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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야투자연미술국제레지던스프로그램 성과보고전
그린스펙트럼
고요한 · 고재선 · 류지남 · 리혁종 · 이준기 · 이진이 · 임혜옥
연미산자연미술공원
2020. 10. 24(토) ▶ 2020. 11. 30(월)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연미산고개길 98 | T.041-853-8828
고요한作_나무_플라타너스_Φ130x800x200cm_2020
2020 야투자연미술레지던스프로그램 읽기
‘야투野投’로 상징화된 이번 『그린스펙트럼』은 금강과 연미산 일원에서 펼쳐지는 설치, 드로잉, 퍼포먼스 등 현장 중심의 미술행사이다. 인간이 자연과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상생하면서 ‘다양성’과 ‘회복’, ‘희망’의 메시지를 주제의식으로 표명한다. 이번에 출품한 레시던시 작가들의 작품 7점을 보며 문득 칸딘스키의 말을 되살리고 싶다. “예술은 사실적 세계와 병행해서 외적으로는 사실주의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낸다. 그러나 그것은 내적인 면에서 우주법칙에 종속한다.”(칸딘스키 『20세기』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인용)
류지남의 ‘숲’을 보면서 자연의 언어와 시어, 그리고 미술작품이 전하는 언어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자연은 고유한 소리를 일으키고, 그 소리들이 인간의 삶에 작동하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바람, 햇살, 달빛, 동물들이 내는 소리, 나무, 풀들이 내는 소리들은 음악의 곡조와 악기의 화성, 인간이 발성하는 음소로 정확히 모방하기 어렵다. 낱낱의 기호만으로는 자연이 지닌 서정에 빠져들게 할 수는 없다. 그것은 예술 행위를 통해서만 가능한데, 소리의 결합을 통해 이룬 내적 가치의 동조다. 사실의 개체와 현상에서 울리는 공감을 운율과 시어의 이미지로 적절하게 구성하는 이른바 시어들의 조합이다. 임혜옥의 ‘천 년의 시간 속으로’는 피사체가 지닌 순간의 현상을 포착하고 피사체들의 내적 가치를 현묘한 색과 음향의 조합을 통해 영적인 영역으로 확장하고 작동하는 원칙을 찾아내려한다. 피사체에서 유추한 자유로운 발상을 낱낱의 사진 작품들의 조합을 통해 ‘생성과 소멸’이란 기저를 드러내어 인간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여 유의미하다.
고재선作_공존의시간_옹기토, 테라코타_80x75x120cm_2020
자연의 실체에 대한 탐구는 존재의 의미에 다가서려는 노력과 다르지 않다. 존재하는 것의 가치와 실체는 시대의 과제를 담고 있고 모순적인 충돌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고양한다. 단순히 모방과 재현으로 그친다면 원숭이들의 광대 짓으로 폄하되기 십상이다. 리혁종의 ‘2020 터닝포인트’는 자연의 숭고함에도 불구하고 산업화에서 비롯된 풍요로운 물질주의와 합리적인 지식을 앞세웠던 인간의 허위의식을 까발리고 한꺼번에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촉구한다. 이는 어떤 활달한 웅변보다 강렬하다. 둥그렇게 가공되어 산업사회를 표방한 금속폐기물을 받침으로 제시한다. 버려졌던 그 폐기물 위에 올라서서 현대인들이 코드화한 모바일 네트워크 속의 자신의 현실과 가능성의 세상을 되돌아보라는 날카로운 변성이다. 인간의 허위의식에 대한 되돌아보기는 고요한의 작품 ‘나무’에서도 절실하다. 되돌아보는 행위는 상생으로 가기 위한 공조과정이다. 고요한의 작품은 스러진 자연물에 수없이 못질을 수행하는 퍼포먼스가 동반된다. 작가는 평범할 수 없는 인간으로 결국 고뇌의 주체이고 수행자다. 인간이 벌이는 행위적 변형과 자연 그대로인 존재의 변형을 보여주는 행위는 사유의 적막을 깨는 일탈이다. 이 퍼포먼스는 고요한의 영적 바탕에서 우러나는 실체인 까닭으로 고요한의 감정은 관람자에게도 유사한 감정으로 전이되기 마련이다. 관람자들은 그의 작품 앞에서 고통 받고 신음하는 물상에 대한 인식을 통해 자신이 지닌 통증의 근원도 되돌아보게 된다. 이러한 교감은 관람자의 서정을 깊고 깨끗하게 치유한다. 이진이의 작품 ‘생동’은 자연 그대로의 실체와 가공된 자연, 인위적인 행위들의 조화와 어울림을 보여준다. 이 작품 앞에 선 아이들은 둥글게 가공된 드로잉들을 돌려보고 싶은 충동으로 주변을 살피거나 부모의 손을 이끌려할 것이다. 이는 굴렁쇠를 돌려본 경험에 기인한다. 무감각한 것처럼 보이는 대상에서 따스했던 기억을 되살려 가공된 삭막함을 이기고 동적인 세상으로 대상과 자신을 이끌어 훈훈한 이야기로 풀어낼 것이다. 이진이는 한 걸음 더 내딛는다. 한 공간에 멈추지 않고 고개를 숙여 내려다본 땅위에 놓은 또 다른 실체를 통해 정형화된 공간화가 아닌 파격의 양상을 제시한다. 변주곡이 아닐 수 없다. 작가의 놀라운 예지를 느끼게 한다.
