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연 展

 

Flashbulb Memory

 

 

 

021갤러리

 

2020. 4. 25(토) ▶ 2020. 6. 12(금)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345 | T.053-743-0217

 

https://021gallery.com

 

 

섬광기억 #2_피그먼트 프린트_143x245cm_2017

 

 

개념어 사전 (2014)

이번 작업을 시작하기 전, 한 줌의 종이에서 존재가 드러날 때의 순간들을 사진으로 담아 왔다. 이를 통해 한정된 대상에 대해 사유가 확장되는 즐거운 경험을 했다. 그리고 이를 개념어라는 관념적 설정에 담아 좀 더 넓은 의미의 토대에서 재구성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삼백 가지가 넘는 마음의 낱말을 모아서 수첩에 적었다. 미세한 차이를 지닌 낱말까지 적어 두자니 노트 한 권을 훌쩍 넘는 듯했다. 그리고 나서 폐지 처리장에 버려진 사전들을 수집했다. 유용성이 소진되어 폐지로 버려진 사전을 보며 가능적이고 지시적인 본래 역할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사물이 도구의 용도로 파악되는 한 그 사물은 눈앞에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도구의 존재감을 눈앞에서 강렬하게 느끼는 것은 그 도구가 망가졌을 때 뿐이다. 편안한 신발은 신지 않은 것처럼 여겨지고, 고분고분한 연인은 나와 다른 존재로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를 둘렀나 것들은 그 쓰임을 충실히 이행하고 신뢰도를 최대화해야만 ‘사랑스럽게 눈앞에 없는’것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도구의 방식으로 눈앞에서 사라진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중요해 보였다. 나에게 사진은 눈앞에서 사라진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중요해 보였다. 나에게 사진은 눈앞에 없는 것들의 ‘존재의 증명’이기 때문이다.
이런 개념을 정리하며 ‘개념어사전’을 만들어 본다. 이 단어들이 타인이 잃어버린 인상의 조각일 확률은 극히 작지만 그 확률에 자신을 걸고 불가능성에 자신을 건다.

 

 

섬광기억 #3_피그먼트 프린트_143x225cm_2018

 

 

고고학 (2015)

이 작업은 사후 세계에 대한 엉뚱한 상상에서 비롯됐다. 내가 상상하는 사후 세계는 가벼운 신비의 놀이터다. 그곳에서는 모든 사물이 손 안의 친근한 도구가 아니라 새로운 유쾌함과 명랑함을 유발하는 낯선 쓰임을 가지고 등장한다. 이 신비한 놀이터에는 관광객이나 술주정뱅이 같은 엉뚱한 존재들이 어슬렁거린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자기 자신을 잃는다.

작업은 작은 삽을 구입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일을 마친 후 작업실로 돌아와 삽을 들고 개와 함께 작업실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그리고 고고학자가 된 것처럼 진지하게 땅을 파고, 발견한 사물들을 테이블에 놓고 관찰했다. 주택가 땅 밑에는 스티로폼, 컴퓨터 부품, 캔 등 고만고만한 물건들이 숨어 있었다. 사물의 효용성에 무심한 채 그 효용성을 제외한 다른 가능성을 탐색하는 데 집중했다. 나는 기능이 퇴화한 사물을 붙잡고 거기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싶었다. 작업을 진행하며 이러한 행위들은 나에게 커다란 유혹이자 동시에 위협이라고 생각했다. 삽질을 한다는 것은 이미지를 열어젖히는 행위인 동시에 메우는 행위다. 이제는 이미지를 기능으로 수단화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려는 점에서 저 유혹과 불안에 더 직접적으로 노출되었다.

삽 대 인간, 누가 묻힐 것인다.

 

 

섬광기억 #5_피그먼트 프린트_170x133cm_2018

 

 

섬광기억-여름방학 (2018)

나는 유년기를 인적을 찾아보기 힘든 서울의 변두리에서 보냈다. 집 근처에는 작은 헌책방이 있었다. 나는 주로 그곳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열두 살의 여름방학에 아버지는 헌책방에서 사 온 책들로 집의 지하실에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 주었다. 그 지하실은 작은 세계 같았다. 완벽하고 독립적이고 투명한 작은 세계. 그곳에서 나는 책 속의 모든 언어가 합쳐진 하나의 단어를 상상하곤 했다.

