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욱 展

 

지리산 가는길

 

 

 

악양작은미술관

 

2020. 11. 8(일) ▶ 2020. 11. 18(수)

경남 하동군 악양면 악양동로 176 악양생활문화센터

 

협력 | 지리산문화예술사회적협동조합 구름마

 

 

Blue Mountains 2004,107x300cm, Archival Pigment Print on Hanji, 2020

 

 

1.지리산 종주로 시작된 인연
10년 전 작업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시기에 지리산 노고단으로 갔다.
우연히 노고단에서 지리산 종주를 향해 질주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 순간 충동적으로 아무런 준비도 없이 무작정 지리산 종주를 감행하고야 말았다. 내 생애 첫 지리산행이 종주가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1박 2일간의 힘겨웠던 지리산 종주는 내 몸에 많은 상처를 남겼지만,
산을 주제로 작업하는 본격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 이후 2016년 실상사 지리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추진된 3박 4일간의 지리산 종주에도 참여했다. 두 차례의 지리산 종주는 지리산 작업에 가장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년이 지나도 지리산 작업은 생각처럼 쉽게 풀리지 않았다.
지리산이 규모가 큰 탓도 있었지만, 설악산과 북한산보다 시선을 끌 만큼 매력적인 기암절벽이나 풍 광이 별로 없어 사진으로 풀어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설악산과 북한산 인수봉 전시회를 먼저 열었고 지리산은 그 다음 차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지리산과 인연을 맺은 지 1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작업의 실마리가 비로소 조금씩 풀리기 시작 했다.

 

 

Jirisan 2032, 107x160cm, Archival Pigment Print on Hanji, 2020

 

 

2.지리산 둘레길과 평사리
지리산 둘레길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코스는 섬진강을 보면서 걷는 하동의 평사리다. 2008년부터 ‘지리산’보다 ‘평사리’ 작업은 먼저 시작되었다.
2009년 ‘정태춘 박은옥 30주년 기념’으로 열린 전시회에 평사리 부부송을 작품으로 선보였다.
그 이후에 2012년 새 앨범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가 발표되었고 정태춘 선생님께서 사인한 CD를 직접 선물로 주셨다.
그 앨범에 수록된 노래 중에서 특히 ‘섬진강 박 시인’을 좋아했고 평사리에 갈 때마다 그 노래를 즐겨 듣곤 했다.
그런데 최근, 평화롭던 평사리에 서서히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평사리 동정호에는 촌스럽게 빨간색 하트 모양의 다리가 만들어졌고 아름답던 초 록색 들판에는 알프스 하동을 새겨 불길한 조짐이 감지되고 있었다.
결국은 평사리 들판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형제봉에 산악열차를 설치하려는 알프스 하동 프로젝트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국립공원 1호 지리산에 생태 환경을 훼손하는 시대착오적 개발 사업인 산악열차가 웬 말인가!

 

 

Jirisan 2063, 107x160cm, Archival Pigment Print on Hanji, 2020

 

 

3. 도법스님과 실상길
도법 스님께서 295km나 되는 지리산 둘레길을 만드신 지도 벌써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최근에 실상사 앞마당에 작지만 특별한 길을 만드셨다.
양쪽으로 기왓장을 포개어 만든 좁은 길이라 처음에는 무심코 지나쳤다.
함께 동행했던, 절에 근무하시는 보살님께 기왓장을 양쪽으로 펼쳐 놓은 이유를 여쭈었다. 도법스님께서 ‘사람이 다니는 길’이라고 만드신 의미를 설명해 주셨다.
그 이유를 듣고 보니 기왓장을 따라 그 길을 천천히 걸어 보고 싶었다. 처음에는 기와를 밟지 않으려 고 조심스럽게 걸었는데 어느 정도 걷다 보니 곧 익숙해졌다.
그 길을 따라 천천히 실상사 경내를 산책해 보니 마치 내가 수행자가 된 느낌이 들었다.
도법 스님께서 기왓장으로 길을 만드신 의미를 조금은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이 길을 실상길이라고 부른다.
문득, 실상길을 걷다가 『지리산 가는 길』이라는 제목이 떠올랐다.

 

 

Jirisan S01, 100x177cm, Smart Lighting, Archival Pigment Print on Hanji, 2020

 


4.코로나 시대의 지리산 예술길
지리산 예술길은 실체가 있는 길이 아니라
지리산의 상징적 의미를 동시대의 예술로 표현하기 위한 개념적인 길이다.
전 세계가 코로나(Covid-19)로 인해 고통을 받는 지금, 나의 지리산 작업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흔히 우리는 지리산을 어머니의 산이라고 부른다.
어머니가 자식을 품어 주듯 지리산이 동시대의 예술을 품어 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비대면 사회, 초연결성, 공유 네트워크, 스마트 시대를 모두 품을 수 있는 그런 <지리산 예술길>을 만 들고 싶었다.
2년 전 을지로 작업실에서 유튜브로 영상을 보기 위해 빔프로젝터를 켜고는 커피를 내리느라 전동 스 크린을 내리는 것을 깜빡했다. 그 순간 빔프로젝터에서 투사된 자동으로 바뀌는 배경화면이 전동 스 크린 자리에 걸려 있던 지리산 작품과 오버랩되었다. 잠시 후 오로라 배경화면이 지리산과 오버랩되 는 순간 환상적인 풍경이 만들어졌다. 그때 뭔가 재밌는 작업이 될 것 같다는 직감이 왔다.
그래서 유튜브 영상도 지리산과 오버랩을 시도해 보니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매칭되는 느낌이 들 었다. <지리산 예술길> 작업의 아이디어는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지리산 예술길에서 가장 중요한 컨셉은 고정된 형식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소리나 음악, 유튜브 영상을 자유롭게 활용하면서 맞춤형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품의 액자 전면에는 ‘한지에 프린트한 지리산 사진’이 있고 후면에는 소리에 반응해서 빛이 변하는 ‘스마트 LED’가 탑재되어 있다.
작품의 앞쪽에는 빔프로젝터를 설치하여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영상을 투사할 수 있다. 관객이 직접 소리나 음악을 들려주고 작품의 색상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유튜브 영상으로 오버랩해서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관객이 직접 제작한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서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가능하다. 코로나 시대의 지친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지리산 예술길>로 산책을 떠나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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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01108-임채욱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