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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중 展
Natural Being
아트비트 갤러리
2020. 2. 26(수) ▶ 2020. 3. 17(화)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3길 74-13 | T.02-738-5511
색면회화의 깊은 울림
장동광(큐레이터, 미술평론가)
김근중의 근작들을 청람(淸覽)하러 양평 청계리 산속 기슭에 자리한 작업실 가는 길에는 나뭇잎을 떨구어 낸 나무마다 겨울의 스산한 태세들이 가득했다. 필자는 그날, 작업실에서 정제된 색조 그러나 마음의 표정을 오롯이 담고 있는 다채로운 빛의 바다를 보았다. 대체로 청색, 보라색, 노란색, 붉은색 등으로 조율된 화면들은 미묘한 환영성을 창출하면서 나의 비평적 시선을 고정시켰다. 형식적으로 볼 때, 그의 이번 근작들은 가로줄의 부조적 겹침들이 빚어내는 시각적 환영성과 마치 하늘 혹은 우주 속에서 내려다 본 지표면의 흔적과 같은 형상들이 포치된 가시성/불가시성에 관한 중층적 구조화로 함축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이러한 표현형식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려는 주제의식(subject matter)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우리 마음속에 흐르는 변화무쌍한 색(色)의 세계, 즉 삼라만상(森羅萬象)의‘은유적 드러냄(metaphoric revelation)’이라고 말하고 싶다. 여기서 은유적(隱喩的)이라 한 것은 사물의 상태나 움직임을 암시적(暗示的)으로 나타내려는 문학적 표현을 지시하는 것인데, 김근중의 근작에서의 은유는 이러한 암시의 극단을 넘어서 관객들로 하여금 다양한 해석가능성의 지평을 향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무엇보다 ‘본다’는 주체를 염두에 둔 오브제의 제시로서의 회화인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는 연금술사처럼 물질적 질료를 예술적 대상으로 전환시켜 어떤 초월적 사유의 길로 열고 들어서게 하는 유혹의 지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하나의 도표로 압축하자면, [작가의 세계관의 표상화-은유된 오브제로서 작품-관객의 다기한 해석가능성]이 하나의 순환적 체계를 이루면서 상호작용을 가능케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상호작용을 가로지르는 작가와 관객과의 약속된 언어 혹은 사유의 오아시스는 각기 다른 자아(自我)의 이데아(idea)로의 항해지도이며, 내면을 향한 관조성(觀照性)으로의 권유(勸誘)라 달리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앞서 언급한 비평적 표현 중 ‘오브제의 제시’라 말한 것은 그의 근작들이 수많은 덧칠 혹은 겹겹이 부착한 거즈의 응결된 집합체로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 질료들의 가시성은 직관적으로는 색채의 향연으로 읽혀지지만,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은 수많은 덧칠된 색면의 레이어(layer)가 은닉되어 있다. 필자는 이를 축적된 시간의 다층성(多層性) 혹은 이미 지나간 과거의 부재증명이라 본다. 다시 말하자면 김근중은 우리의 현재는 흘러간 과거의 수많은 사연, 서사, 사유들이 표면화되지 못하고 ‘오늘(aujourd'hui)’이라는 존재성의 현존(現存) 혹은 표상(表象)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맥락에서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가《다른 곶(L'Autre Cap)》에서“새로운 곶이란 끊임없이 미끄러지면서 시간 속으로 그 모습을 다르게 드러낼 수밖에 없는 하나의 기호이며 상징이며 차연(差延, la différence)이다”라고 한 언급은 김근중의 근작과 관련하여 참조할 가치가 있다. 데리다는 나아가 우리의 곶(notre cap)을 넘어서 곶의 다른 곶(l'autre du cap)을 향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심지어 반대편 곶(anti-cap) 혹은 탈곶화(décapitation)의 형식, 기호 혹은 논리에도 따르지 않는 타자와의 어떤 동일성 관계까지도 도달해야 한다.”고 했다. 데리다는 이 책에서 유럽중심주의의 한계와 모순을 직시하면서 ‘오늘, 당신은 무엇을 하실 겁니까?" 라는 질문을 던지며 결국 <나>는 매일 어제와 다른 오늘의 <나>에 의해 변별되고 또한 타자들과의 차이를 통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나>를 김근중의 회화작품에 자연스럽게 대입한다면, 그의 작품은 결국 새롭게 그려진 작가인 <나>의 기호이며 상징이며 차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작품들이란 새로운 혹은 다른 곶을 향한 끝없는 내면의 소리인 셈이며, 우리는 그 작품이라는 물질적 표상 앞에서 그 개별적 차이의 근거들을 음미하는 것이 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김근중의 근작들은 "Natural Being" 즉, “존재란 무엇인가?”에 대한 회화적 사유의 또 다른 화신(化身)이자 이전의 곶을 벗어나 다른 곶을 향한 끝없는 항해라 할 것이다.
김근중의 근작들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중국 돈황 막고굴 벽화에 매료되어 천착했던 미니멀적 형식들을 재소환하면서도 새로운 변주(變奏)를 시도한 것이다. 그가 작업노트에서 스스로 회고했듯이, 수묵풍경(1987~1990), 전통벽화의 재해석(1990~1995), 벽화의 미니멀적 시도(1996~2005), 모란의 현대화(2005~2014), 모란 및 꽃의 추상화(2014~현재)로 이어져 온 변주성의 산맥 속에서 배태된 것이다. 그러나 비록 회화적 문법이 달라졌을지라도 그의 평생 화업의 화두인“Natural Being" 이라는 기표(記標)는 대하(大河)의 숨결처럼 흐르고 있다. "우리는 과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그의 근작들은 이러한 화두를 품은 채, 보이지 않는 수많은 색면의 층위들 위로 마침내 정착한 마지막 색조로 우리들을 향해 묻고 있다. 세상의 삼라만상 역사 이래로 유전(流轉)해 온 우리 인간사의 궁극적 극락정토(極樂淨土)가 어디냐고. 그것은 당신의 이전과 이후를 통괄한 마지막의 ‘오늘’그 태어남도 사라진 바도 없는 무극(無極)의 경지에서 찾으라고. 김근중은 이러한 화두를 금강경(金剛經)의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마땅히 머무는 바가 없이 그 마음을 내어라)’에서 이끌어 내고 있다. 김근중의 근작들은 변화하고 생멸하는 인간의 필연적 존재성, 번뇌와 의문으로 가득 찬 자신의 삶에 대한 회화적 성채(城砦)들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그가 빚어내는 색면회화의 유연(幽然)한 향연 속에서 문득 자신의 존재이유를 깨닫게 된다면, 그 순간 우리는 사바(娑婆)의 세계 너머, 그 어떤 ‘다른 곶’에 당도해 있을지도 모른다.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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