여름방학이 끝나던 날에 폭우가 내렸다. 보름달의 달무리가 불안한 암호처럼 푸른빛 동그라미를 그리던 밤이었다. 비는 나흘간 쏟아졌고, 한강의 둑이 넘치며 홍수가 일어났다. 학교는 며칠간 휴교 되었고, 나는 지하실에 빗물이 빠져나가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최대한 숨을 죽이고 어깨를 웅크린 채, 얇고 거대한 한 꺼풀의 세계가 어둠 속에 삼켜지고 있다고 느꼈다. 지하실의 물이 다 빠지자 나는 넋을 빼앗기고 말았다. 책의 안쪽에서 고요히 새어 나오는 먹색 어둠들, 겹겹이 쌓여 있는 수백 장의 종이들, 문장이 물고기처럼 토막 나서 비늘 같은 조사와 어미들이 떨어져 나와 나의 눈 속에 박혔다. 최대한 책을 건져 냈지만 문장의 세부를 읽지 못했다. 형상과 단어들은 덩어리로 뭉개져 있었고 읽기는 오직 상상의 힘으로만 가능했다.

나의 여름방학은 어둠이 흥건한 나무 냄새와 곰팡이 냄새 물 비린내로 범벅이 되어 있다. 서늘하게 젖은 공기, 흥건히 젖은 어둠, 나무의 수액 냄새가 진하게 번져 있는 캄캄한 잡풀 속에서 밤새우는 풀벌레들. 이 이미지들 속에서 내 유년은 금이 가며 흩어졌다가 가까스로 모아지며 흘러갔다. 그토록 찬란한 이미지들로 이루어진 세계를 그 후에는 경험하지 못했다.

 

 

섬광기억 #9_피그먼트 프린트_105x145cm_2018

 

 

섬광기억 <콩나물> (2019)

그 개와 처음 만난 건 열한 살이 시작되던 초여름이었다.

동네에는 밤나무 숲이 있는 작은 동산이 있었다. 이곳은 늘 온갖 쓰레기와 공사장의 버려진 스티로폼이 즐비한 곳이었다. 땅거미가 내려앉으면, 동네 주민들이 쓰레기와 먹다 남은 음식을 그곳에 버렸다. 그러다가 밤이 깊어지면 쿵쾅거리며 나타난 쓰레기 차가 쓰레기를 치운 뒤 곧 떠났다. 나는 그곳을 아무 목적 없이 어슬렁 거리기를 좋아했다.

어느날 마른 개 한 마리가 산을 가로질러 내려와 쓰레기장 근처를 서성거렸다. 여러 피가 섞여 정확히 어떤 종이라 말하기 어려운 작고 흰 개였다. 개는 네발로 꼿꼿이 선체 날 뚫어져라 응시했다. 살짝 경계하는 눈치나 힘이 없었다. 흰 개는 나의 주위를 빙그르르 돌며 몸 냄새를 맡았다. 그러곤 뭔가 결심한 듯 나의 손바닥에 코를 대고 킁킁대다 혀를 내밀어 핥았다. 나는 녀석에게 콩나물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콩나물은 쓰레기장 근처의 나무 아래에 살고 있었다. 그곳에는 움푹 파인 흙구덩이가 있었고 구덩이의 입구는 밤나무 잎으로 덮여 있었다. 건조한 흙 구덩이 속에는 어린 강아지 두 마리가 숨어있었다. 나는 매일 그곳을 들려 개들을 살폈다. 가끔 녀석들이 자리에 없어 당황하긴 했지만, 흙 구덩이 속에 먹을 것들을 남겨 두었다.

여름이 끝나 가던 9월 비가 내렸다. 형은 태풍이 오고 있다고 했다. 꽉 찬 달이 검고 뭉클뭉클한 구름장 속으로 멈칫 몸을 감췄다가 드러내길 반복하며 밤새 비가 내렸다. 나는 그날 밤, 흙 구덩이 속에 있던 콩나물과 새끼들이 버려진 하얀 스티로폼을 타고 쓰레기장을 탈출하는 꿈을 꾸었다.

