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재준 展

 

달항아리, 담고 닮다

 

 

 

경인미술관

 

2020. 2. 19(수) ▶ 2020. 2. 25(화)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 10길 11-4 | T.02-733-4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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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항아리, '백범 김구 선생'을 담다

 

 

달항아리와 한 획

 

조선 백자대호(白瓷大壺)는 순백색의 바탕흙에 투명한 유약을 발라 구워 만든, 둥그런 보름달 모양의 항아리이다. 백자대호를 혜곡 최순우가 ‘달항아리’라는 멋진 말로 표현한 이래 지금껏 불리고 있다. 혜곡은 ‘달항아리’를 다음과 같이 썼다. ‘백자 달 항아리’라는 글의 한 부분이다.

 

“아무런 장식도 고운 색깔도 아랑곳할 것 없이 오로지 흰색으로만 구워 낸 백자 항아리의 흰빛의 변화나 그 어리숭하게만 생긴 둥근 맛을 우리는 어느 나라 항아리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데서 대견함을 느낀다. 이러한 백자 항아리를 수십 개 늘어놓고 바라보면 마치 어느 시골 장터에 모인 어진 아낙네들의 흰옷 입은 군상이 생각나리만큼 백자 항아리의 흰색은 우리 민족의 성정과 그들이 즐기는 색채를 잘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달항아리는 어떤 존재일까? 세계적인 도예가 버나드 리치는 달항아리를 구입해 가면서 “나는 행복을 안고 갑니다”라는 말을 남겼고,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릇”이라는 찬사를 남겼다. 가야금 명인 황병기는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 세계의 본질이 달항아리와 같아 공연의 주제를 ‘달항아리’로 정하기도 하였다. CEO 출신의 미술 애호가이자 수장가인 이우복은 새벽에 문득 달항아리를 향해 큰절을 올리고는 신령님으로 모셨다고도 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의 성화대는 달항아리를 모티프로 하였다. 화가 도상봉과 김환기는 이른 시기에 선각자적인 안목으로 달항아리에 빠져들어 달항아리 작가로 우리 미술사에 이름을 남겼다. 지금도 달항아리를 소재로 재해석하여 나름대로 자기 예술 세계를 일구어가는 작가들이 있다.

 

나는 분필(粉筆)을 잡는 시간이 많은 가운데, 모필(毛筆)과 철필(鐵筆)도 짬을 내 잡으며 동행해 왔다. 서화(書畵)를 통해서는 수묵(水墨)의 향기를, 전각(篆刻)을 통해서는 금석(金石)의 향기를 맡으며 왔다. 언젠가부터 항아리에 눈길이 가게 되면서 전시를 찾고 책을 통해 토기(土器)와 자기(瓷器)에 대해 들여다보기도 하였다. 곁으로 다가온 항아리들을 통해서는 완상하면서 작품의 영감을 얻기도 하였다.

 

‘항아리’는 ‘항(缸)’이라는 한자어에 ‘아리’라는 우리말 접미사가 붙어 이루어진 말이다. 나는 이 항아리를 한자로 ‘缸我裏’로 쓴다. ‘항아리는 내 속내’라는 의미다. 내 나름으로 의미를 부여한 항아리에 내 마음을 담고 싶었다. 이번 「달항아리, 담고 닮다」라는 주제로 여는 전시는 그 작은 결과물이다. 한국적인 정서와 미감을 대표하기에 오롯한 달항아리에 글씨의 필획, 전각 기법, 탁본과 판화 기법, 회화성, 메시지 등을 버무려 담아내고자 하였다.

 

‘한 획을 긋다’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 의미와 함께 비유적 의미가 있다. 비유적 의미는 나의 영역이 아니다. 언감생심이다. 단지 사전적 의미대로 한 획 한 획을 그어가다 보니 오늘의 전시가 이루어졌을 뿐이다. 차곡차곡 쌓인 작품들 앞에서 ‘한 획’의 큰 힘을 느낀다. 앞으로도 분필, 그리고 모필과 철필로 한 획 한 획 그으며 살아가지 않을 수가 없겠다.

 

획생자실(劃生子室)에서 노재준 삼가

 

 

달항아리, '김수환 추기경'을 담다

 

 

달항아리, '이육사 시인'을 담다

 

 

달항아리, '천상병 시인'을 담다

 

 

달항아리, '최현배 선생'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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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200219-노재준 展