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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하, 박성실 展
Following Nature
갤러리 내일
2021. 1. 29(금) ▶ 2021. 2. 18(목)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3길 3 | T.02-2287-2399
www.gallerynaeil.com
박성실, 이방인 (가을), 116x91cm, Mixed media on canvas, 2019
박종하 박성실 두 작가의 “Following Nature”전이 내일 갤러리에서 초대되었다. 두 작가는 20여년 유럽문화권 (영국)에서 오랜 활동 경험을 가진 작가들로, 동과 서가 근본적으로 묻고 있는 우리의 참 정체성과 존재성을 추구하는 공통 관심을 가지고 있다. 박종하 작가는 추상으로, 박성실 작가는 사실주의라는 서로 다른 접근 방법을 가지고, 존재와 인식의 주제를 표현하고 있다.
박종하 작가는 30여년 ‘창세기 (Genesis)’라는 주제로 작업해 오고 있다. 영국에서 오랜 활동과 더불어 몇 년간의 중국에서 작업한 그의 창세기 시리즈 작업은, 동양사상에 모든 존재에 근본이 되는 기 (氣)와 도(道)을 결합하여 한 순간에 내려 긋는 브러시마크에 담아 표현해 오고 있다. 서예의 ‘기’와 흰 바탕의 여백 위에 내려그은 세련된 색감의 붓 자국들에는, 생명력과 예술적 에너지가 한껏 녹아있다. 마음을 가다듬은 후 내려 긋는 한 획들은 시적 운율을 만들어 내고, 또한 서로 다른 색깔들이 가진 다른 농도와 흐름은,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화합하기도 하여 그들만의 조화로운 세계를 만들어 내고 있다. 즉 ‘무’로 상징된 흰 캔버스 바탕에, ‘유’ 즉 ‘존재’로 표현된 붓 자국들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서양철학에서 다루는 극히 다른 개념의 유와 무를, 동양철학은 이 둘은 전혀 분리 될 수 없는 한 개념의 다른 성격, 즉 ‘음양’의 조화로 받아 들임을 그의 작업에서 읽을 수 있다. 즉 죽음이 있어 삶이 있고, 겨울이 있어 여름이 존재 할 수 있듯, 자연 질서와 기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다양한 색의 획들은 스며듦과 번짐의 효과를 통해, 매 순간 ‘지금 그리고 여기’ (Here and Now) 의 ‘문자 없는 시(詩)’을 시각적으로 표현 하고 있다.
박성실 작가는 매일 매일 다른 시간과 공간을 맞이 하며, 만나는 존재들과 풍경 (환경)과의 대화를 그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양수리 산천에 펼쳐 지는 여름날 풍경과 겨울이 되어 만나는 그곳의 풍경은, 자연의 법칙과 “기적”의 변화임을 보여주고 있다. 봄이 되어 눈뜨기 시작하는 많은 꽃들과 개구리들의 합창, 사계절속에 변화되는 나뭇잎들의 색깔과 하늘의 뭉게구름, 그리고 계절의 변화를 반사한 한강의 풍경과 마른 들풀들은 그녀에게 화두로 다가간다. 여기 지금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존재들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시간과 공간에 함께 공존하고 있음에 기적을 느낀다고 한다. 걷고 있는 우리가 있고, 물에서 헤엄치는 물고기가 있고, 하늘을 나르는 작은 참새들에서 박성실 작가는 일상의 감사함과 기적을 체험하고 있다. 이런 하루에 마주하며 지각한 존재성과 그들의 보금자리이자 삶의 터전인 자연을 하루 하루 그려가는 작업을 한다.
박성실, 회상 - 4월, 90x72.7cm Oil on canvas, 2016
작업 노트
박성실
지구에 도착한지도 벌써 60여년이 가까워 지는데 아직도 제 주위엔 신비한 것 투성입니다.
그렇게 무섭게 하천오염을 시키는 인류 중에 한 사람으로 미안한 마음까지 드는 요즘, 아무런 기대 없이 걷던 오후산책에서 청개구리 두 마리를 만났습니다! 너무도 작아서 엄지 손가락 보다 더 작은 청개구리들은 저의 웃음과는 상관없이 손바닥에 찰싹 붙어있다가 폴짝 폴짝 뜀뛰기를 합니다. 어찌나 신기한 지요? 그렇게 작았던 그 녀석들이 연못 속으로 점프할 때 보면 확 늘어난 뒷다리의 길이만큼 깜짝 놀라게 됩니다. 신기하고 아름답습니다.
과일가게 앞에서 만났던 강아지의 눈동자를 기억 합니다. 아무 이유 없이 제가 좋아 어쩔 줄을 모릅니다. 제대로 앉지도 그렇다고 서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계속 저를 바라보며 안절부절 합니다. 그가 제게 보여준 호기심과 반가움의 순도가 저를 울게 합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처음 보는 제게 그가 보여준 가려지지 않은 호기심과 사랑 표현이 저에게 많은 감동과 가르침을 줍니다.