이른 아침 해가 떠오르고 날이 개었다. 나는 쓰레기장으로 뛰어갔다. 머리 위로 겹겹이 걸린 파란 밤나무 잎은 여전히 아름다움과 정적에 싸인 채 소리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곳에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콩나물이 살던 흙 구덩이 속으로 손을 집에 넣었다. 순간 물컹하고, 차갑고 뜨뜻 미지근하고, 간지럽고 부드러운 무언가가 나를 훑고 지나갔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나는 내 손바닥을 가만히 내려봤다. 손에 엷은 물자국이 남아 있었다. 동시에 나의 내면에도 묘한 자국이 생겼는데 나는 그게 뭔지 몰랐다.

 

 

고고학 #1_피그먼트 프린트_105x135cm_2015

 

 

북한산 (2019)

2015년 결혼을 하고 일산에 신혼집을 얻었다. 나는 새 작업을 위해 집 근처의 북한산에서 장기간에 걸쳐 야생초목을 관찰했다. 생태학자가 된 것처럼 일주일에 4~5일 산으로 들어가 풀과 나무의 동태를 살폈다. 자연종의 변화는 상당히 단조롭고 느리게 일어났다.

어느 날 우연히 북한산 근처에서 돌아다니던 들개 무리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그들을 조용히 그리고 자세히 관찰하였다. 점차 시간이 지나며 개들은 나를 나무 보듯, 자신을 해치지 않을 산속의 또 다른 친구를 보듯 받아들여 주었다. 비봉의 흰다리, 족두리봉의 검은입, 숨은벽의 뾰족귀. 이 무리는 지금도 북한산을 오르며 저들끼리 으르렁거리다가 쫓고 쫓기다가 바위 위 낭떠러지 비탈에 서 있다.

도시의 들개 문제는 주로 재개발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했다. 주택가의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이주하는 사람들이 버리고 간 개들이 골목을 가득 채웠고, 순식간에 반려견에서 유기견이 된 개들은 거리를 떠돌았다. 이 중 많은 수가 개장수에게 잡혀가고, 가까스로 개장수를 피한 개들도 굶어 죽거나 질병으로 죽고, 추위를 견디지 못해 동사하거나 차에 치여 죽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남은 개들이 생존을 위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긴 산으로 들어갔다.

북한산 들개가 본격적으로 사회 문제로 대두된 건 2010년 이후이다. 간혹 산을 찾는 사람들의 눈에 띄던 들개가 서울 북한산 주변 지역을 중심으로 증가하면서 민원도 증가했기 때문이다. 등산로나 산 주변 주택가에 들개가 나타나면서 사람들이 위협을 느끼고 신고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서울시는 2012년 진행된 은평구의 대규모 재개발 사업을 최대 원인으로 꼽는다. 재개발로 버려진 개들이 북한산으로 유입되고, 짝짓기하면서 개체 수가 증가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2012년 이전에는 북한산 국립공원에서 자체적으로 들개를 포획하다가 민원 증가로 2012년부터는 서울시가 포획하고 있다. 포획 들개 수는 2010년 9마리였던 것이 2012년부터 100마리 이상으로 급증하여 2017년까지 포획된 들개 수는 700마리에 육박한다. 현재 북한산에 남아있는 들개 수는 서울시 추정 50여 마리이다. 나는 이 남아있는 북한산 들개들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들개는 생태학적으로 뉴트리아나, 황소개구리, 배스와 같이 외래종으로 분류된다. 외래종이 들어와서 고유종을 잡아먹고 고유종의 개체 수를 감소시키기 때문에 생태계 교란종으로 취급해 배스나 블루길을 잡아내는 것과 같다. 포획된 들개를 기다리는 건 죽음뿐이다. 암묵적이지만 잡힌 들개는 눈앞에서 죽이지 않을 뿐 대부분 죽는다. 북한산의 개들은 인간과 함께 한 공간에 살고 있지만 사실상 함께 살지 못한다. 관찰을 하면 할수록 이 산의 풍경은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풍경은 기만적일 수 있다. 종종 풍경은 거기서 살고있는 생명의 풍경이 펼쳐지는 무대라기보다는 하나의 커튼처럼 보인다. 그 뒤에서 살아남기 위한 투쟁 성취 그리고 그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는 커튼.

 

 

개념어사전 #연보_피그먼트 프린트_105x105cm_2014

 

 

북한산 #검은입 1_피그먼트 프린트_90x135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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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00425-권도연 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