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혜영 展

 

TIME OF EVENTS

 

 

 

갤러리도스 본관

 

2020. 6. 17(수) ▶ 2020. 6. 23(화)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7길 37 | T.02-737-4678

 

www.gallerydos.com

 

 

다음이 무엇이든

 

너무도 당연히 여겨지기에 이해와 의문조차 떠올리지 않던 보통의 지식과 같이 우리는 모두가 알고 있다고 여겨지기에 다잡지 않았던 암묵적 규칙에 대한 혼란스러운 의문이 피어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파격이라는 키워드는 새로운 기술과 시대를 받아들이기 위한 바람직한 자세처럼 불렸고 일상에 쓰이는 사물과 기술은 상식을 깬다는 문구로 광고되고 있다. 새로운 물을 담기 위해서는 기존의 물을 비워야한다. 동시대 유행에 더 걸맞고자 한다면 그릇을 부수고 다른 용기를 보여주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상식이 무너지는 찰나의 정지된 순간은 정교한 의도와 자본으로 완성된 뮤직비디오의 장면처럼 달콤해 보이지만 애석하게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상식이 깨어질 때 불쾌감과 불편을 느낀다.
맹혜영은 자신이 당연히 여기던 크고 작은 믿음이 깨어지는 상태를 그린다. 작가의 마음과도 같은 화면에 흩뿌려진 잔해들의 원래 모습은 굳건한 벽을 지닌 안식처 혹은 신념이었을 것이다. 일상에서 가벼이 스쳤던 관계와 애정이기도 하며 내색하지 않고 마음속 구석에 지니고 있던 동심이나 털어놓기 부끄러운 소망일 수도 있다. 한 때는 저마다의 쓸모를 지녔지만 지금은 역할을 잃어버린 흐릿한 사물들은 더 이상 받지 못하는 주의 깊은 관심만큼 빛바랜 채 침적되어 가고 있다. 각각의 형태가 뭉쳐진 모습은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면 희극처럼 알록달록하고 친숙한 꽃잎이 배치된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볼수록 폐기물과 오물이 드러난다. 곳곳에 보이는 사물은 역할과 용도가 있었음을 유추 할 수 있다. 그 익숙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어떤 사건으로 인해 무엇을 상실하고 이렇게 버려졌을지 나름대로의 줄거리가 있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하지만 작가가 주목하는 순간은 그러한 이해 타산적이고 논리적으로 다가설 때 드러나는 지점이 아니다. 주관의 붕괴는 사람으로 하여금 두려움과 근접한 당혹감으로 차후의 행동에 지장을 주고 쫓기는 듯한 압박감으로 휘감지만 그 지독함은 최면을 걸 듯 허탈한 해방감과 함께 마음을 비워버리기도 한다.

웅덩이에 투기된 듯 가라앉거나 부유하는 형상들은 관객의 시선을 공황 상태의 눈동자처럼 어느 한 곳에 안정적으로 유도하지 않고 불안하게 분산시킨다. 무언가의 부속이거나 유기체 기관의 일부였던 이미지들은 과거의 능동성을 잃어버리고 지나가는 무심한 힘에 의해 위치와 존재가 결정될 수밖에 없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을 겪으며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 수동적으로 변화된 상태는 당사자의 상실감을 개의치 않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작품 속의 이미지들은 동화의 삽화처럼 낭만적이고 투명한 색감으로 그려졌다. 동시대적 이미지를 담고 있지만 장지에 먹과 분채라는 전통재료가 사용된 부분 역시 의외성을 더한다. 쉽게 수정할 수 없는 재료적 특성은 작품을 진행하는 매 순간 마다 작가를 신중하게 하지만 그럼에도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우연성이 있다.

지니고 있던 것이 부서지고 새로운 자극을 받아들임으로 비롯되는 충격은 자신에게 균열을 일으키지만 성장의 계기가 되는 쓰라린 연고일 수 있다. 맹혜영은 굳어버린 사람의 탄식에서 새나온 입김이 남기는 짧은 습기처럼 지나치기 쉬운 복잡한 사람의 마음을 그려낸다. 불편함이 발려진 채 연하고 부드러운 부분만 남은 계산적으로 선별된 파격이 아닌 다음 순간이 지닌 불확실성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표정은 개인의 이야기이지만 주변의 세상이 지닌 모습이기도 하다.

 

갤러리 도스 큐레이터 김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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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00617-맹혜영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