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란 展

 

Life is full of little happiness

 

 

 

갤러리도스

 

2020. 12. 2(수) ▶ 2020. 12. 8(화)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7길 37 | T.02-737-4678

 

www.gallerydos.com

 

 

 

 

품기 위해 내 것을 비워야하는 순간

 

갤러리도스 큐레이터 김치현

 

막연한 듯 선명한 꿈을 품던 학생은 학자가 되었다. 예술이라는 야심은 종이에 스미는 색처럼 꾸준히 삶의 두께를 채워 나갔고 그 한가운데 떨어진 사랑은 번지는 물감의 우연한 효과처럼 뜻밖의 색을 자아냈다. 그렇게 언제부터였을까 아직도 믿기지 않게 어머니가 되었다. 이미지를 다듬던 지난날의 작가는 화면에서 신중하게 이야기를 덜어내고 냉철하게 재단했지만 아이의 어머니가 된 김란의 화면은 매순간이 소중한 기억이며 당시의 향기가 넘치도록 채워져 있다.

처음 만지는 재료를 접한 예술가의 두근거림과 생경함은 손끝에서 빚어지는 원초적이고 익숙한 감각과 어우러지며 매끈하게 다듬어지지 않아도 편안함을 주는 그림이 된다. 작품은 종이 위에 오일파스텔을 사용하여 그려낸 가볍고 친근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부드럽게 연결되고 엉겨 붙은 안료와 기름은 가장자리에 맺히는 작은 찌꺼기조차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일상의 부드러운 촉감을 재현한다. 날카롭게 구분된 경계가 아닌 재료의 물질적 특성에서 따라오는 흐리게 뭉개지는 색의 끝자락은 작고 느린 아이의 호흡이 포근한 이불의 표면에 만들어낸 미세한 헝클어짐처럼 모두가 경험했지만 자세히 기억하지 못하는 감각을 이끌어낸다.

 

 

Skull mommy, 56 x 77 cm, Oil pastel, pencil on papers, 2019

 

 

대부분의 관객들이 태어나서 처음 접한 미술도구는 어머니의 보듬는 손길을 받던 어린 시절의 크레파스이다. 아이의 그림에서 보이는 세심하지 못한 손놀림과 부주의함은 흰 도화지 곳곳에 검댕 같은 얼룩을 남기지만 세상을 보고 읽는 방법을 알아버린 어른이 다시 재현 할 수 없는 천진난만함이 있다. 김란의 드로잉에도 어머니라는 이름이 생기자마자 덜컥 손에 쥐여진 육아를 거치며 처음 그림을 그리는 듯한 낮선 신비로움과 투명한 시선이 담겨있다. 기초적이고 익숙한 재료에서 드러나는 질감과 더불어 화면속의 이야기는 어머니의 사랑과 아이의 모습이 그려졌기에 자칫 앞서 이야기한 보편적이고 모호한 감상에서 그치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누추한 손맛으로 얇게 가려진 표현을 자세히 바라보면 재료를 다루는 작가의 능숙한 속도변화와 확신을 가지고 번복 없이 그어진 스트로크에서 전문가의 자신감이 드러난다.

묶음 지어진 이미지는 연결되는 내용임에도 의도적으로 분할되어 작품의 무게감과 이를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을 리드미컬하게 조절한다. 자극적이거나 강렬한 색의 조합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화면에 자리하고 있는 이미지들은 저마다의 존재감과 이유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사물의 부위마다 다르게 표현된 마티에르의 두께와 간격으로 인해 적은 종류의 재료로 그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고 시각적으로 풍부하다. 큰 형태적 변화 없이 넓게 이어진 표면조차 각기 다른 방향과 속도로 그려진 획의 모양으로 인해 지극히 사실적으로 그려진 그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질감의 다양성이 화면의 부위마다 적절히 느껴진다. 그로인해 관객의 감상은 단순히 작품에 담긴 내용을 파악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작가가 담고자 했던 촉감과 향기, 온도를 연상하며 그림속의 광경이 자신의 경험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더라도 몰입할 수 있다.

원초적이고 순수하기에 때로는 어른의 효율과 계산을 거스르고 난처함을 불러내는 아이의 지워지지 않는 냄새는 예술가들이 작품 활동을 하며 겪는 시행착오와 어느새 자신의 일부가 된 재료의 향기와 닮아있다. 김란의 작품은 손을 떼야하는 시점을 적절히 지켜냈기에 과장되지 않고 담담히 자신의 일상을 드러내며 관객이 편안하게 다가설 여지를 내어준다.

 

 

The mother, 32 x 41cm, Oil pastel, charcoal and on paper,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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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01202-김란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