류지남作_숲_대나무_300x300x500cm_2020
그린스펙트럼에 출품된 작품들은 고정된 관념에 대한 의문을 제시한다. 인간들이 세운 울타리는 견고하다. 울타리 안에 안주한 인간들은 더 이상 불안하지 않다고 여긴다. 심지어 그 안에서 앉아 서로 견고한 교리문답식의 반복을 통해 마치 영원한 진리를 얻은 듯 생각한다. 예술은 그 울타리를 벗어나는 일탈을 통해 자유로운 새 세상을 이끈다. 자유롭다고 불편하거나 불안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불편함과 불안은 새 기저로 나가는 변곡점이 되기도 한다. 고재선의 ‘공존의 시간’은 인간의 근육과 나무줄기의 견고함을 통해 실체를 드러낸다. 다만 그 실체는 미적 실체가 두드러진 조각상을 거부한다. 반수반인의 결합은 신화적이다. 문득 연미산에 엄존하는 신화의 주인공은 곰인 까닭으로 그의 작품은 매우 근원적이다. 더구나 그 결합은 흙으로 빚어낸 구조물을 분해하고 그 조각들을 불로 구워 만든 벽돌의 재조합으로 구성된다. 흙으로 빚어진 실체를 불로 태워 새로운 실체를 생성하는 과정은 창조론에 의지한다. 물신론은 자연숭배의 기저에 자리 잡았고 그 위력과 감추어진 진실은 위태로울 수 있다. 불로 재현된 실체는 그 형상이 작가의 의도에 부합된 것인지 되돌아봐야 한다. 이는 참으로 돌발적이고 불편하다. 그렇더라도 일탈에서 비롯되는 우연은 또 다른 근원적 되돌아보기라고 할 것이니 기대감으로 벅차다. ‘관념의 해체’라는 표제를 담고 있는 이준기의 도예들도 그릇이 지닌 실용성을 벗어나려는 시도에서 출발하여 위태롭다. 찢기고 흐트러져 변조된 그릇을 보는 관람자들은 불편하지만 예술적 독특성을 찾으려한다. 관람자들은 독특성을 합리화시키는 시도에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그릇은 실용적일 것이란 고정관념에서 좀처럼 벗어나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태연하다. 의도적이기 때문이다. 이미 작가는 불편함과 불안의 변곡점에서 새로운 가치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의 아이러니다.
『그린스펙트럼』 2020 야투자연미술국제레지던스프로그램에 참여한 작가들의 작품들은 다양한 경험세계를 근간으로 풍부하게 변주될 수 있는 자유로움으로 나가고 있다. 새로움을 갈망하는 작가들의 시선은 일상성을 벗어나고자 하는 불편하고 불안한 시도를 멈출 수 없다. 가능성은 새로움을 이끄는 궁극적인 기제가 된다. 또한 즐거운 상상과 행복한 미소를 볼 수 있는 작품들에서 금강을 품는 연미산의 유연함과 자연미술의 넉넉함을 만날 수 있다.
김홍정 소설가
리혁종作_터닝포인트_가변설치, 인근에서 수집된 알루미늄 원반, 금강변 강돌 위에 큐알링크_Φ80x3cm_2020
이준기作_흙, 물, 그리고 나_판성형, 1230도 산화소성, 혼합토, 화장토, 철안료, 튜명유_52x56x22cm_2020
이진이作_생동_나무, 페인트_35x357x38cm_2020
임혜옥作_천년의시간속으로 - 연미산에서 곰나루까지_사진, 영상_56x56x180cm_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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