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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민 展
간극, 배출, 축척
팔레 드 서울 B1
2020. 3. 31(화) ▶ 2020. 4. 5(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통의동 6 이룸빌딩 | T.02-730-7707
거대한 힘과 작은 힘의 간극, 탄생이 있다면 죽음이 있는 것, 축척되는 역사, 시장논리 등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필연적으로 이러한 것에 대해 자연스럽게 놓이게 되는 존재이며 목격하고 경험한다. 이러한 것들은 불가피한 것이다. 이 중 죽음과 폭력은 사전적 의미로써 생물학 적인 관점에서 생물이 더 이상 생식 활동을 하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것, 물리적 힘 또는 언어로써 타인을 제압하고 힘으로써 억누르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들은 사회에 있어서 여러 요소들이 결부되어 있는 복잡한 것들을 내포한다.
이 중 폭력은 사회뿐만 아니라 그것을 맞이하게 된, 맞이하게 될 인간에게 슬픔, 공포, 불안, 분노 등 복잡한 감정과 그로 인해 발현되는 여러 정신 작용까지 불러일으킨다. 때에 따라 정신 작용들은 상황과 개인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은 신경질적인 표현, 우울감, 눈물, 하소연 등 외부로 배출함이 그 예이다. 이러한 배출 과정 중 우리는 당시 경험에 대해 끊임없는 생각을 재구성하며 심지어 되풀이하기도 한다. 이러한 배출은 의식적이긴 보단 무의식적으로 배출되는 경우가 많다.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ba, 1947~)는 이러한 것에 대한 사유를 함으로써 철학적 개념을 만든 인물이다. 그녀는 <공포의 권력>에서 아브젝트(abject)와 아브젝시옹(abjection)을 제시한다. 바깥의 요인으로 인해 공포와 불쾌감, 혐오, 위기감 등을 일으키는 것들을 아브젝트로 칭하는데, 이는 대상이 아닌 성질 자체를 뜻하며 아브젝트에 의해 유발되는 반응을 아브젝시옹이라는 것이다. 아브젝시옹은 위에서 언급한 아브젝트라는 위협을 추방하기 위해 행하게 되는 구토, 괴성 같이 배설, 배출함이다. 우리가 아브젝트에 대해 아무렇지 않은 감정을 지니고 있다면 아브젝시옹은 발현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브젝트가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기에 아브젝시옹이 발현한다는 것이 주목해야 할 점이며, 아브젝시옹의 성립 조건이기도 하다. 여기서 매력은 도덕적, 사회적 금기의 상징체계이다. 이를 알면서도 그 가치를 부정하는 상태가 크리스테바의 주장이다.
이 개념들은 공포스럽고 불쾌한 것들이 느닷없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으로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가 제시한 익숙하고 친숙한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이질성을 띠고 다가와 섬뜩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낯익은 두려움(uncanny)’과는 반대되는 뜻이 되면서도 종속적인 뜻 또한 내포하고 있다. 사회에 있어서 폭력이라는 형태는 아브젝트에 속하는 것이다. 본인은 인간관계에서 신체적, 언어적 폭력이라는 경험을 하였다. 이는 개인에게 트라우마를 생성하게 한 요인과 동시에 당시에 본인은 멜랑콜리에 빠지게 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이는 작품을 제작하는데 있어 동기 부여로 작용한 것이기도 하다. 경험에 있어 폭력은 아브젝트이며 이후 균열되는 아브젝시옹 또한 발현하게 된다.
아브젝시옹이라는 균열의 틈에서 나는 포함되지 않았으리라 여겼던 아브젝는 자본주의라는 범위에서 내에선 스스로 또한 아브젝트였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육고기를 소비하고 섭취하는 과정, 인간이 만든 도구와 폭력적인 힘으로 인해 끊임없이 신체의 분리와 죽음을 겪는 동물들을 묵인함이 그 예이다. 이는 공포와 혐오 그 이상의 복잡하고 언어로서 설명되기 힘든 복잡하고 다중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타자의 아브젝트와 발견과 함께 본인의 아브젝트 또한 드러남은 타자와 주체는 분리되는 것으로 여겼으나 그것은 결국 구조에서 만들어진 분리인 것이다. 이는 본질적으로 타자와 주체는 모두 동일한 아브젝트이며 타자 또한 주체와 동일한 대상인 것을 내포한다. 아브젝트와 아브젝시옹은 배출해야 할 것이나, 이는 주체가 지니고 있어야 하기도 한 모호하고 양면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이다. 커다란 구조의 맥락에서 본인은 지금도 아브젝트를 지속해서 만들어 낼 것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생성시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생성되는 아브젝트들은 어떠한 대상에게 아브젝시옹을 발현하게 하는 제공자가 될 수 있다. 본인은 과거에 생성 하였던 아브젝트와 아브젝시옹, 이를 경험했을 불특정 대상들을 자전적 사건에서 찾으며 본인으로 인해 아브젝트와 아브젝시옹을 경험했을 대상들 개별에게 구도자가 수련 행위를 하듯, 작품에 있어서 반복적인 표현을 집약적으로 사용하여 표현한다.
이는 폭력과 소멸을 경험하는 상황과 함께 그 상황에 놓였던 대상에 대해 위로하는 행위이며, 소멸을 경험한 뒤 사후의 세계에서는 폭력과 죽음을 당하지 않기를 염원하는 태도가 내포되었음을 상징한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작업의 형식이 자전적 이야기에서 출발하는 대상에 대한 애도와, 아브젝트라는 것의 본질에 몰입함인 것이다. 또한 작품을 드러내기 꺼려지는 것을 시각화함으로써 작가의 발목을 잡고 있던 감정적 사고를 정면으로 대면하게 되는데, 이는 오히려 이성적 사고를 전환하게 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결국 본인에게 작업 행위 자체는 자각하게 하는 장치이며,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과 내적 치유라는 것의 기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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