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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종민 展
바보배
PLACEMAK 1
2020. 12. 2(수) ▶ 2020. 12. 13(일) 서울특별시 마포구 성미산로 198 동진시장 내 플레이스막1
바보 Fool _캔버스 위에 아크릴 채색_53X45.5cm_2020
누구나 마음속에는 자기만의 기준이라는 '잣대'가 있다. 그 잣대는 남을 평가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흑과 백을 나누고, 하늘과 땅을 가르고, 심지어 사람과 사람을 구분하기도 한다. 문득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만드셨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성경으로 볼 때 선과 악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만약, 선악과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제 나름의 선악을 구별 지으며 살아가고 있다. 선이 무엇인지, 악이 무엇인지도 온전히 알지 못한 채로. 우리가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는 타인의 기대와 인정에 얽매여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흔한 불안과 걱정, 분노 그리고 공허함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흔적들이다. 흔들리는 외부에 맞추느라 나 자신을 희생하고 소외시키기에 무기력하고 공허하다. 어쩌면 나 자신을 들여다볼 여유조차 사라졌는지도 모른다.
바보들의 배 The Ship of Fools_캔버스 위에 아크릴 채색_145.5X97cm_2020
라종민이 작업의 모티브를 얻게 된 계기는 우연히 발견한 네덜란드 화가인 히에로니무스 보쉬(Hieronymus Bosch, 1450(?)~1516)의 작품 『바보 배(The Ship of Fools)』에서 시작되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바보’는 숨겨진 권력자들의 위선과 인간의 어리석음을 풍자한다. 당시 15세기 중세 유럽 사회는 광인들과 바보들의 천국이었다. 이들은 중세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선행의 표적이 되었지만, 선행은 더 이상 구원의 방편이 되지 않는다는 종교 개혁가들의 가르침이 등장하면서 도시에서 살아야 할 입지를 잃어버렸고, 강이나 바다를 낀 거의 모든 주요 도시에는 바보들을 실은 배가 떠다녔다. 이들은 바보 의상을 걸치고 여러 가지의 장식물로 치장을 하였는데, 그중에서도 방울은 일종의 신분 표식이자 계급의 상징이었다. 나름 ‘정상인’이라고 불리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토대 위에서 이들은 정상인의 기준에 어긋난다. 이 같은 기준은 정상인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의 잣대가 명령하는 바를 따르지 않는 바보들을 철저하게 사지로 내몰기 위한 것이다. 더욱 완벽하고 선한 사회, 법과 질서가 합리적으로 지배하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여전히 우리 사회 속에서 바보들은 차별의 대상이다.
신을 믿지 못하는 바보 a fool who doesnt belive in God_캔버스 위에 아크릴 채색_90.9x65.1cm_2020
제바스티안 브란트(Sebastian Brant, 1457~1521)가 지은 『바보 배(The Ship of Fools)』는 이번 전시의 제목이자, 금속활자 텍스트와 목판화 그림으로 구성된 책이다. 『바보 배』의 목판화는 여러 유형의 바보들을 시각화함으로써 불안한 현실 앞에서 느끼는 심리적 혼란을 풍자한다. 이 목판화들은 글을 읽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바보가 아닌지 스스로 성찰하도록 마련된 장치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숱한 바보들의 우스꽝스러운 행태를 읽다 보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여전히 우리의 현실에는 보이지 않는 차별적 경계 안에서 광기와 비이성이 존재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바보 배(The Ship of Fools)』의 목판화 삽화 이미지를 차용하여 재해석한 작품을 선보인다. 그렇게 차용된 이미지를 개인적인 경험과 기억의 서사로부터 소환된 이미지와의 접합을 시도한다. 작품의 상징성을 유추하는 것은 보는 이의 자유일 것이다. 문학 서적에서 추출한 상징성을 다시 작업의 의미로써 부여한 것은 자아의 본질을 탐색하기 위한 과정이라 하겠다.
전승용
그릴 Grylle_캔버스 위에 아크릴 채색_53X40.9cm_2020
그릴 Grylle_캔버스 위에 아크릴 채색_53X40.9cm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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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메일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은 작가와 필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 vol.20201202-라종민 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