봄이 오면 신작로 모퉁이에도 양수리 두물머리 길가에도 온통 꽃들의 축제가 벌어집니다. 닭벼슬처럼 생긴 작은 맨드라미 꽃도, 보기조차 아까운 불타는 빨간 양귀비꽃도, 새색시 같은 쪽두리 꽃도, 큰 어른 손 같은 아주까리 잎들의 군무 중에도, 종하형이 좋아하는 진노란색의 호박꽃들도 제 각각 기적을 외쳐 댑니다. ‘이 무엇인고?’ 아니 왜 이들은 이리도 저 나름으로 독특한 생김새와 삶의 방식을 가지고, ‘나라는 존재’와 이 시간 이공간에 같이 존재하는 것일까요?
거기에 후두둑 빗방울이 연못에 떨어지는 날이면, 신기해하고 좋아라 하는 것은 저 뿐만이 아닙니다. 빨강 잉어 노랑잉어, 까만 잉어 이들도 봄비에 춤추기 시작합니다. 하늘에 구름과 시집가는 햇살까지 반사되어 거울 같은 수면 위에, 파문과 함께 이들은 구름 사이를 날기 시작합니다.
이 모든 것이 내 아버지가 물려준 가장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아직도 물에서 잉어가 춤추고, 개구리가 수영을 하고, 수많은 꽃들이 피고 지고 또 피기를 반복하며, 강아지 반사된 눈동자에서 하늘과 그를 바라보는 나를 볼 수 있는 세상은, 가공되지 않은 최고의 사랑이고 선물 입니다. 우리 아빠가 내게 주셨듯이 간절히 이 선물을 다음 세대에게도 선물 할 수 있기를 기도 합니다. 저는 지구라는 별에 잠시 여행 온 이방인임을 나이 들어 가면서 더 알게 됩니다. 다른 모습의 또 다른 나로 이 지구에 다시 여행 올 때에도, 그때에도 비단잉어와 고양이, 강아지 그리고 양귀비꽃을 오늘처럼 만날 수 있기를 기원 합니다! 우리의 늦은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이들로 아직까지 존재해 주어 너무도 감사 합니다! 오늘은 또 다른 기적의 연속 입니다!
박종하, Gen 00207 2010, 193x97cm, Mixed media on canvas, 2010
빛과 그림자
화가 박종하
때때로 새로운 작품을 시작 할 때면 내 가슴이 간혹 설레곤 합니다.
그러나 얼마나 지났는지는 정확히는 말하기 힘들지만, 이내 붓을 놓고 한동안 기다리는 시간을 갖고는 합니다. 답답하기도 하고 조급할 적도 있지만 그때도 시간을 두고 관조하고, 한동안 다른 작품의 여백과 마무리 작업에 신경을 돌리곤 합니다. 아무리 본인의 작업이라 해도, 쉽게 작업이 시작되고 마무리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작품은 10년이 다되어도 정리 되지 못한 체 미완성으로 남아 있으니 말입니다.
내 스스로 만들고 그려나가는 화폭과 화가 자신의 작업도 완성 되지 않은 적이 너무나 많은데, ‘그대 그리고 나’와의 사이에는 얼마나 많은 공간과 시간들이 겹겹이 놓여 있을까요.
화가는 ‘빛과 그림자’를, ‘여백과 대상’을 그리고, 화가의 ‘의도와 영감’을 동시에 화폭에 조화롭게 표현 해보려 노력 아닌 노력을 경주 하곤 합니다. 저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존재해 있는 모든 창조의 재창조라고도 할 수 있고 재해석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만, 화가는 화폭과 끊임없이 마주하며, 그 상황과 결정체 들을 발견해 나가려 힘을 씁니다. 이 과정은 수백 년을 이어온 화가들의 자세가 아닐까라고 생각해 봅니다.
인간의 굴레 속에서 예술을 표현 합니다. 인간의 굴레를 벗어나서의 예술은, 어떤 것이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한 화가로서, ‘빛과 그림자’, ‘그대 그리고 나’를 관조 합니다. 한 인간으로서 빛과 그림자를 봅니다. 어두운 밤하늘의 별과 같이 어두운 공간의 촛불처럼……
아마도 화가는 작은 불빛 같은 그런 존재감을 남길 수가 있다면 그것으로도 큰 보람이라고 생각해 마지않습니다. 화가라는 직업도 어찌 보면, 그저 단순한 업종만은 아닌가 봅니다. 모든 직업도 그러하겠지만, 보이는 밝은 면과 어둔 면이, 뗄레야 뗄 수 없는 상대성과 그것의 상호작용으로서 무척 고심해야 만이 작업을 이어 나아 갈수 있으니 말입니다. 세속적으로 보면 참 어려운 길임에도, 무엇인가 알 수 없는 것에 이끌려서 수많은 예술가들이 그 길을 가고 있으니 그 모습이 신앙인의 자세와도 많이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믿음으로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에는 닮아 있으니 말이지요.
예술은 ‘그대 그리고 나’을 상대성을 뛰어 넘어 영원성의 존재로, 전환을 가능케 합니다.
박종하, Gen 0815 2019, 162x112cm, Mixed media on canvas,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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