 위치하고 있는 오동나무를 한없이 바라보아도 계속 바라볼 수 밖에 없고 십년 넘게 그려와도 계속 그려낼 수 밖에 없는 영롱하지 않지만 단단한 인연이 형성되어 있음을 그림을 통해 증언한다. 화가는 특별한 사건 없이 그 자체를 몸으로 사모하고 있다.
화가가 눈과 머리 그리고 손으로 읽어 내리는 고목 ‘오동나무’의 부분 가지들은 각각 화폭에 등장하지만 전체를 드러낸 적은 없다. 프랑스 현상학자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Pony)가 세잔의 붓질을 설명하면서 한번의 붓질이 무수한 조건(공기, 빛, 대상, 성격 등)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말한 바와 같이 화가는 재현과 그 밖에 놓여있는 조건들을 한번의 붓질로 책임지고 있다. 회귀하지 않는 붓질로 존재하기 위해 성립하는 그 무수한 조건들을 표현한다. 화폭 속에서 눈으로 매만져 손으로 실현하는 고목의 부분들은 각기 다 다른 자태 혹은 재현으로부터 일탈하여 때때로 추상적인 선으로 발견되어 화가로부터 이끌려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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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메일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은 작가와 필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 vol.20210326-허미자 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